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보다 위·식도 환자 많은 탓
타는 듯한 느낌, 누우면 심해져… 근육·연골·폐 문제도 흉통 유발
가슴 조이는 통증 땐 심장병 의심
직장인 임모(43·서울 서초구)씨는 석 달 전부터 가슴 가운데가 답답하고 쓰라린 통증이 있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어김없이 아팠고, 밤에 유독 심했다. 임씨는 과로 탓에 심장병이 생겼다고 여겨 병원을 찾아 심장초음파, CT(컴퓨터단층촬영) 검사를 받았다. 하지만 심장에 이상이 없다는 진단을 받았다. 임씨는 진단이 잘못됐다고 생각해 병원 3곳을 추가로 다니며 혈관조영술까지 받았지만 결과는 같았다. 마지막 병원에서 임씨의 주치의는 “심장 문제가 아니라 위장 문제일 수도 있으니 위내시경 검사를 받아보는 게 좋겠다”고 권했다. 검사 결과 임씨는 위식도역류질환이었고, 위장약을 먹었더니 증상이 완화됐다.
◇흉통, 심장 문제인 경우 10~20%에 불과
가슴이 아프면 임씨처럼 심장에 문제가 생긴 줄 알고 덜컥 겁부터 낸다. 하지만 실제로 심장에 문제가 있는 경우는 드물다. 고대구로병원 순환기내과 박성훈 교수는 “지금까지의 연구를 종합해보면 흉통을 겪는 사람 중 10~20%만 심장 문제다”라며 “흉통을 일으킨 원인 질환은 위식도역류질환 같은 소화기 질환이 50% 정도로 제일 많고, 협심증 등 심혈관 질환은 10~20%이며 가슴뼈 주변 연골·근육이나 폐 문제 등이 30~40%를 차지한다”고 말했다.
흉통은 원인 질환별로 양상과 위치가 다르다. 가슴 중앙을 조이는 듯한 압박감이 있으면 심장 문제를, 콕콕 쑤시는 듯한 느낌이 들면 근육·연골 문제를 의심해봐야 한다. /사진=신지호 헬스조선 기자, 그래픽=박상훈 기자
박성훈 교수팀이 흉통이 있어서 심장초음파, 혈관조영술 등을 했는데도 심장에 문제가 없다고 진단된 환자 904명을 대상으로 위내시경 검사를 해봤다. 그 결과 절반에 가까운 386명(42.8%)에게서 위식도역류질환 같은 소화기 질환이 발견됐다. 이 연구는 대한심장학회지 최신호에 실렸다.
◇심장보다 위 질환 환자 많은 게 원인
흉통 원인 질환 중 정작 심장 문제는 적고, 소화기계 질환이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분당서울대병원 순환기내과 박진주 교수는 “가슴 통증은 심장뿐 아니라 가슴뼈 안쪽에 있는 식도·폐·연골·근육 등이 모두 일으킬 수 있다”며 “이중 소화기계 질환이 가장 흔하고 실제 환자도 많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의하면 2014년 협심증 환자는 59만3417명인 반면, 위식도역류질환 환자는 363만4123명으로 6배나 됐다. 심장 문제가 반드시 흉통을 유발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이유 중 하나다. 박진주 교수는 “심장 질환 중에서도 주로 협심증이 흉통을 유발하는데, 심장 혈관이 70% 이상 막힐 때까지 증상이 잘 나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흉통 양상별 의심 질환
60세 이상이거나 고혈압·당뇨병 같은 만성질환이 있다면 흉통이 생겼을 때 심장 문제부터 의심해보는 게 좋다. 그렇지 않은 경우, 원인별 흉통의 양상과 위치를 알아두면 불필요한 검사를 피하는 데 도움이 된다.
▷협심증·심근경색·대동맥박리증=2~3분간 이어지는 통증
협심증이 있으면 가슴 중앙이 조이는 듯한 통증, 압박감, 뻐근함이 2~3분간 이어진다. 통증이 넓게 뻗어나가 목·어깨·팔 안쪽까지 아플 수도 있다. 가만히 있을 때는 증상이 덜 한데, 걷거나 움직일 때 심해진다. 심근경색은 식은땀이 나고 숨도 쉬기 어려울 정도의 강한 통증이 나타난다. 대동맥박리증이 있으면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통증이 나타난다.
▷위식도역류질환=타는 듯한 통증
가슴 정중앙이 타는 듯한 느낌이 들고, 트림이 자주 난다. 심혈관계 질환과 달리 활동량에 상관없이 통증이 나타난다. 박성훈 교수는 “통증 위치가 심장 문제일 때와 비슷해 구분이 어려울 수도 있다”며 “20~30대이면서 평소 당뇨병, 고혈압 등을 앓고 있지 않다면 위식도역류질환을 먼저 의심해보는 게 좋다”고 말했다.
▷근육·연골 염증=콕콕 쑤시는 통증
양쪽 혹은 한쪽 가슴이 콕콕 쑤시거나 바늘로 찌르는 것처럼 아리다. 기침을 심하게 했거나 갑자기 격한 운동을 해서 뼈와 뼈를 잇는 연골, 뼈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근육 등에 염증이 생긴 경우다. 협심증 때와 달리 손가락으로 통증 부위를 눌러보면 특히 심하게 아픈 부위가 2~3곳 있다.
▷폐 질환(기흉·흉수)=칼로 벤 듯한 통증
겨드랑이를 따라 밑으로 이어지는 가슴 옆부분이 칼로 벤 듯 아프다. 기흉은 흉막(폐를 둘러싸고 있는 막)에 공기가 차는 병이고, 흉수는 흉막에 물이 차는 병이다. 이때는 심장 문제와 달리 기침을 하거나 심호흡을 크게 할 때 통증이 심해진다.
[김하윤 헬스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