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살 아들을 둔 전업주부 김연미(서울 마포구)씨는 모든 일에 완벽을 추구하는 ‘슈퍼맘’이다. 특히 아이들 먹거리에 관심이 많다. 매 끼니 잡곡밥에 국은 물론, 나물과 해산물을 위주로 반찬을 마련한다. 단 것은 절대 주지 않지만 과일만큼은 실컷 먹게 한다. 얼마 전부터는 과일을 좀 더 많이 먹을 수 있도록 블렌더기를 사서 갈아주기 시작했다. 하지만 얼마 전 소아과 정기검진을 받으러 가서 큰 충격을 받았다. 부모를 닮아 키가 크리라고 생각한 아이가 또래보다도 작았던 것. 칼슘·철분 수치도 떨어졌다. 의사는 “식이섬유 섭취가 과다해 다른 영양소 흡수를 방해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웰빙(wellbeing), 웰이팅(welleating)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몸에 좋은 영양소를 챙겨 먹는 사람이 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식이섬유’다. 소화효소에 의해 분해되지 않는 영양소인데, 채소·과일·곡류·해조류의 거친 부분에 많다. 소화흡수가 안 되고 배만 불리는 역할을 해 과거에는 식이섬유를 꼭 섭취해야 하느냐를 놓고 논란이 많았다. 하지만 최근 상황이 달라졌다. 식이섬유가 고지혈증·당뇨병·비만·암 예방 등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가 쏟아지고 있어서다.
포만감 불러 다이어트에 도움
분당서울대병원 소화기내과 이동호 교수는 “식이섬유는 스펀지와 비슷하다. 위에서 소화가 안 돼 장으로 내려가 물을 끌어당긴다. 장 속 내용물의 부피를 빠르게 부풀려 변을 신속하게 만들어 내보낸다. 식이섬유가 변비에 좋은 이유다. 물을 끌어당길 때 유해물질도 같이 흡착한다. 장내 유해세균, 독성물질, 콜레스테롤·당 등을 함께 포획해 바깥으로 배출해 만성질환을 예방하는 효과를 나타낸다. 포만감이 커 다이어트에도 도움을 준다”고 말했다.
식이섬유를 많이 먹는다고 무조건 좋은 건 아니다. 신한대 식품영양학과 김영성 교수는 “식이섬유 관련 건강기능식품이 쏟아지면서 마케팅을 위한 홍보가 난무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식이섬유 섭취가 크게 부족한 걸로 착각하는 사람이 많다”고 지적했다. 한국인의 식이섬유 섭취량이 생각보다 작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식이섬유 섭취량은 하루 평균 19.8g이다 미국인은 물론, 일본인(평균 15g/일)보다 높은 편이다. 밥이 주식이고 건더기가 많은 국·나물을 항상 곁들이는 데다 식이섬유가 많은 김치를 밑반찬으로 먹기 때문이다. 지난해 한국영양학회가 실시한 영양섭취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식이섬유 평균 섭취량은 학회 권고 기준(남성 25g, 여성 20g)에 약간 못 미쳤지만 30~49세의 경우 충분 섭취량을 넘은 25.4g이었다. 단, 10대와 20대에서는 식이섬유를 충분히 섭취하지 못한 사람이 다소 많았다.
김 교수는 “10∼20대에는 가공식품과 인스턴트 식품의 선호도가 높다. 통조림·패스트푸드·과자 등의 식품에는 식이섬유가 거의 없는데, 이런 나쁜 식생활 습관을 가졌을 경우 식이섬유 섭취에 신경 써야 한다”고 말했다.
노약자나 어린이가 식이섬유를 과다 섭취하고 있다는 주장도 많다. 정상인의 경우 하루에 필요한 식이섬유는 잡곡밥과 야채 건더기가 있는 국, 나물 두 가지가 포함된 한 두끼 식사로도 충분하다.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문진수 교수는 “식생활 습관이 좋은 30% 정도는 세끼 잡곡밥에 나물, 과일, 심지어 과일·채소를 통째로 간 음료까지 섭취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50대 셋 중 한 명꼴 과다 섭취
문 교수팀이 조사한 결과, 식이섬유를 과다 섭취하는 비율은 전 연령에서 5~40%에 이른다.
