현대 의학과 의료의 발전으로 생명과 관련된 문제가 논쟁의 대상으로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사람의 생명과 관련된 문제는 사회 전체적으로 민감할 수밖에 없다. 현대 의학 중 중환자 의료(intensive care 또는 critical care)의 발달은 치명적인 상황에 빠진 환자를 많이 살려냈지만, 중환자 의료가 소용없어 이를 중지하려는 때에 절차와 시기가 명확하지 않아 의료 현장에서는 많은 혼란이 있었다. 특히 우리 사회는 지난 10년 남짓 동안 안락사, 존엄사, 소극적 안락사, 연명의료 중지 등의 논쟁을 겪어왔다. 이러한 용어들은 사람들마다 그 의미를 달리 써서 인터넷으로 ‘안락사’라는 용어를 치면 포털 사이트에서 다양한 정의가 나와 그 논란을 부추긴다. 그러나 의학적으로는 ❶자발적 안락사, ❷조력사망 및 ❸연명의료 결정이라는 용어가 의미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2016년 2월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 소위 「연명의료결정법」을 공포하고 2년간의 유예기간을 거쳐 2018. 2. 4. 시행되었으나, 대한민국 정국의 복잡한 상황에서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충분한 홍보 및 복잡한 절차로 인해 많은 혼란이 있어왔다. 따라서 이 법에 대해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우선 「연명의료결정법」은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를 대상으로 연명의료결정 및 그 이행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환자의 최선의 이익을 보장하고 자기결정을 존중하여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보호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연명의료결정법」 제2조에서는 임종과정을 “회생의 가능성이 없고, 치료에도 불구하고 회복되지 아니하며, 급속도로 증상이 악화되어 사망에 임박한 상태”로 정의하고 있다. 연명의료의 범위를 법에서는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로 제한하였다. 이는 자발적 안락사와 조력사와 구분이 되며, 우리법에서는 담당 의사 및 해당 분야 전문의 1명의 임종과정에 대한 전문적 판단-즉, 의학적 판단-이 선행된 후, 연명의료 시행 여부에 관한 환자 스스로의 결정을 존중할 수 있도록 법적으로 보호하겠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임종과정으로 판단된 환자에 대해 중단할 수 있는 연명의료는 ① 심폐소생술, ② 혈액투석, ③ 항암제 투여, ④ 인공호흡기 착용 네 가지로 제한하고 있다. 따라서 중환자 의료에서 흔히 사용하는 항생제 사용이나 인공영양 공급, 통증완화를 위한 진통제 투여 등의 의료행위 등에 대한 선택 내용은 법에 포함되지 않아 중단결정을 내릴 수는 없다.
따라서 자신의 생에 마지막 말기에 이러한 연명의료를 중지하고 싶은 생각을 건강한 상태이거나 질병에 걸린 상태인 지금 결정하고 싶다면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 ‘사전연명의료의향서’가 있는데 이는 민법상의 성년인 19세 이상이 된 사람이라면 누구나 작성할 수 있다. 내용은 먼 훗날 자신이 생의 말기에 들어섰을 때 의학적 처치에 대한 중단 결정을 스스로 내릴 수 없는 상황(혼수상태 등)을 대비해서 본인의 의사를 표시할 수 있는 문서이다. 둘째, ‘연명의료계획서’라는 문서가 있다. 이 문서는 생의 말기에 직면한 상태는 아니지만 적극적인 치료에도 불구하고 근원적인 회복의 가능성이 없는 환자가 의료기관에서 자신을 담당한 의사와 같이 본인의 연명의료 중단에 대한 의사를 작성하는 문서이다. 즉 연명의료계획서는 담당 의사(주치의)가 질병과 치료에 대한 설명을 하고 환자의 의사를 확인하는 방법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인터넷 등을 통해 ‘사전연명의료의향서’와 ‘연명의료계획서’의 내용을 언제든 확인할 수 있다. 생의 말기에서 의사가 환자에게 직접 확인받지 못하였으나 미리 ‘사전연명의료의향서’가 작성되어 있는 경우에는 의사가 이 문서를 다른 의사(전문의)와 함께 적법성을 확인하였다면 기록을 남기고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다.
그러나 만약 안타깝게도 환자가 연명의료에 대한 의사를 표시한 문서가 없는데, 갑작스런 질병의 악화로 의식이 없게 되면 조금은 복잡한 과정을 거치게 된다. 우선 연명의료에 대해 충분 기간 동안 일관되게 환자가 본인의 뜻을 이야기했음을 2명 이상의 가족들이 일치하게 확인한다면 담당 의사(주치의)와 전문의 1명과 함께 이를 확인하여 환자의 의사를 추단하여 연명의료를 중단하게 된다. 환자의 가족은 민법에서 정한 대로 환자의 배우자, 직계비속(직선으로 내려가서 후손에 이르는 사이의 혈족인, 아들, 딸, 손자, 손녀, 증손, 증손자의 아들 등)과 직계존속(직선으로 계속하여 자기에 이르기까지의 혈족을 일컫는 말로서, 부모·조부모·증조부모·고조부모 등)으로 한정하나, 만약 환자가 직계 존비속이 없는 경우에는 형제, 자매도 의사 표현을 확인해 줄 수 있다. 환자가 이전에 연명의료에 관해 본인의 생각을 말한 적이 없다면 환자 가족 전원의 합의가 있을 경우에만 주치의와 전문의 1명이 확인하여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다. 만약 가족 구성원 중에 실종된 사람이거나 행방불명 신고 후 3년 이상 경과한 사람의 경우에는 전원 합의에서 제외될 수 있다.
그러나 의료현장에서는 연명의료법의 본격적인 시행에 따라 환자가족 범위 축소 필요성이 다수 제기되고 있다. 가족으로 정의된 직계존·비속은 친·외가 조부모까지 포함되어 있는데, 이 범위가 상당히 넓다보니 갑작스러운 사고를 당한 젊은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서 가족 전원의 합의를 요구하기에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 많기 때문이다. 직계존·비속 중 합의 대상을 1촌 범위 내 등 가족관계증명서로 확인할 수 있는 가족 범위 내로 제한하자는 의견 및 환자와 소송 중이거나 별거 등의 사유로 환자를 위한 최선의 이익을 고려할 것으로 기대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제외하자는 제기 등에 대해 현재 활발하게 논의 중이다.
우리는 자기 자신과 사랑하는 부모님 등에 대해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어려운 사회를 살아왔다. 최근에는 의학기술의 발달로 건강하게 장수하는 삶의 추구가 심화되면서 오히려 죽음의 과정은 애써 외면하며 삶의 마지막을 어떻게 준비해야 될 지를 도외시 하고 있다. 더욱이 최신 의학 장비에 둘러싸여 사망하게 되면서 고인의 마지막 삶의 뜻 또는 의지가 무엇인지를 알기는 매우 힘들어졌다. 이제 「연명의료법」의 시행을 맞아 죽음 전 생의 말기를 준비하기 위해 자신과 가족들의 원하는 생의 마지막을 어떻게 마무리하는 지를 즉 본인의 마지막 순간이 어떠하기를 바라는지에 관한 충분한 대화를 나눌 시기가 왔다고 본다.
서울의대 국민건강지식센터
법의학교실 교수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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