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속 ‘왜곡된 性’ 현실로 착각… 실행 옮기는 아이들

《 데스크톱 컴퓨터 한 대를 가족 모두 이용하던 시절, PC는 거실 같은 개방된 공간에 놓여 있었다. 부모님이 없는 틈을 타 몰래 ‘야동(야한 동영상)’을 보려면 진땀을 흘려야 했다. 그러나 스마트폰이 필수품이 된 지금, 아이는 자신만의 공간에서 단 1초 만에 스마트폰을 켜고 성(性)을 배운다. 그리고 나이에 걸맞지 않게 풍부한 성 지식을 갖춘 ‘어른이’가 돼 간다. 생물 교육에 그치는 학교 성교육은 알고 싶은 걸 알려주지 못한다. 부모님께는 민망해서 물을 수 없다. 하지만 스마트폰은 그것이 노골적이든, 왜곡된 것이든 어른이들에게 성 지식을 제공한다. 》

초등학생 자녀를 둔 김성이(가명·40·여) 씨는 최근 두 딸을 태우고 운전하다 뒤에서 들려오는 이야기에 귀를 의심했다. “나 엄청 웃긴 거 봤는데 진짜 큰 엉덩이가 씰룩씰룩한다. 언니도 봤어야 했는데…. 그런데 어떤 아저씨가 나와서 막 엉덩이에다가…. 하하하.”

아직 초등학교 2학년인 딸이 중학생 언니의 휴대전화를 만지다 인터넷 사이트의 ‘야한 광고’를 클릭한 것이다. 김 씨는 “아직 ‘방귀’ ‘똥’ 이야기에 깔깔 웃는 나이여서 정확한 의미는 모르지만 뭐가 번쩍번쩍 나오니까 머릿속에 인상이 콱 남은 것 같다”고 말했다. ‘뭔가 아는 듯한’ 얼굴을 한 큰딸(13)은 엄마 눈치를 보고 있어 당황했다는 것이다.

○ 클릭 한 번으로 조숙해진 아이들

주모 씨(42·여)는 초등학교 6학년 딸이 방문을 닫고 있으면 마음이 불안하다. 너무 조용하다 싶으면 불시에 문을 벌컥 열어 보기도 한다. 주 씨가 불안해진 것은 3개월 전 딸이 자위하는 모습을 우연히 목격한 다음부터. 지금도 주 씨는 ‘그 일’에 대해 대화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부모 세대는 부모에게 성(性) 문제를 물어볼 생각조차 한 적이 없었고 여자가 성에 관심을 갖는 시기도 지금보다 늦었다.

그 대신 주 씨는 몰래 딸의 스마트폰을 훔쳐보았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메신저에는 ‘엄빠주의’(엄마 아빠가 근처에 있는지 주의하라는 뜻), ‘후방주의’(뒤에 사람이 있는지 조심하라는 뜻)란 말과 함께 음란사이트 링크가 걸려 있었다. 아이돌 스타를 소재로 쓴 가상소설 ‘팬픽’도 돌려 보는 것 같았다. 주 씨는 “내가 생각하는 ‘그런 데 관심 가지는 시기’는 중학교 3학년 이후였는데 준비도 없이 아이가 커버려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어른이’는 검색으로만 끝내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실행’하는 시기가 빨라졌다. 청소년 고민 상담 사이트에서 가장 많이 올라오는 내용이 “체외사정을 했는데 임신이 됐는지 안 됐는지”를 묻는 것이다.

동아일보와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이 최근 한 달간 수도권 아동·청소년 512명(초등학교 4∼6학년 260명, 중학생 252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을 통해 음란물을 접한 경험이 있다”는 비율은 32.8%였다. 남학생이 38.8%, 여학생이 26.6%에 달해 의외로 여학생들도 빨리 음란물을 접한 것으로 나타났다. 아이들이 ‘어른이’가 될 환경이 도처에 있는 셈이다.

스마트폰은 ‘전달’ 기능 하나로 동시다발적으로 링크를 보낸다. 이모 군(14)은 “초등학교 5학년 때 친구들이 내 스마트폰에 음란사이트 주소를 입력해줬다. 가입 절차가 따로 없어 아무나 들어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은밀한 호기심을 해결하기 위해 구글을 자주 이용한다. 구글도 네이버와 다음 등 국내 포털업체와 마찬가지로 청소년보호법에 따라 여성가족부에서 지정한 청소년 유해 매체에 접근할 땐 성인 인증 절차를 거쳐야 한다. 하지만 여성부가 지정하지 않은 유해 매체에 대한 필터링 기능이 국내 포털보다 허술하다. 구글에서는 특정 신체 부위만 입력해도 누드 사진이 무수히 뜬다.

