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맛은 사람의 기분을 기쁘게 해주지만 설탕으로 스트레스와 피로를 풀려다 오히려 건강을 악화시킬 수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햄과 소시지에 이어 ‘달콤한 독약’ 당분과의 전쟁이다. 세계보건기구(WHO)와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설탕 등 당분 섭취량이 하루 섭취 칼로리의 10%를 넘지 말아야 한다’고 권고키로 했다.
하루 2,000㎉를 기준으로 했을 때 50g 이하인 셈이다. 이는 캔 콜라(250㎖ㆍ당 함유량 27g) 두 개를 넘지 않는 분량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설탕과 꿀, 시럽, 과자, 사탕, 케첩은 물론 저지방 요구르트, 과일, 샐러드드레싱 등 광범위한 음식을 통해 당분을 섭취하는 만큼 단지 캔 콜라 한 병을 마시지 않는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한국인은 이미 ‘설탕 중독(Sugar Addiction)’인 상태다. 한국인은 당분을 하루 평균 65.3g 섭취, WHO가 권고하는 수준을 넘어섰다.
기원 전 4세기경 인도에서 처음 만들어진 설탕은 인간에게 알려진 가장 성공한 식품첨가물이다. 전혜진 이대목동병원 건진의학과 교수는 “적당량의 설탕은 포도당을 빠르게 올려 두뇌활동을 돕고 원기를 순식간에 회복시키는 역할을 하는 좋은 에너지원”이라면서도 “오랫동안 설탕을 습관적으로 과다 섭취하면 결국을 건강을 해치게 된다”고 했다. 비만이 되기 쉽고 혈액 속 중성지방 농도가 올라가는 동시에 심혈관 질환 위험이 커진다.
장기적으로 인슐린 저항성을 높여 당뇨병을 일으킬 수 있다. 미국 하버드대 보건대학원 영양학과 연구에서도 당분이 첨가된 음료수를 하루 1~2잔 마시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당뇨병에 걸릴 위험이 26%, 대사증후군에 걸릴 위험은 20% 늘었다.
심하면 관상동맥 질환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실제로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연구결과, 설탕을 과다하게 섭취하는 사람은 설탕이 조금 첨가된 음식만 먹는 사람에 비해 심장질환으로 사망할 위험이 3배나 높다.
지나친 당류 섭취는 장 기능에도 악영향을 준다. 전 교수는 “장은 인체의 가장 큰 면역기관이자 독성물질을 걸러내는 곳인데, 설탕을 많이 먹으면 장 내 나쁜 세균이 활발하게 증식해 장 기능을 해치고 장 점막을 손상시킨다”고 했다. 장 기능이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않으면 독소가 장 내에 그대로 쌓여 만성 피로를 일으키고 이 독소가 몸 구석구석 돌아다니면 서서히 몸을 망가뜨린다.
게다가 당류는 알코올이나 담배처럼 의존성이 커지고 중독된다. 오랜 기간 과다한 설탕에 노출되면 뇌의 보상중추에 작용하는 도파민이 분비되는데, 도파민은 마약을 복용할 때와 같은 쾌락과 행복감을 느끼게 한다. 홍상모 한양대구리병원 내분비대사내과 교수는 “단맛을 봤을 때 순간적으로 느껴지는 쾌감으로 인해 습관적으로 단 음식을 찾게 된다”며 “당분을 계속 섭취하다 보면 단맛을 원하는 강도가 점점 세져 더 많이 찾게 된다”고 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단 음식부터 생각나고 단 음식을 끊으면 손발이 떨리고 산만해지거나 무기력증ㆍ우울증까지 걸리는 경우가 있다면 설탕 중독을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설탕 중독은 신체ㆍ심리적 원인에 의해 단 것을 끊임없이 찾아 먹는 행동으로, 정신과 진단명으로 명시돼 있을 만큼 무서운 병이다. 단맛은 뇌 내 쾌락중추를 자극해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을 분비시킨다. 세로토닌은 사람의 기분을 좋게 만든다. 단 것을 먹으면 심리적 안정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기선완 국제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설탕 섭취로 스트레스와 피로를 푸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며 오히려 건강을 악화시킬 수 있다”며 “우울증이 있는 사람이 평소와 달리 자꾸 단맛을 섭취하고 싶다면 혹시 우울감이 증가한 것이 아닌지 체크해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설탕 중독은 어른보다 어린이에게 훨씬 더 위험하다. 어린이들은 단맛이 나는 아이스크림과 과자 등 기호식품의 주요 소비자이기 때문이다. 청소년은 가공식품을 통해 총 당류를 섭취하는 비율이 67.7%나 된다. 최근 급증하는 소아비만, 소아 성인병, 치아질병의 주요 원인으로 과도한 설탕 섭취가 주범으로 꼽히고 있다. 현재 매일 섭취하는 설탕, 포도당, 과당 같은 단당류, 자당과 같은 이당류 섭취를 10%만 줄여도 과체중이나 비만, 충치 등의 위험이 현저하게 떨어진다.
