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울길래 갑자기 화가 나 장난감을 던지고 말았어요.”
지난 1월 생후 10개월 된 딸에게 장난감을 던져 숨지게 한 혐의로 20대 여성 A씨가 긴급체포됐다. 아이는 곧장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숨지고 말았다. A씨 사건이 발생하기 일주일 전, 태어난 지 7개월 된 아들을 바닥에 집어던져 중상을 입힌 혐의로 붙잡힌 엄마 B(21)씨도 있었다. B씨는 이전에도 아이를 꼬집거나 때리는 등 장기간 학대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에게는 산후 우울증을 겪어왔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임신·출산 과정에서 누적된 스트레스가 자녀에 대한 학대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최근 잇달아 발생한 아동학대 사건의 원인 가운데 하나로 산후 우울증이 꼽히고 있다. 출산을 경험한 우리나라 산모의 10∼15%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진 산후 우울증은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면 아동 학대 및 자살 시도 등 심각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어 주의가 요구된다.
출산 후 우울증은 증상에 따라 ‘산후 우울감’, ‘산후 우울증’, ‘산후 정신병’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산후 우울감’은 출산 후 쉽게 짜증을 내거나 눈물을 흘리고, 의욕상실을 느끼는 일시적인 우울 증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인구보건협회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출산을 경험한 우리나라 20∼40대 기혼여성 1309명 중 90.5%가 산후 우울감을 느낄 정도의 흔한 증상이다. 대개 1주일이면 증상이 사라진다.
하지만 ‘산후 우울증’으로 진행되면 치료를 받아야 할 정도로 심각한 지경에 이르는 경우도 있다. 산후 우울증의 대표적인 증상으로는 식욕저하나 갑작스러운 식욕증가, 불면증, 불안감이 있다. 심한 경우 기억력과 집중력 등이 떨어지고,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거나 실제로 자살을 시도하는 극단적 상황까지 치닫기도 한다. 특히 자녀를 부모의 소유물 혹은 분신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강한 우리나라의 경우 산모가 아이를 살해하고, 자살을 시도하는 비극적 상황이 생기기도 한다. 만약 출산 후 2주 이상 거의 하루종일 우울한 기분이 지속되고, 출산 이전에는 재밌게 즐기던 취미나 활동 등에 관심과 흥미가 없어지는 증상이 동시에 생겼다면 병원을 찾는 것이 좋다.
이보다 더 심한 게 ‘산후 정신병’이다. 전체 산모의 1% 안팎으로 그 수는 적지만 신속하게 치료에 돌입하지 않을 시 영아 살해와 자살 등 큰 사고로 이어지기도 한다. 산후 정신병을 앓는 환자는 망상, 환각 등에 시달리며 ‘누군가 자신을 해칠 것’이라는 환청을 듣기도 있다.
산후 우울증은 출산의 당사자인 산모가 신체·정신적 변화를 동시에 감당해야 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주변에서는 출산을 ‘즐거운 일’이라고만 여기는 반면 산모는 임신 중 급격히 늘어났던 체중이 출산 후 원래 체중으로 돌아오지 않는 등 신체의 변화를 쉽게 받아들이기가 힘든 경우가 많다. 육아로 인한 시댁, 친정과의 갈등이나 신생아 수유로 인한 수면 부족 등으로 고통을 겪기도 한다. 특히 초산일 경우 ‘엄마 역할’에 대한 과도한 부담감으로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심해지면 약자인 영아를 화풀이 대상으로 삼게 되는 아동학대 범죄로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대부분의 산후 우울증 환자는 항우울제 복용과 함께 상담치료를 병행하면 금세 증상이 완화된다. 산모가 처한 환경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치료 후 8주∼2개월이 지나면 대부분 증세가 호전된다.
김정현 분당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연구결과에 따르면 심한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 시도·학대 경험 등이 있는 산모의 40∼60%가 범행 이전 정신건강전문의를 찾은 것으로 보고된다”며 “심각한 범죄로까지 이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가족 등 주변 사람이 산모의 ‘우울해요’라는 구조 신호를 알아챌 수 있도록 꾸준한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의료진 역시 출산 후 여성이 우울감이나 평상시와 다른 기분, 행동을 보이면 주의 깊게 관찰해야 하며, 자살 시도 경험이 있었던 산모에 대해서는 본인과 자녀에 관한 심층조사를 철저히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민순 기자 soo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