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균 감염 확인 없이 처방… 급성 중이염 처방률 84.2%
장내 세균 균형 깨져 병 유발… 증상 있어도 2~3일 두고봐야
어린이들의 항생제 남용이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올해(1~6월) 급성중이염으로 즉시 항생제 처방을 받은 유소아(2~14세) 비율을 조사했더니 84.19%에 달했다. 지난해 국내 감기 환자의 항생제 처방률도 40%가 넘었는데, 어린이의 경우 처방률이 더 높았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한양대구리병원 소화기내과 한동수 교수는 “어린이는 몸의 면역체계가 완전히 갖춰지지 않아 항생제를 남용하면 복통을 비롯해 비만, 당뇨병 같은 대사질환이 생길 위험이 성인보다 훨씬 크다”며 “항생제 복용을 더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어린이는 항생제를 과도하게 먹으면 내성균(耐性菌)이 생길 뿐 아니라, 비만이나 당뇨병 같은 대사질환 위험까지 높아져 주의해야 한다. / 신지호 헬스조선 기자
◇항생제 처방 64%, ‘0~9세’ 어린이
항생제는 성인보다 어린이에게 더 흔히 쓰인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자료에 따르면 2013년 병원(30~100병상 규모)에서 항생제 처방을 받은 여러 연령대 중 0~9세 환자가 64%로 가장 많았다. 세브란스병원 소아청소년과 김규연 교수는 “어릴수록 감염 질환에 취약하고 증상도 더 심해 병원을 많이 찾기 때문”이라며 “문제는 세균 감염이 비교적 확실할 때만 약을 써야 하는데, 열이 나면 무조건 항생제를 처방하는 병원들이 많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부모들이 처음 찾은 병원을 못 믿고 여러 병원을 전전하는 것도 문제다. 아주대병원 소아청소년과 정현주 교수는 “아이와 함께 하루 서너 군데 이상의 병원을 돌아다니는 부모도 많다”며 “그러면 항생제가 여러 병원에서 중복으로 처방돼 복용량이 많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약 효과 줄고, 비만·당뇨병 유발
항생제 남용이 위험한 이유는 약에 대한 내성(耐性)을 키우기 때문이다. 병원균이 항생제에 과도하게 노출되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돌연변이를 한다. 이로 인해 여러 항생제에도 죽지 않는 ‘수퍼박테리아’가 생긴다. 서울아산병원 소아응급센터 류정민 교수는 “항생제 내성이 생기면, 중증질환이 생겨 항생제를 꼭 써야하는 상황이 생겼을 때 약이 듣지 않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항생제가 유해균과 함께 몸에 이로운 유익균까지 죽이는 것도 문제다. 특히 장(腸)에는 유해균과 유익균이 균형을 이루고 있는데, 항생제를 자주 복용하면 이 균형이 깨진다. 한동수 교수는 “이때 탄수화물 대사가 빠른 균이 늘어나면 비만, 당뇨병이 생긴다”며 “성인은 장내 유해균과 유익균의 균형이 깨져도 쉽게 회복되지만 어린이는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장내 세균 균형이 깨지면서 장내 면역 세포의 기능이 과해지기도 한다. 2014년 미국 시카고대는 항생제의 과도한 복용이 음식 알레르기를 유발한다는 연구 결과를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했다.
◇감염 확인 후 복용해도 문제 없어
어린이에게 항생제가 반드시 필요한 경우는 세균 감염이 비교적 확실한 중이염, 부비동염, 폐렴 등이 생겼을 때다. 중이염, 부비동염은 세균 감염이 원인이 아닐 수 있어 바로 항생제를 쓰지 않는 게 안전하다. 중이염은 증상이 생기고 2~3일 후에도 열이 나고 귀가 아플 때, 부비동염은 2주 이상 누런 코와 함께 열이 날 때 세균 감염을 의심하고 항생제를 쓴다. 정현주 교수는 “세균 감염일 경우를 대비해 미리 항생제를 처방해달라는 부모도 있는데, 감염 확인 후 항생제를 복용해도 늦지 않다”고 말했다. 감기는 세균이 아닌 바이러스로 인한 감염으로, 항생제 복용이 필요 없다.
☞항생제
병원성 세균을 죽이거나 증식을 막는 약으로 현재 150~200종류가 있다.
[이해나 헬스조선 기자 lhn@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