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첫 미용성형수술 가이드라인 나왔다

5개 단체, ‘유령의사’ 방지대책 등 공동 마련
대리 수술에 의한 의료사고 등이 끊이지 않자 성형업계가 자정을 위해 ‘미용성형수술 가이드라인’ 마련에 나섰다. 성형외과들이 밀집한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성형벨트’ 의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국내 첫 미용성형수술 가이드라인이 나왔다. 그랜드성형외과에서 대리 의사에 의한 성형수술(유령 수술) 등 서울 강남 성형벨트에서 빈발하고 있는 불법적인 성형수술로 인한 의료사고가 끊이지 않자 성형외과계가 발벗고 나섰다. 한국보건의료연구원과 대한성형외과학회, 대한미용성형외과학회, 대한성형외과의사회, 대한두개안면성형외과학회 등 5개 단체는 최근 서울 강남구 리츠칼튼호텔에서 ‘미용성형수술 안전 가이드라인 활용 활성화를 위한 토론회’를 열어 ‘미용성형수술 안전 가이드라인’(안)을 마련했다.

최종 가이드라인은 내년 1월 중에 공개된다.
미용성형수술 가이드라인은 유령 수술과 관련, 의사는 환자에게 본인 신분을 밝혀야 하고, 다른 사람의 명의로 진료하는 등 거짓이나 부정한 방법으로 진료하지 않아야 한다고 명시했다.
김우섭 대한미용성형외과학회 이사장은 “프로포폴 마취제에 의한 사고 등 다양한 형태의 의료사고가 빈발해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게 됐다”고 했다.
의료계는 가이드라인 마련에 대해 “이를 이행하는 병ㆍ의원에 인센티브를 주는 한편 불이행할 때는 강력한 제재를 가해야 한다”는 반응이다. 한 마디로 ‘당근’과 함께 ‘채찍’도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4년 이상 전문 교육 의사가 집도해야”
이번 토론회에서 공개된 가이드라인은 ▦시설 및 환경 ▦수술 전ㆍ중ㆍ후 단계 ▦응급처치 및 이송으로 분류해 환자가 병원 도착에서 수술 후 회복에 이르기까지 90여 항목의 기준으로 구성됐다.
가이드라인은 특히 미용성형수술을 최소한 4년 이상 전문 교육을 받은 의사가 수술을 집도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또한 환자 안전 담당자도 반드시 병ㆍ의원 내 두도록 했다. 덧붙여 수술하기 전 확인표를 제작할 때 담당 의사와 간호사가 함께 서명하고, 환자 동의서에 진단명과 시술 및 검사뿐만 아니라 주치의까지 기재함으로써 의료진의 책임을 높였다.
또한, 환자 사생활 보호를 위해 모든 병ㆍ의원 직원은 입사할 때 환자 정보보호를 위한 ‘환자 개인정보 비밀유지를 위한 서약서’를 작성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또한 의무기록은 환자 사생활 보호를 위해 담당 의료진만 확인하고, 환자 정보가 게시된 내용을 아무나 볼 수 있는 곳에 방치하지 않도록 했다.
최근 인터넷 등에 환자 동의없이 환자 사진이 노출된 것과 관련, 환자 사진을 드러낼 경우에는 반드시 환자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수술과 관련, ‘시간이 오래 걸리는 수술은 아침 일찍 시작해야 환자가 수술을 마치고 충분히 회복된 뒤 퇴원할 수 있다’며 ‘가능하면 수술을 오후 3시 이전에 마쳐 환자가 충분히 회복된 상태로 퇴원할 수 있게 한다’고 명시했다. 특히 ‘모든 수술 과정은 6시간 이내에 끝내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설명했다.
심혈관 질환자를 수술하는 것에 대해서는 ‘환자상태에 따라 결정해야 한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중등도 이상의 심혈관 질환을 가진 환자는 의원급 의료기관에서 수술하는 것보다 종합병원에서 수술하는 것을 권했다. 특히 이들 환자의 수술 여부와 치료법을 결정하기 위해 심장전문의와 혈액전문의, 내과전문의 등과 상의하도록 했다.
수술 도중 응급상황에 발생할 것에 대비해 매뉴얼을 갖추고, 소생기술에 능숙한 의료진을 1명 이상 두도록 했다. 특히 응급상황에 대비해 수송 계획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성윤 대한성형외과의사회 총무이사는 “수술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하기 위해 환자 안전 담당자를 정해 둬야 한다”며 “예컨대 마취는 어느 정도 경험 있는 사람을 담당자로 둬 환자가 완전히 회복될 때까지 책임지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성형외과들의 무분별한 미용성형수술에 제동이 걸리게 됐다. 한 성형외과에서 미용성형 수술을 하고 있는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유령수술 금지를 강제할 방법 찾아야”
이번 가이드라인 마련에 대해 관련업계에서는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이 연구해 만든 가이드라인이어서 어느 정도 권위는 있지만 최근 성형외과계의 큰 문제로 대두된 유령수술을 방지할 수 있을지 의문을 표하고 있다. 무엇보다 가이드라인은 ‘강제성’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이드라인을 제대로 활용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차상면 대한성형외과의사회 회장은 “가이드라인에 유령수술을 막을 제도적 장치가 없다는 게 아쉽다”며 “개인적으로는 유령수술을 한 의사를 강력히 제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동현 한국보건산업진흥원 팀장은 “중국인 등 외국인 미용성형 환자가 매년 50% 이상 늘어나고 있고 의료분쟁 이슈도 증가하고 있다”며 “의료분쟁이 발생할 때 해결방안 등 포함되면 좋겠다”고 했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현장에서 느끼는 안전 핵심은 누가 수술을 하느냐”라며 “유독 성형외과에서만 이런 안전 가이드라인이 나온 이유는 자신을 안전하게 치료해주는 의사가 아닌 것 같다는 데서 비롯됐다”고 했다. 안 대표는 “가이드라인이 법률위반 사항에 대한 부분까지 담기는 쉽지 않겠지만 내용을 포함시킬 수 있다면 더 안전한 형태의 가이드라인이 될 것”이라고 주문했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dkwon@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