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엄마·아빠, 미안해요~!”
김모(16)군이 자신의 트위터에 남긴 문장이다. 김군은 요즘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다. 그의 스마트폰 검색 목록에는 ‘안 아프게 죽는 법’, ‘고통 없이 죽는 법’ 등 자살 관련 검색어가 가득하다.
#2. “부모님 잘 모셔라”
박모(45)씨는 요즘 들어 가족들에게 이런 말을 자주 한다. 박씨는 지난달 17년간 다니던 회사를 명예퇴직했다. 그 후로부터 말수가 부쩍 줄었고 입맛도 없다. 그는 “이따금씩 자살이란 것을 생각한다”고 밝혔다.
서울 시내 자살사고로 119구조대가 출동한 건수가 2010년 890건에서 지난해 4926건으로 증가했다. 한국 사회에서 자살 사건은 비단 서울만의 문제가 아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한국 자살률은 2000년대 들어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인구 10만명당 자살자 수(자살사망률)는 2011년 30명을 넘어섰고 2013년에는 28.5명으로 다소 줄었지만 1999년(15명)에 비하면 10년 만에 2배 이상 증가했다.
특히 남성의 자살사망률은 2013년 기준으로 여성보다 2.3배 가량 높고, 나이가 많을수록 자살하는 사람이 늘어난다. 70세 이상은 2012년 기준 자살률이 253.4명에 달한다. 20~30대의 경우 자살이 사망원인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자살하는 사람의 수는 다른 연령대보다 적지만 사망률 자체가 낮은 것이 원인이다. 월별 자살은 3월과 5월이 가장 빈번했고, 12월이 가장 적었다. 가정의 달인 5월에 자살률이 높은 것이 눈에 띈다.
아울러 자살 충동을 느끼는 사람도 늘고 있다. 2014 사회조사를 보면 국민 중 6.8%가 자살충동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즉, 100명 중 7명 정도가 자살 욕구를 느낀 셈이다. 연령대별로는 13~19세가 8.0%로 가장 높았고, 60세 이상이 5.2%로 가장 낮았다. 경제적 어려움이 37.4%로 충동이유 중 가장 많았다. ▲가정불화(14.0%) ▲외로움·고독(12.7%) ▲신체·정신 질환(11.1%) 순이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13년 조사를 보면 자살충동 경험자 중 처음으로 자살을 생각한 시기는 10대 이하라고 응답한 비율이 76.4%로 가장 많다. 10대 이하 비율은 2011년 19.8%, 2012년 58.4%에서 2013년에는 80%로 크게 늘었다. 우리나라는 점점 어린 나이에 자살을 생각하게 되는 사회가 되고 있으며, 실제 노인들의 자살률은 심각한 상황으로 볼 수 있다. 높은 자살률로 암 등을 제외한 사망의 외인에 의한 사망률 1위는 자살이다. 교통(운수)사고나 추락사고 보다 자살 사망이 많다.
통계청의 ‘사망원인통계결과’에 따르면 2013년 사망원인에서 1~9세는 운수사고, 10세 이상은 자살이 사망원인 1위였다. 그 해 자살사망자 수는 1만4427명으로 사망률은 2012년 조사 때에 비해 0.4명 늘었고, 10년 전인 2003년(22.6명)보다는 5.9명 많아졌다.
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한국의 자살률은 매우 높은 수준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한국의 2011년 자살률(2014년 7월 발표)은 33.3명을 기록했다. 한국 자살률은 OECD 회원국 중 부동의 1위다. 자살률이 30명을 넘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멕시코와 영국은 5.2명과 6.7명에 불과하다. 호주(10.1명)·미국(12.5명) 등도 10명을 겨우 넘는 수준이다. 일본도 20.9명에 그친다.
통계청 관계자는 “자살은 삶에 대한 만족이 극도로 떨어졌을 때 취하는 극단적인 행동”이라며 “모든 연령 자살률이 높은 것은 삶에 대한 전반적인 만족이 떨어지거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자살을 시도한 경험이 있는 사람은 결국 자살할 확률이 일반인에 비해 25배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자살 시도의 주된 원인으로는 우울증 등 정신과적 증상과 더불어 대인관계 스트레스가 꼽혔다.
