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주의 일상 톡톡] 고령화 사회의 그늘, 치매

고령사회는 아프다. 무병장수가 힘들기 때문. 특히 노인 인구의 전유물로 이해되는 치매는 더 두렵다.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의 일상생활마저 황폐화시킬 수 있어서다. 시설 간병은 비용 압박이, 재택 간병은 가족 손길이 필수다. “긴 치매는 효자조차 무릎 꿇린다”는 말이 있다. 치매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예방법에 대해 알아본다.

#1. 주부 김모(55)씨는 요즘 들어 부쩍 심해지는 건망증 때문에 고민하고 있다. 휴대전화로 통화를 하면서 전화기를 찾기 위해 한참을 돌아다니는가 하면, 대화를 할 때마다 적절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왜 그거 있잖아…그거’라며 뜸을 들이곤 한다. 김씨는 “’혹시 치매 초기 증상은 아닌가’라는 생각에 조만간 동네병원을 찾아 치매 검진을 받아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2. 지난 10월 치매에 걸린 박모(73·여)씨는 아들 내외와 함께 동해로 단풍여행을 떠났다. 하지만 아들 내외는 매정하게 그를 휴가지에 혼자 놔두고 돌아가버렸다. 길을 헤매던 박씨는 경찰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집을 찾았지만, 아들은 ‘처음 본 사람’이라며 딱 잡아뗐다. 결국 경찰은 관련기관과 협의해 그를 요양원으로 보냈다.

#3. 경기도에 사는 최모(68)씨는 3년 전부터 주변 사람들과 한 약속을 쉽게 잊어버렸다. 심지어 텃밭에 심어놓은 작물조차 기억이 나지 않았다. 병원을 찾은 결과, 우울을 동반한 ‘조발성 알츠하이머형 치매’라는 판정을 받았다. 최씨는 “내가 정말 치매에 걸릴 줄은 몰랐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노년층의 치매 환자가 급증하면서 이로 인한 사회적 손실도 연간 2조원에 육박하는 등 최근 4년간 2배 이상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정책연구원이 발표한 ‘건강보장정책 우선순위 설정을 위한 주요 질병의 사회경제적 비용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치매로 인한 비용은 2008년 8625억원에서 2012년 1조9234억원으로 123%나 늘었다. 특히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치매 등 노인 환자 비율이 높은 질병의 사회적·경제적 비용이 증가하고 있다. 치매가 속한 ‘정신 및 행동장애’ 질병군에 의한 비용은 2008년 전체 비용의 6.1%에서 2012년 6.9%로 늘었다.

뿐만 아니라 치매 노인에 대한 학대 건수도 매년 늘어 5년 만에 3배 수준으로 급증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전국의 노인보호전문기관에 신고가 접수(2014년 5월 기준)된 치매 노인 학대는 ▲2007년 276건 ▲2008년 374건 ▲2009년 399건 ▲2010년 577건 ▲2011년 622건 ▲2012년 782건이다. 5년 만에 2.83배(276→782건)로 늘어난 것이다. 치매 노인 가운데 ‘치매로 의심되는 노인’, ‘치매 진단을 받은 노인’에 대한 학대는 각각 ▲2007년 174건·102건 ▲2008년 248건·126건 ▲2009년 264건·135건 ▲2010년 386건·191건 ▲2011년 389건·233건 ▲2012년 452건·330건으로 해마다 늘었다.

반면 치매가 없는 일반 노인에 대한 학대 건수는 ▲2007년 2036건 ▲2008년 1995건 ▲2009년 2275건 ▲2010년 2491건 ▲2011년 2819건 ▲2012년 2642건 등으로 소폭의 등락을 보였다. 치매 노인에 대한 학대의 유형은 신체적·정서적·재정적·성적 학대, 방임, 유기 등이다.

