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뇌졸중 발생은 한 주의 시작과 끝인 토요일과 월요일에 가장 많은 것으로 조사돼, 고혈압 당뇨 등 위험인자를 가진 사람들의 주의가 필요해 보인다. 게티이미지뱅크
‘고혈압 당뇨 흡연 등 뇌졸중 위험인자를 가진 사람들은 한 주의 시작과 끝인 월요일과 토요일을 조심하라.’ 질병관리본부가 2012년 7월 28일~올 6월 12일 3년 동안 전국 8개 대학병원에서 뇌졸중을 처음 진단 받은 8,509명을 조사한 연구 결과 이 같은 경고가 나왔다.
이는 고혈압 등 뇌졸중 위험인자는 생활패턴이 일정한 평일에는 잠복해 있으나, 업무의 시작이나 종료 등에 따라 미세한 변화가 발생하면 한꺼번에 폭발하듯 발병을 촉발하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이번 연구는 세브란스병원 삼성서울병원 충남대병원 경북대병원 전남대병원 등 전국 8개 대학병원의 외래와 응급실을 통해 뇌졸중을 처음 진단 받은 19세 이상 성인(남성 58, 여성 42%)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국내 뇌졸중의 요일별 발병률을 밝힌 전국 단위의 첫 대규모 연구다. 환자들은 79%가 허혈성(뇌경색), 21%가 출혈성(뇌출혈) 뇌졸중이었고,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흡연 음주 비만 등 위험요인에 노출돼 있었던 것으로 분석됐다.
연구 결과 뇌졸중 발생은 일주일 중 토요일이 가장 많았다. 또 평일보다는 주초나 주말에 집중되는 경향을 보였다.
환자 발생은 화요일(1,204명), 수요일(1,136명), 목요일(1,152명) 금요일(1,217명) 등 평일에는 큰 차이가 없었지만, 토요일에는 1,304명으로 급격히 증가했다. 한 주가 시작되는 월요일에도 1.292명의 환자가 발생해 두 번째로 많았다.
뇌졸중 위험률은 직업의 유무에 따라 다소 달랐다. 연구팀이 직업이 있는 1,747명을 조사한 결과 월요일(277명)과 금요일(272명)에 뇌졸중 발생률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남성 직장인에서는 토요일이 발병이 가장 많았다.
특히 직업을 가진 1,747명 중 1,308명이 남성으로 조사돼, 과로와 업무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직장인 남성이 뇌졸중에 취약하다는 사실이 새삼 입증됐다. 지난해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국내 5인 이상 사업장의 월평균 근로시간은 171.4시간이다. 지난달 29일 발표된 한국노동사회 연구소의 ‘연장근로시간 제한의 고용효과’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 근로자의 총 근로시간은 2,285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가운데 가장 길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일요일(266명)에도 뇌졸중 발생률이 높다는 것. 연구팀은 이에 대해 “직장인, 특히 남성의 경우 일요일에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배경을 분석했다.
허혈성뇌졸중은 금요일에, 출혈성뇌졸중은 토요일에 발생이 가장 많았다.
전체 뇌졸중 환자 허혈성뇌졸중 출혈성뇌졸중
월 1,292 991 301
화 1,204 956 248
수 1,136 912 224
목 1,152 926 226
금 1,217 966 251
토 1,304 1,004 300
일 1,204 927 277
전체 뇌졸중 허혈성뇌졸중 출혈성뇌졸중
월 277 209 68
화 234 181 53
수 218 169 49
목 224 193 31
금 272 225 47
토 256 197 59
일 266 206 60
자료 : 질병관리본부 ‘뇌졸중 요일 별 발생 특성 연구’
뇌졸중이 토요일과 월요일에 집중된 것은 ‘생활패턴의 변화’가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연구에 참여한 신용일 양산부산대병원 재활의학과 교수는 “토요일에는 과도한 업무와 회식 등으로 긴장됐던 몸이 이완되면서 미세한 신체변화가 원인이 돼 뇌졸중이 발생할 수 있다”면서 “월요일에는 주말 동안 휴식을 취하다 업무 등 일상에 복귀해 무리한 노동을 하거나 스트레스가 발생함에 따라 뇌졸중 위험이 높아지는 것으로 여겨진다”고 분석했다. 이승훈 서울대병원 신경과 교수는 “월요일과 토요일은 일의 시작과 끝으로 일정한 상태를 유지하던 신체 리듬이 깨지게 되면 혈압 등 우리가 알지 못하는 미세한 변화로 인해 뇌졸중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몸 속 위험요인 내재 시 뇌졸중 발생 필연”
신경과 전문의들은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흡연 등 뇌졸중 위험인자를 가진 사람들에서 뇌졸중 발생은 필연적이다”라고 경고한다. 뇌졸중 위험인자들은 서서히 뇌혈관은 물론 인체의 모든 혈관을 공격해 변성시키기 때문이다.