보건복지부는 2014년 4월 자살사망자 통계와 자살시도자에 대한 면접 조사, 자살 사망자 심리적 부검, 대국민 자살인식조사 등을 토대로 한 대규모 자살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조사는 2013년 2월 발효된 자살예방법에 근거해 실시한 것으로, 정부 주도로 실시한 전국 규모의 자살실태 조사다.
이 조사결과에 따르면 지난 2007∼2011년 자살을 시도해 응급실을 찾은 8848명 가운데 2012년 말 기준으로 실제 자살한 사람은 236명으로, 연간 10만명 당 약 700명의 자살률을 기록했다. 이는 일반 인구의 자살사망률인 10만명 당 28.1명에 비해 무려 25배 가까이 높은 것으로, 한 번 자살을 시도한 사람의 자살 위험이 매우 높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들 가운데 남성 자살 사망자의 절반이 자살 시도 7개월 이내에 자살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60대 이후 자살 시도자의 자살률도 다른 연령대에 비해 높았다. 또 2013년 대형병원 응급실을 찾은 자살 시도자 1359명을 대상으로 심층 면담을 실시한 결과, 이들 가운데 37.9%는 자살 시도의 이유로 ‘우울감 등 정신과적 증상’을 꼽았다. 이어 ‘대인관계로 인한 스트레스’가 31.2%를 차지했으며 ▲’경제적 문제'(10.1%) ▲’고독'(7.1%) ▲’신체 질병'(5.7%) 등이 뒤를 이었다. 남성의 50%, 여성의 40%가 자살을 시도할 당시 음주 상태였다.
더불어 자살 사망자 8000여명의 통계를 분석한 결과, 자살 직전 남녀 모두 정신과적 질환으로 인한 의료 이용이 이전보다 50%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은 소화기계 질환으로 병원을 찾는 경우도 47% 늘어난 점이 눈에 띄었다. 또 수면제와 항정신병약물 복용도 크게 늘어났다. 이번 실태 조사에는 72건의 자살 사망 사례에 대해 유가족의 심층 면담과 유서 분석 등을 통한 ‘심리적 부검’도 포함됐다.
복지부는 이를 통해 자살에 이르는 유형을 ▲급성 스트레스 유형 ▲만성 스트레스 유형 ▲적극적 자해·자살 시도 표현 유형 ▲정신과적 문제 유형 등 크게 4가지로 나눴다. 자살을 앞둔 이들이 보이는 연령대별 징후도 분석했다. 20대 이하의 경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자살 관련 문구나 사진을 올리고, 30∼40대는 음주가 심해지며 점차 관계 단절의 양상을 보였다. 또 50∼60대의 경우 자식들에게 ‘어머니·아버지를 잘 모시라’는 당부의 말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복지부가 전국 19∼75세 국민 1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대국민 자살 인식조사에서는 응답자의 73.9%가 ‘자살은 절대로 정당화될 수 없다’고 응답했다. 그러나 응답자의 절반은 ‘심한 불치병으로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자살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고 답하는 등 자살을 문제 해결 수단 중 하나로 인식하는 비율이 높았다. 또 응답자는 11.9%는 ‘누군가 자살을 원한다면 우리가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25.6%는 ‘누군가 자살하겠다는 결심을 한다면 아무도 그 사람을 막을 수 없다’고 답했다.
복지부는 이번 실태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자살사망자 심리적 부검 확대 ▲자살예방 생명지킴이 양성 확대 ▲통합적 자살고위험군 지원체계 구축 ▲생명존중문화 조성 캠페인 등의 자살예방 대책을 올해 실시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자살수단에 대한 접근성을 차단하고 국민의 정신건강을 증진시키는 내용 등이 포함된 정부 차원의 중장기 자살예방종합대책을 수립한다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자살률이 높은 것은 사회가 개인을 보살피는 공동체로서의 기능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자살 방지를 정부에만 맡겨 놓을 것이 아니라 종교계와 시민사회단체·정부 모두가 팔을 걷어붙이고 자살률 줄이기 캠페인에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어 “누군가가 방문해 대화하는 것만으로도 자살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 당장 촘촘한 안전망을 짜기에는 어려움이 있는 만큼 정부와 민간이 힘을 합쳐 최소한의 물질적·정신적 지원이라도 제공하기 시작해야 한다. 어려움에 처했는데도 손을 내밀 곳을 몰라 극단적 선택을 하는 일이 없도록 당장 범국가적 노력이 발동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