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우유 많이 먹는다고 골절 예방되지는 않아
요거트 등 발효제품 효과에는 다수가 동의
우유. 한겨레 자료사진
건강 증진이나 각종 질병 예방에 도움이 되는지를 두고 논쟁이 끝없이 이어지는 것들이 있다.
예를 들어 커피는 위염 등 각종 소화기계 질환이나 수면 장애를 일으킨다는 보고도 있지만, 하루 3~5잔 마시면 간암이나 대장암 예방에 좋다는 연구도 있다. 포도주나 막걸리 등 술이 간 등 소화기계 장기에 해롭다는 연구도 많지만, 적절히 마시면 심장 질환 예방에는 좋다고 한다. 이처럼 먹는 것이 건강과 수명 연장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어떤 사람한테는 이롭고 또 다른 어떤 사람에게는 해로운지 등에 대한 연구 결과는 서로 반대로 나오기도 하고, 결론이 깔끔하게 내려지지 않기 일쑤다. 약을 사람에 맞게 써야 하는 것처럼, 음식도 먹는 사람과 ‘궁합’이 중요하다는 설명도 많다.
최근 스웨덴에서 우유를 하루 3잔 이상 마실 경우 심장병 등으로 사망할 확률이 3배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돼 화제가 됐는데, ‘우유가 몸에 좋으냐, 아니면 해롭냐?’는 논쟁 또한 역사가 꽤 오래된 편이다. 2000년엔 미국의 일부 의사들이 ‘우유가 골다공증을 예방한다’는 광고를 문제 삼았다.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는 내용을 광고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우유가 오히려 심장병이나 전립선암, 유방암의 위험을 높이며 소아성 당뇨와도 관련이 있다고 주장했다.
사람이 소 젖을 먹는 데 좋겠느냐는 본질적인 의문도 있었다. 일부 환경단체들은 각종 성장 호르몬과 항생제를 먹는 소들한테서 나오는 우유가 건강에 이롭겠느냐는 다소 도발적인 문제 제기를 했다.
하지만 미국 농림부 등 많은 나라의 유관 부처들은 하루에 우유 3잔 이상을 먹도록 권고하고 있다. 축산 농가를 이해를 대변하는 처지에서 보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도 ‘우유 논쟁’은 예외가 아니었다. 과거에는 우유가 주된 성분인 분유가 엄마 젖보다 좋다는 광고도 있었다. 분유로 키운 아이들만을 대상으로 우량아 선발대회를 하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현재 의학계의 대체적인 결론은 엄마 젖보다 좋은 우유나 분유는 없다는 것이다. 엄마와 아이의 친밀감은 물론이고, 엄마 젖을 먹이면 당장 엄마의 비만이나 ‘산후 우울증’도 줄여주고 유방암의 발생 위험까지 낮춘다는 연구 결과들이 나와 있다. 또 엄마 젖을 먹고 자라면 아토피와 천식 등 각종 알레르기 질환은 물론 장 질환이나 감염 등 여러 질환 예방에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적어도 신생아나 영아 때는 우유보다 엄마 젖이 좋다는 건 이제 거의 확인된 사실이다.
그렇다면 성장기 아이들이나 성인은 어떨까? 아이들의 경우 우유를 많이 마시면 키 성장에 도움이 되고 뼈를 튼튼하게 하며 비만 예방에도 좋다는 것이 그동안의 상식이다. 어른들도 우유를 많이 마시면 뼈 건강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미국 등 여러 나라에서 대규모 인구 집단을 추적 조사해 보니 우유를 많이 마셔도 뼈를 더 튼튼하게 한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 오히려 우유를 많이 마시는 종족은 뼈 밀도가 낮아져 충격을 받았을 때 골절의 가능성을 높이는 골다공증이 더 많다는 사실이 확인되기도 했다. 예컨대 대표적으로 우유를 많이 마시는 스웨덴이 우유를 적게 마시는 나라에 견줘 골다공증이 더 많았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중년층 이상에겐 우유 섭취가 오히려 해롭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고 있다. 이번에 화제가 된 스웨덴의 연구인데, 대규모 인구 집단을 여성은 20년, 남성은 11년 동안 관찰해 온 결과라 신뢰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달 스웨덴 웁살라대학의 카를 마이클슨 교수팀은 우유를 마시면 뼈가 튼튼해져 골절의 위험을 줄이고 나아가 사망률을 줄이는지 확인한 연구 결과를 에 발표했다. 스웨덴에서 우유와 골다공증의 상관관계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반영한 연구인지 모르겠다.
