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들 ‘낙인효과’로 약 복용 꺼리기
전문의들 “오히려 안 먹어서 문제”지적
우울증 치료제인 항우울제에는 ‘약을 먹으면 바보가 된다’‘성욕이 떨어진다’ 등 부정적 꼬리표가 따라다닌다. 국내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은 이에 대해 “대부분 근거없는 낭설”이라며 “약 복용을 꺼리는 것이 정작 우울증 치료를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우울증 치료제인 항우울제에는 ‘주홍글씨’가 박혀 있다. ‘약을 평생 먹어야 한다’ ‘약을 먹으면 바보 된다’ ‘성욕이 떨어진다’등이 그것이다.
항우울제에 덧칠해진 이런 부정적 이미지들은 실제로 환자들이 약 복용을 거부하거나 꺼리는 이유가 되고 있다. 이런 속설들은 과연 근거가 있을까.
현재 국내에서 처방되는 대표적인 항우울제에는 삼환계 항우울제(TCA),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SSRI), 세로토닌 노르에피네프린 재흡수 억제제(SNRI) 등이 있다. 항우울제는 뇌에 작용해 세로토닌(serotonin), 노르에프네프린(norepinephrine), 도파민(dopamine) 등 신경전달물질의 분비를 조절함으로써 우울증 증상을 개선한다. 세로토닌은 뇌에서 기분 수면 충동조절 불안 식욕 기억 등에, 노르에피네프린은 기분 불안 흥미 동기 스트레스 등에 각각 관여한다. 도파민은 주의력, 의욕 기분 중독 등을 관장한다. 이들 뇌 신경전달물질의 불균형을 복원해 두뇌기능을 정상적으로 회복시키는 약물이 항우울제인 것이다.
항우울제는 한번 먹으면 평생 복용해야 할까.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은 우울증이 처음 발생한 환자의 경우 증상이 없어진 시점부터 5~10개월 정도 약 복용을 유지하다가 점차 감량한 뒤 복용을 중단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김태 강동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재발 등에 대해서는 “한국형 우울장애 약물치료 지침에 따르면 재발의 경우 20개월까지 항우울제 복용을 유지하고, 3회 이상 우울증을 경험할 경우 초기 치료용량 대비 84% 수준에서 유지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고 밝혔다.
항우울제 부작용 우려는 어떻게 봐야 할까. 모든 약이 그렇듯 항우울제도 부작용 우려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치료 초기에는 위장장애, 변비, 입 마름, 오심, 소화불량 수면장애 등 부작용이 올 수 있다. 또 항불안제 중 벤조디아제핀계열(상품명 발륨ㆍ아티반ㆍ자낙스) 등은 인지기능 저하와 관련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이에 대한 전문의들 답변은 ‘우려할 만한 수준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복수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150여 가지 약물 중 인지장애 등과 관련된 약물이 있지만 이는 전문의의 처방과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면 해결될 수 있는 문제”라고 말한다. 최희연 이대목동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항우울제는 경구로 복용해 위장관을 통해 흡수돼 간이나 신장을 통해 대사되고 배설된다”면서 “복용 후 2~4주에 걸쳐 효과가 나타나기에 안전하다”고 했다.
예전에 비해 효과와 성능이 개선된 약물들이 속속 개발되고 있는 것도 안전성 우려를 덜고 있다. 1950년대 개발된 삼환계 약물은 나른함, 체중증가 등 가벼운 부작용부터 과량 복용 시 사망에 이르는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했다. 하지만 1980년대 후반 플루옥세틴을 시작으로 다양한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억제제(SSRI)가 개발돼 효과와 안전성이 확보됐다는 설명이다. 안용민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항우울제는 정신건강의학과 약물 중 가장 안전한 약물”이라고 했다.
항우울제에는 ‘복용하면 바보가 된다’는 낙인효과도 따라다닌다. ‘우울증 치료를 받으면 결국 미쳐버릴 것’이라는 소문도 돈다. 정명훈 한림대성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환자가 약을 먹고 바보가 될 약을 줄 의사가 세상에 어디 있겠느냐”는 반문으로 받아쳤다. 서정석 건국대 충주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항우울제 등 향정신성 약물은 마약이 아니라 중추신경계 치료를 위해 사용하는 약물을 의미하는 말인데 대중들이 정신을 파괴하는 약들로 오인하고 있어 인식개선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성욕을 저하시킨다는 것도 낭설이라는 설명이다. 박한선 성안드레아 신경정신병원 과장은 “성욕 저하는 상대적으로 선택된 세로토닌 재흡수 차단제에서 흔히 발생한다”면서 “하지만 부작용이 없는 다른 항우울제로 변경하면 해결 가능하다”고 말했다. 박 과장은 “우울증 자체가 성욕을 떨어뜨리는 경우도 흔하다”면서 “이 경우 항우울제를 사용하면 오히려 더 만족스럽게 성생활을 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박 과장은 “항우울제를 복용하고 성욕이 떨어질 경우 일단 우울증 증상이 호전되길 기다리거나, 부작용이 덜 한 다른 약으로 변경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밝혔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은 항우울제와 관련한 대중의 부정적 인식이 정작 우울증 치료를 막는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각종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자살률 세계 1위임에도 우울증 치료율에서는 최저 수준에 머물러 있다. 정부 역학조사 결과와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국내에서 주요 우울장애를 평생 1번 이상 앓는 비율은 2001년 4.0%에서 2011년 6.7%로 높아졌고, 2013년 기준 정신적ㆍ정신과적 문제로 생을 마감한 사람의 숫자는 4,011명(남성 2,210명ㆍ여성 1,801명)에 달한다. 이에 반해 지난해 11월 발표된 경제협력기구(OECD)의 ‘한눈에 보는 보건의료 2015’에 따르면 우리나라 하루 항우울제 소비량은 1,000명당 20 DDD(1일 사용량 단위·2013년 기준)로 28개 조사국 중 두 번째로 낮다.
김치중 의학전문기자 cjkim@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