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무서운 ‘문구’에 섬뜩한 ‘그림’ … 흡연율 낮추기 50년

[뉴스 인사이드] 전세계, 담뱃갑위 ‘흡연과의 전쟁’
담배는 치열한 전장이다. 사회 어느 곳에서나 흡연자와 비흡연자 사이에는 미묘한 신경전이 흐르기 십상이다. 금연정책에 대한 보건당국과 경제부처, 정치권과 기업 등 각 주체 간 이해도 크게 갈린다. 무엇보다 담배 규제안을 놓고 세계 각 정부와 담배회사들이 벌이는 ‘힘겨루기’를 빼놓을 수 없다. 정부는 국민건강을 내세워 담뱃값 인상과 제품 광고·판촉 금지, 금연지역 확대로 압박하고 수익 극대화에 목을 매는 담배회사들은 지식재산권과 실효성 논란으로 배수진을 쳐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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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독살시키지 마세요” vs “흡연은 폐암 등 각종 질병의 원인”

정부와 담배회사 간 투쟁의 최전선은 신용카드 크기(8.8×5.6㎝)의 담뱃갑이다. 하루에 담배 한 갑을 피는 흡연자는 하루 20번, 연간 7300번 담뱃갑 경고 메시지에 노출된다. 이는 흡연자뿐 아니라 그의 가족, 동료, 친구에게도 흡연 폐해 및 부작용을 끊임없이 환기해 비흡연 인구를 크게 늘리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보건당국은 담뱃갑에 경고 메시지(문구·그림)를 최대한 큼지막하게 넣으려 하고, 담배회사는 이를 최소화하거나 아예 없애려는 방향으로 응전한다.

세계 각국이 앞다퉈 담뱃갑 경고 메시지를 강화해 왔다. 영국 BBC에 따르면 세계에서 처음 담배회사에 경고 문구 표기를 강제한 나라는 미국이다. 1965년 연방담배표기법에서 “담배회사는 흡연이 건강에 위해를 끼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려야 한다”고 규정했다. 유럽연합(EU)은 1977년 경고 문구를 반드시 넣도록 한 스웨덴을 모델로 2001년부터 회원국들에 “우리를 독살시키지 마세요” 등 42종의 경고 문구를 번갈아 담뱃갑에 기재하도록 했다.

우리도 경고 문구에 관한 한 앞선 편이다. 1976년 담뱃갑 옆면에 “건강을 위하여 지나친 흡연을 삼갑시다”라는 문구를 처음 넣은 데 이어 국민건강증진법이 제정된 1995년엔 담뱃갑 앞·뒷면 각 20% 크기로 이 같은 문구를 기재하도록 했다.

경고 메시지를 담뱃갑의 50% 이상 표기하도록 한 세계보건기구(WHO) 담배규제기본협약(FCTC)을 비준한 2005년 이후엔 기재 면적이 30%로 늘어났고 경고문 수위도 “흡연은 폐암 등 각종 질병의 원인! 그래도 피우시겠습니까?”로 다소 강화됐다.

◆경고 그림 입법화 나선 한국 vs 담뱃갑 전체를 경고 메시지화한 호주

하지만 FCTC 제11조 권고 사항이자 최근 국제 트렌드이기도 한 담뱃갑 경고 그림 강화는 한국에선 아직 요원하다. 정부가 ‘예산부수법안’(예산안과 관련한 법률안)으로 최근 국회에 제출한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에서야 경고 그림 삽입 건이 명시됐다. FCTC 비준 10년째에 이르러서야 이 같은 규제 정책을 입안한 것이다. 그간 우리가 경고 그림 기재를 머뭇거렸던 이유는 경고문으로 충분하다는 안이함과 금연 효과성 논란, 흡연 폐해에 관한 시각화가 자칫 세수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겹쳤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21세기 들어 담뱃갑에 경고문 이외 그림을 도입하는 것은 세계적 추세다. 캐나다는 2001년 ‘담배제품 정보 규제법’을 제정하면서 담배의 중독성과 함유 성분에 관한 정보 문구는 물론 흡연이 건강에 미치는 악영향에 관한 이미지까지 넣도록 의무화했다. 캐나다암협회(CCS)는 담뱃갑에 경고 그림을 넣도록 강제한 나라가 2012년 10월 현재 63개국이며 올 연말쯤 77개국으로 늘 예정이라고 밝혔다. 경고 그림 크기가 앞·뒷면 평균 담뱃갑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나라도 18개국에 달한다.

담뱃갑 전체를 사실상 경고 메시지로 채우도록 강제한 나라도 있다. 호주는 2012년 12월부터 연녹색으로 통일시킨 담뱃갑에 흡연 관련 질병 사진 및 경고 문구를 앞·뒷면 평균 80% 이상 집어넣도록 했다. 담배 상표명은 하단 부분에 작은 글씨로 표기돼야 한다.

흡연율 감소를 위해 담배 브랜드마저 없앨 수 있다는 초강경 조치에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 영국, 프랑스도 잇따라 ‘민무늬 담뱃갑’ 입안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송민섭 기자 stsong@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