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10년새 급증… 조기진단이 살 길 강남세브란스병원 신경과 최영철 교수가 신경근육질환 의심환자의 근전도를 검사하고 있다. 최 교수는 난치성 신경근육질환도 조기에 발견하면 증상완화는 물론 진행을 억제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강남세브란스병원 제공 최근 10년간 신경근육질환자가 급격히 늘어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대한신경근육질환학회(회장 최영철·강남세브란스병원 신경과 교수)는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를 분석한 결과 우리나라 신경근육질환자수가 2005년 8059명에서 2014년 1만3609명으로 약 70% 증가했다고 18일 밝혔다. 신경근육질환이란 말초신경과 근육에 생기는 질병을 뜻한다. 말초신경은 두개골이나 척추 속에 들어 있는 중추신경계에서 갈라져 나와 근육이나 피부 등 멀리 떨어진 말단 장기를 중추신경계와 연결시키는 신경 그물망을 일컫는다. 중추신경계에서 결정된 명령을 근육 등 말단 장기에 전달하거나 통각 등의 감각 정보를 중추신경계로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신경근육질환에 걸리면 이들 기능을 모두 잃게 된다.
강남세브란스병원 신경과 최영철 교수는 “신경근육질환에 대한 인식이 아직 낮은데다 증상이 다른 병과 혼동하기 쉬워 실제 환자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신경근육질환의 일종인 폼페병은 예상 발생률이 4만명당 1명이다. 국내 환자수는 1250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실제로 치료를 받는 환자는 30여명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신경근육질환을 치료할 때 가장 중요한 열쇠는 ‘조기진단’이다. 일찍 발견해 적극적으로 치료하고 관리하는 것만이 근육 소실과 약화로 인한 합병증과 장애를 줄일 유일한 길이다. 최 교수는 “유병 기간이 길어질수록, 첫 진단이 늦어질수록 휠체어 등 재활보조기구 의존도가 높아지고 삶의 질도 현저히 떨어진다”며 “어떻게든 조기에 발견해 치료를 일찍 시작하는 게 상책”이라고 강조했다.
◇근디스트로피=전 연령에서 발병할 수 있다. 오랜 시간 진행되면서 몸을 움직이는 근육뿐 아니라 호흡근육까지 단계적으로 악화된다. 여러 신경근육질환 중 환자가 가장 많은 병이다. 실태조사 결과 현재 국내엔 약 3500명이 근디스트로피 진료를 받은 적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샤르코-마리-투스병=특정 유전자의 돌연변이로 운동신경과 감각신경이 손상되는 병이다. 최근 10년 동안 환자수가 3.3배나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손과 발의 근육이 점점 위축돼 힘이 약해지고 발과 손의 모양이 변형되는 것이 특징이다. 유병률은 인구 2500명당 1명꼴로 추정된다. 유전성 희귀병 중에선 발생빈도가 비교적 높은 편이다.
◇폼페병=당분을 분해하는 효소인 α-글루코시타아제(GAA)의 결핍으로 발생하는 신경근육병이다. 섬유조직에 당분이 쌓이면서 근력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어렸을 때는 주로 심장근육에, 성인이 된 후엔 사지근육에 당분이 쌓인다. 폼페병이 영아기에 발병하면 보통 1년 안에 심부전증으로 사망할 만큼 치명적이다. 다행히 이 고비를 넘기면 GAA 대체 효소를 투여하는 방법으로 근력을 개선해 일상생활을 수행할 수 있게 된다.
◇파브리병=폼페병과 마찬가지로 GAA의 결핍으로 GL-3이라는 인지질이 신장, 심장, 혈관, 신경계에 쌓이면서 사지통증과 발열 증상을 보이는 병이다. 주기적으로 반신 마비 또는 운동실조, 급성 팔다리 통증 등이 나타나는 ‘파브리 위기’ 증상을 겪는 것이 특징이다. 나이가 들면서 GAA 활성도가 점점 더 떨어져 신장, 심장, 뇌혈관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파브리병은 모계 유전병이다.
◇척수성 근육위축=운동신경세포가 점점 퇴화하는 유전성 신경근육병이다. 팔다리 근육이 점차 위축되면서 근력이 떨어진다. 대부분 어릴 때 발생해 아주 천천히 악화되는 것이 특징이다. 주로 어깨와 엉덩이 근력을 중심으로 양쪽이 대칭적으로 약화된다. 삼킴 장애와 혀에서 경련하듯 떨리는 부분 수축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중증근무력증=신경과 근육의 접점 이상으로 근력이 떨어지고 근육 피로가 누적되는 병이다. 다른 신경근육병과 달리 피곤하면 이상 증상이 더 심해지고, 조금 쉬면 호전되기를 반복한다. 발병 초기 가장 흔한 증상은 눈꺼풀 처짐과 사물이 겹쳐 보이는 복시 현상, 발음이나 목 넘김에 문제가 생기는 입 주위 마비감이다. 더 진행하면 호흡근력 약화로 기계를 이용한 인공호흡 처방을 필요로 한다.
신경근육질환 위험신호는… 팔다리 힘 빠지고 숨가쁨·삼킴 장애 땐 의심을
신경근육질환은 근육마비로 보행에 어려움을 겪다가 급기야 호흡에도 문제가 생겨 인공호흡기의 도움을 받아야 연명할 수 있는 병이다. 폼페병 등 극히 일부 질환을 외에는 적절한 치료제가 없어 증상만 완화시키는 대증요법에 의존하는 것도 문제다. 따라서 어떻게든 위험신호를 조기에 포착, 진행을 최대한 억제시켜야 한다. 신경근육질환이 보내는 위험신호는 다음의 4가지로 정리된다.
① 팔다리 힘 빠짐, 부자연스러운 걸음걸이=신경근육질환 환자에게서 가장 많은 초기 증상은 계단을 오르내릴 때 불편함과 걷기, 달리기의 어려움이다. 더 진행되면 제자리에서 일어서기 어렵고 자주 넘어진다. 하지근육이 약해져 걸음걸이에도 이상이 생긴다. 엉덩이를 좌우로 뒤뚱거리며 걷거나(트렌델렌버그 징후) 앉은 자세에서 일어설 때 손으로 바닥과 무릎을 짚어야만 한다(가우어 징후).
② 숨 가쁨과 수면장애=숨 가쁨이나 호흡곤란도 주요 증상이다. 호흡근육이 약화돼 숨쉬기가 어려운 것이다. 누웠을 때 호흡이 더 어려워 잠자는 동안 숨이 가쁘다. 숙면을 취하지 못해 낮에 졸림, 두통, 불면 증상을 겪는다.
③ 원인을 알 수 없는 혈액수치 상승=피검사 결과 원인불명의 간수치 상승이 있고 근력도 약해졌다면 의심할 필요가 있다. 특히 혈중 크레아틴 키나아제 농도가 높을 때 주의해야 한다. 신경근육질환이 있으면 약해진 근육에서 효소가 빠져나오기 때문이다.
④ 얼굴 근육 부조화, 삼킴장애=얼굴에서 신경근육질환이 나타나면 눈을 뜬 채 잠을 자게 된다. 휘파람이 잘 불어지지 않고 혀가 위축돼 목 넘김이 어려운 삼킴장애(연하곤란)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이기수 의학전문기자 ks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