○ 애들 욕구는 큰데 학교 성교육은 부실

조사 대상자 중 71.9%는 ‘성교육을 학교에서 받았다’고 답했지만 만족도는 낮았다. 설석범 군(14)은 “지난해 양호선생님 주도하에 45분씩 2번 받았는데 주요 내용은 여성의 신체구조, 남성의 신체구조, 여성의 생리였다”고 말했다. 박근영 양(14)은 “1년에 한두 번 주기적으로 진행하는데 생리와 아기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교육받는다”고 말했다. 원모 양(16)은 “담임선생님이 성교육이 끝난 후 ‘아직 학생이니 공부가 우선이고 이성친구는 절대 만들지 말라’고 하셨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교육을 받을 때 아이들의 호응은 컸다. 우민선 양(14)은 “우리 학교는 매번 교육 내용을 다르게 하고 아이들이 알기 원하는 내용을 알려준다”고 설명했다. 학교는 성병 안 걸리게 하는 방법, 콘돔 바르게 착용하는 법을 알려줬다. 직접 콘돔을 만져 보게 하기도 하고 오이에 콘돔을 끼우는 실습을 남녀 모두 했다. 우 양은 “일부 싫어하는 학생도 있었지만 오히려 성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됐다”고 말했다.

○ “중요한 사람 생기면 부모님과 대화하고 싶어”

대부분의 아이들은 “민망해서 부모님과 야한 이야기를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진짜 속마음은 달랐다. 이동훈 군(14)은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을 땐 부모님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며 “사람 간의 관계를 어떻게 할지 인터넷은 알려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청소년상담단체인 ‘푸른아우성’ 신동민 책임상담원은 “과도한 사교육으로 스트레스를 받아서인지 아이들이 랜덤채팅앱이나 인터넷 미팅카페에서 인간관계를 맺는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결국 올바른 성교육의 가장 효과적인 해결책은 부모들과의 대화라고 지적한다. 친근하게 접근하는 부모를 아이들은 거부하지 않는다. 신 상담원은 “유아기 때부터 성에 대한 얘기를 나누면서 아이의 거부감을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 평소에는 아무 대화도 나누지 않다가 갑자기 “자, 솔직히 말해 봐” 한다고 아이와 성 상담이 이뤄지진 않는다. 신뢰를 쌓아 한 단계씩 대화의 계단을 높여야 한다. 이연화 씨(40·여)는 “‘절대 안 돼’라는 말부터 시작하니 아이가 입을 닫았다”며 “아이의 관심사와 관련해 이야기를 나누고 생각을 조금씩 교환하다 보니 대화 내용이 깊어졌다”고 말했다.

▼ 청소년상담 최다 고민은 ‘여친 임신 여부’ ▼

여학생들 ‘남친의 성관계 요구’ 걱정… 음란물 탓 ‘性은 더럽다’ 인식도

아이들이 ‘성(性)’에 대해 가장 알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청소년상담 단체들에 주로 접수되는 고민 유형은 크게 5가지로 나뉜다. 상담 학생은 중고교생이 많지만 초등학생도 적지 않다.

가장 많은 고민은 ‘여자친구가 임신했을까’ 하는 임신 여부다. 정확하지 않은 피임 지식을 갖고 일단 성관계부터 맺고 보는 것이다. 두 번째 유형은 음란물 중독.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야동을 보기 시작해 중독 수준에 이르렀다”며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부터 “딸이 모르는 남자들과 음란 채팅을 한다”는 부모들의 고민도 깊다.

고민 상담의 80%는 여학생인데 가장 많은 상담 내용이 ‘원치 않는 성관계 요구’에 대한 대처법이다. “사귄 지 넉 달이 됐는데 ‘사랑하면 할 수도 있는 것 아니냐’ ‘다른 커플들은 다 한다’라며 압박을 준다”는 고민이다.

‘부모의 성생활’에 대해 거부감을 갖는 아이들이 의외로 많다는 게 흥미롭다. 고민 중에는 “새벽에 물 먹으러 나갔다가 안방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고 부모님도 한다는 사실에 소름이 돋았다”는 내용이 적지 않다. 성을 인생의 자연스러운 부분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모바일 소설의 왜곡된 단면만 떠올리는 것이다.

이동순 한국부모교육센터 소장은 “부모는 아이들이 엇나간 성 인식을 갖지 않도록 정보를 걸러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며 “먼저 본인의 연애 시절 얘기를 꺼내도 보고 자녀에게 먼저 다가가고 또 경청하는 자세를 가져야 할 때”라고 말했다.

노지현 isityou@donga.com·김재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