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곤할 때 한방? 수액주사의 허와 실 류장훈 기자 ryu.janghoon@joongang.co.kr
shutterstock
지난 13일 낮 12시 30분쯤 오피스가 즐비한 서울 종로의 한 클리닉. 피곤해 보이는 직장인들이 한쪽 팔에 링거(수액) 주사 바늘을 꽂고 침상에 누워 있다. 이들이 맞고 있는 것은 ‘비타민 주사’로 불리는 수액 주사다. 직장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클리닉에 근무하는 간호사는 “점심 시간에는 주사실이 꽉 찬다. 직장인들이 과로·음주로 인한 피로와 숙취를 풀기 위해 주로 찾는다”고 말했다. 만성피로에는 주로 마늘주사, 숙취 해소에는 감초주사를 맞는다. 1회 주사 비용은 3만~6만 원, 칵테일 주사는 10만원을 넘는다. 비타민 주사의 효과는 어떨까.
수액 주사는 예전부터 피로회복제로 인식돼 왔다. 시간이 지나면서 주사액을 구성하는 내용물이 조금씩 바뀌었고 종류도 다양해졌다. 비타민주사·마늘주사에서부터 마이어스 칵테일 주사, 은행 칵테일 주사, ATP(ATP는 근육의 에너지원임. 에너지 생성을 촉진한다고 해서 이름 붙여 짐) 주사도 있다.
피로·숙취해소 효과 과학적 근거 약해
종류는 많지만 정작 성분에 큰 차이는 없다. 대부분 비타민이 주축을 이루고 여기에 다른 영양소가 혼합된 형태다. 고용량 비타민C 주사는 비타민C 1만㎎ 정도를 주입하는 방식이다. 마늘주사는 비타민B군에 약간의 비타민C가 첨가된 것으로, 2002년 월드컵 당시 히딩크 사단이 맞았다고 해 유명세를 탔다. 주사를 맞은 뒤 코끝에서 마늘 향이 감돌아 마늘주사로 불린다. 반면 마이어스 칵테일 주사는 미국 내과의사 존 마이어스가 주창한 메가비타민 요법의 하나로 1980년대부터 유명해졌다. 고용량 비타민과 미네랄이 혼합된 주사다. ‘수능 주사’로 불리는 은행 칵테일은 은행잎 추출 성분인 징코와 비타민을, ‘신데렐라 주사’로 알려진 ATP주사는 비타민 대신 비타민 보다 강한 항산화력의 알파리포산으로 구성된 주사다. 대부분 비타민을 주성분으로 하고 있어 통칭 비타민 주사로 불린다.
비타민 주사의 피로 회복 효과는 아직 과학적으로 입증되지는 않았다. 치료제나 요법이 과학적 근거를 얻으려면 우선 실험실에서 이뤄지는 세포 대상 실험을 통과해야 한다. 그 다음 동물대상 연구에서 효과가 입증돼야 비로소 인체 대상 임상연구에 들어간다. 대규모 임상연구도 필요하다.
명승권 국제암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비타민 주사가 피로회복에 효과가 있다는 것은 이론일 뿐”이라며 “일부 동물 연구를 통해 항산화·면역기능 활성화 효과가 입증됐지만 이 연구만으로는 불충분하다”고 강조했다. 분당서울대병원 건강증진센터 배우경 교수는 “주사제의 특정 성분이 피로회복에 효과가 있다고 하려면 대규모 임상연구를 해야 하는데 아직 이 단계까지 진행된 연구는 없다”고 말했다.
배 교수는 비타민 주사의 피로회복 효과를 분석한 몇 안 되는 소규모 임상연구를 진행한 당사자다. 그는 20~49세 직장인 141명을 비타민 투여 그룹과 식염수 투여 그룹으로 나눈 뒤 비타민 투여 그룹에는 비타민C 10g과 생리식염수를 섞은 주사액을, 식염수 투여 그룹에는 단순 생리식염수를 정맥으로 주사했다. 그리고 두 그룹에게 0부터 10점(점수가 높을수록 피로함)까지 자신의 피로도를 점수로 기록하도록 했다. 피로도는 주사를 맞기 직전, 주사 후 2시간, 하루 뒤에 각각 측정했다. 실험은 이중맹검(二重盲檢: 실험자·피실험자 모두 누구에게 어떤 약이 투여되는지 모르게 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그 결과 비타민 투여 그룹은 피로도가 평균 5.64에서 주사 2시간 뒤 5.10, 하루 뒤 4.97로 떨어졌다. 식염수 투여 그룹은 평균 5.54에서 2시간 후 5.31로 낮아졌다가 하루 후에는 5.66으로 증가했다. 배 교수는 “주사 후 2시간이 지난 뒤에는 두 그룹 모두 좋아졌고, 피로도 하락 폭에 유의한 차이가 없었다”며 “다만 하루가 지나서는 두 그룹 간 피로도에 차이가 있었다”고 말했다.
좀 더 흥미로운 결과도 도출됐다. 그는 두 그룹 모두 주사 직전 체내 비타민 수준을 높은 그룹과 낮은 그룹으로 나눈 뒤 피로 회복 수준을 분석했다. 그 결과 비타민 수준이 높았던 그룹은 주사액에 상관없이 피로도 변화에 의미있는 차이가 없었던 반면, 낮은 그룹에서는 차이를 보였다.
비타민C 수준이 낮았던 그룹 중 비타민C 투여그룹은 피로도가 5.54에서 4.94(2시간 후), 4.66(하루 후)으로 점차 낮아졌다. 이에 대해 배 교수는 “원래 체내 비타민 수치가 낮았던 사람들에게서 비타민 주사가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부족한 부분을 채워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명 교수도 “이 연구결과가 통계적 유의성은 있지만 본인이 느끼는 피로도가 1미만 정도의 차이여서 임상적으로 차이가 있다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남성의 비타민C 섭취, 여자보다 부족
수액 주사를 맞는 것 자체는 피로 회복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된다. 한 시간 가량 누워 휴식을 취하는 데다 혈관에 수분이 들어가면 기본적으로 몸이 이완되기 때문이다. 웬만한 사람은 생리식염수만 맞아도 피로가 개선됐다고 느낀다. 다만 특정 성분에 의한 피로 회복 효과는 아직 입증되지 않은 상태다.
비타민 주사가 여성보다는 남성에게 더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피로 개선 효과는 비타민이 체내에 부족할 때 큰데 일반적으로 남성의 경우 평소 비타민을 잘 챙기지 못해 주사를 맞으면 더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국민건강영양조사(2012)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은 단백질·철분 등 대부분의 영양소를 영양섭취 기준 이상 섭취하고, 남성의 섭취량이 여성보다 대부분 많다. 유독 비타민C만 남성의 섭취량이 기준에 못 미치는 것(97%)으로 나타났다.
배 교수는 “각 개인이 부족한 영양소를 골라 체내에 공급하면 도움이 될 테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다”며 “다만 남성은 여성과 식습관이 다르고 비타민 보충이 부족한 만큼 남성에게 더 효과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명 교수는 “피로회복을 위해 가장 좋은 것은 충분한 휴식·수면과 규칙적인 운동, 과일·채소를 통한 비타민 섭취”라고 설명했다.
류장훈 기자 ryu.janghoo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