특히 건강에 관심이 많은 50~64세 사이에서는 37.8%에 달했다. 문 교수는 “식이섬유를 과다 섭취하면 뜻밖의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첫째는 복통·설사 등 각종 장 질환이다. 이 교수는 “적정량의 식이섬유(성인 25g)는 장에서 좋은 작용을 하고 배출되지만 그 이상은 문제를 일으킨다. 식이섬유가 과다하면 가스를 생성해 장 근육 운동에 이상을 일으킨다. 근육 경련이 일어나듯 장이 경련을 일으켜 설사가 생기거나 반대로 장이 마비돼 변비·복통이 생긴다”고 설명했다.
특히 장이 덜 성숙한 영·유아나 어린이가 고위험군이다. 문 교수는 “요즘 채소·과일 등을 신경써서 먹이는 엄마가 많아졌다. 그래선지 식이섬유 과다 섭취로 병원에 오는 환아 수도 늘고 있다. 과일을 지나치게 많이 먹어 설사를 계속하다 장이 마비된 아이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영양소 흡수 막아 질환 유발 우려
둘째는 영양소 흡수 문제다. 김 교수는 “식이섬유가 콜레스테롤과 당, 독성 성분을 흡착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미네랄도 같이 흡수한다. 칼슘·철분·비타민B2·아연이 대표적”이라고 말했다. 밥을 두 끼 이상 제대로 챙겨 먹는 사람일 경우 식이섬유가 풍부한 과일을 통째로 갈아 마시거나, 식이섬유 음료를 추가로 섭취하면 몸에 필요한 영양소가 같이 빠져나간다. 특히 영·유아와 어린이는 식이섬유 섭취로 배가 불러 다른 음식을 충분히 못 먹을 수 있다. 칼슘과 미네랄 흡수가 방해돼 키 성장이 더뎌진다. 노령층에선 골다공증이나 빈혈 같은 위험이 커진다.
셋째는 변비 유발이다. 김 교수는 “잡곡밥·채소·과일 위주로 음식을 섭취했는데도 변비가 생긴다고 하는 사람이 꽤 있다. 하루에 물을 먹을 수 있는 양은 한정돼 있는데, 식이섬유를 그보다 많이 먹으면 변이 딱딱해지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의사들도 진단 시 환자의 음식 섭취 부분을 간과하는 경우가 많다. 다른 이유가 없는 변비라면 식이섬유 과다 섭취인지 의심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하루 필요량 어른 25g, 어린이 10g~20g
식이섬유는 어떻게, 얼마만큼 섭취해야 할까. 이 교수는 “식이섬유의 좋은 점만 취하고 부작용을 피하려면 적정량을 먹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하루 필요한 식이섬유량은 어른 기준 약 25g, 어린이 기준 약 10g~20g이다.
일반적으로 한두 끼 정도를 잡곡밥과 나물 반찬으로 먹는다면 해결되는 양이다. 세끼를 한식으로 잘 차려 먹는 영·유아나 어린이, 노령층은 충분량 이상을 섭취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이런 사람은 과일 섭취를 주의해야 한다. 김 교수는 “사과 하나에는 일일 섭취량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식이섬유가 들어 있다. 비타민 섭취를 위해선 과일을 먹어야 하나 식이섬유를 생각하면 과육과 껍질을 통째로 갈아 먹기보다 즙만 짜내 먹는 게 더 낫다”고 말했다.
고지혈증이나 비만·당뇨병 등이 있다면 식이섬유를 좀 더 많이 섭취해야 한다. 하지만 섭취량이 지나칠 경우 다른 영양소가 흡수되지 않을 수 있어 잡곡밥과 나물 반찬 위주로 두 끼 정도 먹는다면 충분하다. 너무 바빠 패스트푸드나 가공식품으로 세끼를 때울 수밖에 없다면 곶감을 하루 한 개씩 먹는 것을 추천한다. 식이섬유 함유량이 개당 6g으로 다른 식품에 비해 월등히 많다.
배지영 기자 bae.jiyou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