마이클슨 교수팀은 1987~1990년 당시 39~74살이던 여성 6만1433명을 대상으로 20년 동안 우유는 물론이고 치즈나 요거트 등 각종 유제품 섭취가 뼈 건강 및 생명 연장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조사했다. 1997년 당시 45~79살이던 남성 4만5339명도 같은 방법으로 조사했다. 그 결과 여성은 관찰 기간에 1만5541명이 숨졌고, 4259명이 엉덩이관절에서 골절을 입는 등 모두 1만7252명이 골절을 겪었다. 우유를 많이 마셨다고 골절 위험이 줄어들지는 않았다. 심지어 하루에 3잔 이상의 우유 즉 평균 680㎖를 마신 여성들은 하루에 한 잔 미만인 평균 60㎖를 마신 사람에 견줘 사망할 위험이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남성은 관찰 기간에 모두 1만112명이 숨졌고 5066명이 골절을 겪었다. 남성도 여성과 마찬가지로 우유를 많이 마신 사람이 적게 마신 사람에 견줘 사망 위험이 더 컸다. 다만 치즈나 요거트와 같은 발효 유제품은 골절이나 사망 위험을 다소 낮추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여성에서 그런 경향이 더 두드러졌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 결과와 관련해, 우유가 오히려 해를 주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다른 음식의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는 조심스런 태도를 견지했다. 요컨대 스웨덴 사람들과 식습관이 다른 한국 사람들한테 곧바로 적용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뼈 건강에 영향을 주는 운동 습관 등도 고려해야 한다.
국내 연구 결과는 어떨까? 스웨덴의 이번 연구처럼 대규모 인구 집단을 대상으로 장기간 추적한 연구 결과는 찾기 힘들다. 하지만 유제품 섭취와 비만 등에 대해 연구한 결과는 최근에도 나왔다. 이해정 을지대 식품영양학과 교수팀이 ‘2007~2009년 국민건강 영양 조사’에 참여한 7173명(19~64살)을 대상으로 우유 및 요거트의 섭취와 비만의 관련성을 조사해 보니, 하루 1번 이상 우유나 요거트를 섭취하면 비만 위험성을 21%가량 낮추는 것으로 나타났다. 2번 이상 먹으면 비만 위험성은 37% 낮아졌다. 이해정 교수팀은 “우유나 유제품이 비만 위험성을 낮춘다는 것은 외국 연구에서도 확인된다. 다만 저지방 우유나 요거트 등 당분이 추가되지 않은 제품을 먹는 것이 더 좋다”고 밝혔다.
이와 같은 국내외 연구 결과들을 종합해 볼 때, 그렇다면 우유를 먹어야 할까? 특히 아이들에게 우유를 먹여야 할까? 아직까지는 모두가 인정하는 정답은 없다. 다만 우유의 효과를 과신해서 반드시 챙겨 먹어야 하거나, 아이들한테 꼭 먹여야 한다거나, 반대로 우유를 아예 피해야 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물론 요거트 등 발효 유제품을 먹는 것이 더 낫다는 주장엔 다수가 동의하고 있다는 사실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또 한가지 중요한 것은, 규칙적인 운동으로 뼈와 근육을 튼튼히 유지하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는 것이다.
김양중 의료전문기자 himtra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