우리 몸의 혈관들은 70~80%가 막혀도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 신경과 전문의들은 흔히 혈관을 ‘택배기사’에 비유한다. 아무리 막혀 있어도 우회도로를 만들어 뇌에 피를 공급하기 때문이다. 어찌됐던 뇌는 피를 공급받기 때문에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10년 이상 위험요인이 누적되게 되면 결국엔 혈관이 막히거나 터지는 치명적 상황이 닥친다는 것. 이승훈 교수는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흡연 등 위험요인들은 혈관변성을 일으키는 것이 목표”라면서 “총을 예로 들자면 이들 위험요인들은 화약인데 수십 년간 총에 화약을 밀어 넣다가 갑작스런 신체 변화에 따라 혈관이 막히거나 터져 뇌졸중이 발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토요일과 월요일에 뇌졸중 환자가 집중된 것도 평소 위험요인을 갖고 있던 이들이 급작스럽게 환경이나 신체변화에 노출됐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이 교수는 “뇌졸중이 무서운 것은 수십 년간 위험요인이 있음에도 어떻게든 뇌에 피를 공급했던 혈관이 불과 몇 분 만에 막혀 뇌 손상이 발생하기 때문”이라면서 “뇌는 압력이 낮아 작은 혈관 하나만 터져도 이를 막을 능력이 없다”고 경고했다.
혈관변성 검사 필요… 급격한 생활변화 삼가야
뇌졸중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흡연 등 위험요인을 관리하는 것이 급선무다. 또 이들 위험요인들이 얼마나 혈관을 변성시켰는지 검사하는 것도 뇌졸중 예방에 효과적이다. 이 교수는 “간혹 배드민턴, 마라톤 등 갑자기 심한 운동을 하다 뇌졸중으로 사망한 사람들이 있는데, 위험요인이 축적돼 혈관변성이 생긴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무리한 운동을 한 것이 문제”라며 검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고혈압, 당뇨병 환자라면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고혈압, 당뇨병 약을 먹는다고 안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박익성 부천성모병원 신경외과 교수(뇌졸중센터장)은 “혈압 약을 복용하는 것은 혈압을 정상으로 유지하는 것이 목표인데, 약을 먹어도 혈압이 정상으로 유지가 되지 않거나 혈압변동이 생길 경우 뇌졸중 발생 위험이 있다”면서 “당뇨병 환자도 당 수치가 정상수준으로 유지되는지 항상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혈압과 당뇨가 있음에도 장기적으로 약을 복용하는 것을 꺼려 치료를 하지 않는 이들이 많은데 약을 복용하지 않고 방치할 경우 혈관변성이 생겨 뇌졸중이 발생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평소 아스피린 등 혈소판 제제를 복용하는 것도 뇌졸중 예방에 도움이 된다. 이승훈 교수는 “아스피린 등 혈소판 제제들은 혈소판 기능을 떨어뜨려 혈관이 파열됐을 때 혈소판이 혈관을 막는 위험을 감소시킨다”고 말했다. 신용일 교수는 “이번 연구로 국내 뇌졸중 환자의 요일별 발생률에 대한 기초 데이터베이스가 구축됐다”면서 “토요일과 월요일에 뇌졸중 발생률이 급증하기 때문에 남성 직장인의 스트레스 관리뿐 아니라 가족을 중심으로 한 건전한 여가문화가 구축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치중 의학전문기자 cjkim@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