서정완 이대목동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미각이 형성되는 유아기에 단맛에 습관적으로 노출되면 성인이 됐을 때 더욱 단 것을 찾게 되는 잘못된 식습관이 형성될 수 있다”며 “어릴 때부터 가공식품보다 집에서 만든 간식과 과일을 먹게 하고 부모 스스로 모범을 보이는 등 올바른 식습관을 지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설탕도 문제이지만 액상과당 등 설탕 대용품이 건강에 더 나쁜 것으로 밝혀졌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설탕이 나쁘다고 해서 많은 사람들이 천연 설탕 대신에 싸구려 설탕인 액상과당과 꿀, 메이플 시럽, 아가베 시럽 등 대용품을 찾는다. 하지만 다양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설탕 대용품이 천연 설탕보다 건강에 더 나쁘다는 것으로 밝혀졌다.
대표적인 설탕 대용품이 액상과당이다. 액상과당은 옥수수 가루에 효소를 투입해 포도당과 과당으로 분리해 놓은 시럽 형태 감미료다. 설탕보다 1.5배 더 달면서 값이 싸 음료에 많이 사용된다. 빵이나 과자, 아이스크림, 요구르트, 소스류 등 광범위하게 들어 있다.
하지만 액상과당은 천연 설탕보다 혈중 과당 수치를 더 높여 신진대사에서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강희택 강남세브란스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액상과당은 인체에 흡수가 빨리 돼 혈당을 급격히 올리기 때문에 당뇨병은 물론 비만, 고지혈증, 심혈관 질환을 일으킬 수 있다”고 했다. 강 교수는 “액상과당은 에너지원으로 사용돼 다른 에너지원인 중성지방의 분해를 줄여 중성지방이 간에 축적되게 만들어 간을 손상하고 지방간을 일으킬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액상과당은 또한 비만의 주범이다. 액상과당은 설탕과 같은 성분이다. 두 가지 모두 포도당과 과당이 1대 1의 비율로 혼합돼 있어 단맛의 정도는 같다. 일반적으로 식사를 통해 혈당이 올라가면 식욕을 억제하는 호르몬인 렙틴의 분비가 늘고, 식욕을 증가시키는 그렐린의 분비가 감소한다. 하지만 액상과당은 렙틴의 분비를 늘리지 못해 그렐린의 분비 감소를 유발하지 못해 액상과당이 든 음식을 먹으면 배부른 것을 잘 느끼지 못해 과식하게 만든다. 게다가 단맛은 뇌에서 만족감을 느끼게 하는 도파민의 분비를 억제해 계속 단 것을 찾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콜라 등 탄산음료 대신 ‘무가당 100% 천연 과일 주스’를 마신다고 해서 건강에 더 유익한 것은 아니다. 무가당은 당을 더 첨가하지 않았다는 뜻이지 당이 없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강 교수는 “설탕 대신 과당, 포도당 등을 넣어도 ‘무설탕’이라는 표현은 가능하지만 무가당, 무설탕 식품을 저열량이나 다이어트 식품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며 “액상과당이 많이 함유된 청량음료나 과일주스의 섭취를 줄이고 차나 물로 대체해 마시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최근에는 달콤한 독약인 당분 대신 인공감미료 사카린나트륨(사카린)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한때 ‘공포의 백색가루’라는 오명을 받았지만 WHO가 1993년 다양한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사카린을 인체에 안전한 감미료라는 결론을 내렸다. 국제암연구소도 사카린의 분류를 ‘인체 발암성이 없는 물질’을 뜻하는 ‘3군’으로 바꿨다. 식품의약품안전처도 사카린의 사용범위를 어린이 기호식품까지 허용해 사카린을 복권시켰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dkwon@hankookilbo.com
식품 당 함유량(g)
초코파이(35g) 12
바닐라 아이스크림(100㎖) 15
오렌지주스(235㎖) 19
콜라 1캔(250㎖) 27
플레인 요구르트(300㎖) 35
카페 모카 톨사이즈(330㎖) 25
초코바(51g) 26
자료: 식품의약품안전처, 한국영양학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