실제 춘천에서는 지난해 3월 70대 여성 치매 환자를 휠체어에 묶어 움직이지 못하게 한 혐의로 요양원 관계자 5명이 입건됐다. 이들은 공동 세면장 출입문을 열어두고 노인들을 목욕시켜 성적 수치심을 유발한 혐의도 받았다. 지난해 4월 울산에서는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살해한 혐의로 A씨가 구속됐다. A씨는 술을 마신 채 귀가한 뒤 어머니에게 “치매 약을 먹었느냐”고 물었는데 대답하지 않자 화가 나 “같이 죽자”며 목을 졸라 숨지게 한 것으로 조사됐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의 치매 비율은 2008년 8.4%, 2010년 8.8%, 2012년 9.1%로 해마다 치솟고 있다. 2012년의 경우 남성 15만6000명, 여성 38만5000명 등 총 54만1000명이 치매를 앓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추세라면 치매 인구는 2030년 127만명, 2050년에는 271만명으로 20년마다 2배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권순만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의학기술의 발달로 수명이 연장되다 보니 치매 환자가 늘어난 만큼 학대 건수도 증가하는 것”이라며 “정부는 장기요양보험을 확대하고 개인은 치매 증상이 보이면 서둘러 병원을 찾아 진행속도를 늦춰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치매 노인을 대상으로 하는 요양 시설과 인력이 부족하다 보니 양질의 서비스가 이뤄지지 못하고 학대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며 개선을 촉구했다.

이처럼 치매는 환자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 구성원들의 삶의 질도 떨어트리는 무서운 질환이다. 치매를 일으키는 원인은 다양한데, 흔히 퇴행성 질환으로 알려진 알츠하이머병과는 다르게 혈관성 치매는 충분히 예방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뇌졸중을 예방하고 혈관건강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며 “고혈압과 고지혈·당뇨·비만 등 뇌혈관에 악영향을 미치는 원인들을 잘 관리하면 혈관성 치매의 위험에서 멀어질 수 있다”고 조언한다.

혈관성 치매는 뇌를 구성하고 있는 뇌세포에 혈액이 공급되지 않아 인지기능의 소실이 발생하는 증상이다. 주요 발병 원인은 뇌졸중이다. 뇌졸중과 혈관성 치매는 위험요소를 공유하는 질환이다. 뇌졸중 예방에 좋은 활동이나 생활관리, 치료 등은 혈관성 치매로 진행되는 것을 예방한다. 건강한 생활습관이 가장 중요하며, 스트레스를 줄이는 것이 최우선이다. 스트레스는 혈관을 수축시키고 혈압을 높여 혈관에 무리를 준다.

혈관에 악영향을 주는 나쁜 식습관도 개선하는 것이 좋다. 나트륨을 많이 섭취하면 고혈압이나 심장·신장 질환을 유발하고 악화시킨다. 비만은 고혈압은 물론 고지혈증으로 이어져 혈관 건강에 해롭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하다. 요즘처럼 추운 겨울철에는 갑자기 찬 공기에 노출되면, 혈관이 급격히 수축해 뇌경색이 일어나기 쉽기 때문에 보온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혈관성 치매 환자는 뇌졸중 환자와 마찬가지로 보행장애나 연하곤란·사지 마비 등의 신경학적 증상을 함께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 치료 역시 뇌졸중 치료에 기반을 둬 진행된다. 치료를 위해서는 꾸준한 약물 치료와 운동, 식습관 관리 등이 필요하고 증상이 나타나면 신속히 의료기관을 방문하는 것이 중요하다. 뇌졸중 유발인자인 비만과 고혈압·고지혈증·당뇨 등의 질환을 앓는 경우 정기적인 검진을 통해 본인의 뇌혈관 건강을 점검해 보는 것이 좋다.

한 신경정신과 전문의는 “증상을 가볍게 여기고 자연회복을 기대하거나 검증되지 않은 민간요법 등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것은 치료시기를 놓쳐 환자에게 되레 독이 된다”며 “인지기능이 갑자기 저하되거나 동반증상이 나타나면, 즉시 응급의료기관을 방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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