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치료
세계 에이즈의 날을 맞아 한국에이즈퇴치연맹이 서울 청계광장에서 마련한 플래시몹 행사. 이 행사에 참여한 청소년들이 에이즈 퇴치운동의 상징인 빨간 리본을 만들어 보이고있다. 동아일보DB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감염 조기 진단이 필요하다.
국내에서 처음 HIV 감염이 보고된 시점은 1985년이다. 이후 해마다 감염인이 늘어 지난해 1081명의 감염인이 새로 발견됐다. 이는 2000년 이후 새로운 감염인이 줄고 있는 세계적 추세와는 배치되는 것이다.
물론 HIV 진단 검사를 받으면서 신규 감염인도 늘어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필자는 HIV 감염인의 수가 실제로도 늘고 있을 가능성이 훨씬 더 크다고 본다.
김남중 서울대병원 감염내과 교수
HIV에 감염되면 면역기능을 담당하는 CD4 림프구 수가 지속적으로 감소한다. 혈액 내 CD4 림프구 수가 1μL(마이크로리터)당 200개보다 낮으면 면역기능 손상이 진행된 상태로 보는데, 국내 신규 환자의 약 40%는 면역기능 손상이 진행된 상태에서 발견된다.
현재까지 국내 HIV 감염인 수는 모두 1만1000여 명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의 인구 대비 HIV 감염인 수는 아프리카의 발병률이 높은 국가들은 물론이고 미국, 유럽과 같은 선진국에 비해서도 상당히 낮은 편이다. 하지만 최근 HIV 감염으로 진단받은 사람이 늘고 있고 그중 상당수는 면역기능 손상이 진행된 상태에서 발견되는 점은 심각한 부분이다.
HIV 감염을 줄이려면 여러 가지 노력이 필요하다. 첫째, 주요 감염원을 막기 위해 성관계 시 콘돔을 사용해야 한다. 특히 지난해 신규 감염인 중 15∼19세 청소년이 3.6%를 차지하였는데, 이는 2006년(1.7%)의 2배가 넘는 수치다. 청소년 예방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교육을 통해 피임기구 사용법을 가르쳐야 하는 이유다.
둘째, HIV 감염을 조기에 진단하고 치료하는 것이 필요하다. HIV 감염인은 자신이 감염된 사실을 모르는 상태에서 다른 사람에게 HIV를 전파시킬 수 있다.
조기에 진단해야 전파도 차단할 수 있다. HIV를 억제할 수 있는 항바이러스제는 치료는 물론이고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 HIV 감염인이 항바이러스제를 복용하면 몸 안에 있는 바이러스가 감소하고 CD4 림프구 수가 증가하여 면역기능 저하에 따른 질병 발생의 위험이 현저히 감소한다. 또 몸 안에 있는 바이러스가 감소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HIV를 전파시킬 위험 역시 감소한다.
셋째, 효과적인 백신의 개발이 필요하다. HIV를 조기에 진단하는 것은 감염인과 사회에 모두 도움이 된다. 면역기능 손상이 진행된 상태에서 항바이러스제 치료를 시작하는 것보다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치료를 시작하는 것이 더 많은 면역기능 개선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면역기능 손상이 진행된 상태에서는 곰팡이 폐렴을 포함한 여러 가지 합병증이 동반된다. 따라서 면역기능 손상이 진행되기 이전에 진단해 치료하면 이러한 합병증 발생을 줄일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조기에 HIV 감염을 진단할까? 대한에이즈학회의 학술대회에서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새롭게 HIV 감염을 진단받은 사람 중 77% 정도는 병원 진료 혹은 건강검진 과정에서 발견됐다. 14% 정도는 자발적인 검사로 진단받았다. HIV 감염을 조기에 진단하는 데는 질병으로 입원한 모든 성인에게 HIV 감염을 검사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지난해 서울의 보건소들에서는 익명으로 무료 검사를 받을 수 있는 신속 HIV 진단검사를 도입했는데, 효과가 좋았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