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혈압 환자 4년새 57% 증가…과량의 약 탓에 혈압 급강하
50대 이상 남성 특히 민감…전문의 상담해 복용량 조절
“고혈압 환자가 저혈압으로 쓰러진다고?” 뭔가 이해가 되지 않지만 실제로 자주 일어나는 일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저혈압으로 병원 진료를 받은 인원이 2만5160명으로, 2010년 1만5958명에서 4년 새 57% 증가했다. 특히 50세 이상 남성의 증가폭이 두드러졌는데, 2010년 4632명에서 지난해 8324명으로 79%나 증가했다. 인제대 서울백병원 가정의학과 박현아 교수는 “고혈압 약이 혈압을 필요 이상으로 떨어뜨려 저혈압이 생긴다”며 “이 외에도 전립선비대증 약, 우울증 약도 저혈압을 유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갑작스런 저혈압이 위험한 것은 두통, 현기증과 함께 실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강남세브란스병원 심장내과 윤영원 교수는 “노인이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저혈압으로 쓰러지면 골절 등의 위험이 있다”며 “심한 경우 사망에 이를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65세 이상에서 허벅지 뼈와 골반이 연결되는 부위에 골절이 생긴 경우 1년 내 사망률이 14~36%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혈압 약을 과도하게 복용하면 혈압을 급격히 떨어뜨려 두통, 현기증, 실신 등 저혈압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사진=신지호 헬스조선 기자, 그래픽=송윤혜 기자
◇고혈압 약, 필요 이상으로 복용하는 게 문제
국내 성인 10명 중 3명은 고혈압 환자다. 50세 이상 남성 고혈압 환자 중 30% 정도는 고혈압 약을 먹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약을 필요 이상으로 많이 먹으면 혈압이 과도하게 떨어져 저혈압 상태가 된다. 윤 교수는 “병원에서 혈압을 잴 때 환자의 심리 상태에 따라 혈압이 평소보다 급격하게 올라가는 경우가 많다”며 “이를 기준으로 고혈압 약을 처방하면 환자가 필요 이상으로 혈압 약을 복용하므로 저혈압 위험이 커진다”고 말했다. 특히 나이가 들면 혈관 탄력이 떨어져 혈압 약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적정 분량을 복용하는 게 중요하다. 강북삼성병원 순환기내과 김병진 교수는 “남성은 음주·흡연 등으로 혈압 약을 복용해도 혈압이 제대로 조절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여성보다 상대적으로 더 많은 양의 혈압 약을 처방받아 혈압 변동폭이 더 크다”고 말했다.
한 번에 장기간 복용할 약을 처방받는 것도 문제다. 보통 고혈압 진단을 받으면 6개월 이상 복용할 약을 처방하는데, 신체 변화를 고려하지 않고 이전에 처방받은 고혈압 약을 계속 복용하면 혈압이 정상 수준 이하로 떨어질 수 있다.
◇전립선비대증·우울증 약도 원인
50대 남성이 많이 먹는 전립선비대증 약, 이뇨제, 삼환계 항우울제도 저혈압을 유발한다. 이들 약물은 모두 혈압을 떨어뜨리는 특징이 있다. 근육은 혈관을 눌러 혈압을 조절하는 기능을 한다. 그런데 전립선비대증 약을 먹으면 방광 근육이 이완돼 혈압 조절 기능이 떨어지고 저혈압 위험이 커진다. 이뇨제는 소변이나 땀으로 체내 수분을 배출하도록 하는데, 수분이 과도하게 빠져나가면 혈액량이 줄어 혈압이 떨어진다.
공황장애 등의 치료에 사용되는 삼환계 항우울제도 저혈압의 원인일 수 있다. 삼환계 우울제로 자율신경계 기능이 떨어지면 혈관이 갑자기 수축된다. 좁아진 혈관 탓에 혈액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으면 갑자기 실신하는 등 저혈압 증상이 생길 수 있다.
◇약 임의로 줄이지 말아야
약물 복용 중 저혈압 증상이 나타나면 증상이 완화될 때까지 옆으로 돌아 눕거나, 베개 등을 이용해 다리를 심장보다 높이고 천장을 향해 누워있는 것이 좋다. 이런 증상이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로 1~2개월 반복되면 즉시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 박현아 교수는 “약에 의한 저혈압은 원인 약물을 찾아 복용량을 줄이거나 다른 약물로 대체해야 한다”며 “다만 환자가 임의로 약을 줄이거나 끊으면 기존 질환이 악화될 수 있어 반드시 의사와 상담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립선비대증 약 등 혈압을 떨어뜨리는 약물을 복용하는 사람은 평소 누운 자리에서 급하게 일어나지 말고, 앉은 자세를 취했다가 일어서는 것이 좋다. 바닥에서 천천히 의자로 올라와 앉은 뒤 일어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윤영원 교수는 “특히 여름에는 땀 배출이 많아 저혈압이 발생할 위험이 커진다”며 “의사와 상담을 통해 계절에 따라 약물 복용량을 다르게 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이현정 헬스조선 기자 lhj@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