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남기고 끝난 메르스…’재앙’ 되풀이 막으려면

국내 마지막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감염자로 남아 있던 80번째 환자가 지난달 25일 끝내 숨을 거뒀다. 정부는 아직 메르스 종식 선언을 하지 않았지만 메르스는 사실상 종식된 상태다. 이제 언제 또다시 발생할지 모르는 신종 감염병에 대한 방역망 정비에 나서야 할 때다.

◆평택성모병원 환자, 27초 만에 감염

14일 보건당국의 조사 결과 메르스 발원지인 평택성모병원 환자 중에는 단 27초의 접촉만으로도 메르스에 감염된 환자가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2m 이내 한 시간 접촉’이라는 사태 초기의 의심환자 분류 기준은 방역당국의 뼈아픈 실수로 결론이 났다. 메르스 역학조사팀이 첫 번째 메르스 환자가 입원(5월16∼5월18일)했던 평택성모병원의 CCTV를 분석한 결과 5월16일 8105호실 입원환자의 보호자였던 19번째 환자 C(60)씨는 첫 번째 환자와 8층 병동에서 1∼2m 거리를 두고 27초간 접촉했을 뿐이지만 메르스에 감염됐다. 당국은 세계보건기구(WHO)의 메르스 대응지침이라는 이유로 ‘2m 이내 한 시간 접촉’이라는 의심환자 분류 기준을 고수한 탓에 상당수의 메르스 감염자를 방역감시망에서 놓쳤고, 메르스가 확산하는 계기가 됐다. 기모란 대한예방의학회 메르스위원장(국립암센터 국제암대학원대학교 교수)은 “WHO의 대응지침은 권고사항이고 최소한의 방침이라 선진국에서는 보다 엄격하게 기준을 적용하기 마련”이라며 “운 좋게 메르스 첫 번째 감염환자를 찾으면서 사태를 쉽게 통제할 수 있을 거라고 안이하게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6월11일 119번째로 양성 판정을 받은 평택경찰서 A경사는 ‘병원 내 감염’이 아닌 ‘지역사회 감염’으로 결론이 났다.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는 메르스 사태가 진행되는 동안 국내에서 유행한 메르스가 “병원 내 감염에 국한돼 있고, 지역사회 감염은 일어나지 않았다”며 통제 가능한 상황임을 거듭 강조하며 감염병 위기경보단계를 ‘주의’에서 ‘경계’로 격상하지 않았다. 최보율 메르스 역학조사위원장(한양대 예방의학과 교수)은 “지침이라고 할 수 있는 감염병 위기경보단계를 당국이 지키지 않은 것은 지침이 잘못됐거나 당국이 지침을 위반한 것”이라고 말했다.

◆‘감염병, 정확하고 투명하게 소통하라’

‘지역사회 감염 발생’ ‘2m 이내 30초 접촉으로 감염’ 등은 방역당국이 메르스를 얼마나 안이하게 파악하고, 대처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의료계와 국민은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전문가들은 신종감염병 사태가 발생하면 당국은 과학적인 근거를 가지고 대중과 투명하게 소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를 위해서는 현 상황에서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가 실시간으로 파악돼 있어야 하는데 정부는 이마저도 실패했다. 감염환자가 발생한 병원 이름은 알았지만 이를 공개할지 말지를 놓고 정치적 실익만 따지다가 첫 환자가 파악된 지 18일이 지나서야 대중에 알리는 뼈아픈 실수를 범했다.

최보율 교수는 “메르스 사태 초기에 정부는 우리나라 의료는 중동에 비해 안전하기 때문에 사망자가 발생하지 않게 하겠다고 했는데 사실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다는 방증”이라며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은 나중에 사실관계가 파악됐을 때 다시 설명할 수 있지만 모르는 것을 안다고 하면 다음에 설명을 번복할 수가 없다”고 정확한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재호 기자 futurnalist@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