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세 아들을 둔 아빠 오복형(36·서울 성북구)씨는 “고기는 어쩔 수 없지만 햄·소시지 같은 가공육은 아예 끊을 생각이다. 아이에게 먹이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나 자신도 절대 먹지 않겠다”고 말했다. 최근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가 가공육과 소·돼지 등의 붉은 고기를 발암물질로 공표했기 때문이다.
IARC는 가공육을 암 발생 위험이 큰 1군 발암물질로, 붉은 고기는 암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는 2A군 발암물질로 각각 분류했다. 토대로 육가공품을 매일 50g 이상 먹으면 대장암 등에 걸릴 위험성이 18% 높아지고, 붉은 고기는 100g 이상 먹으면 대장암 등을 유발할 수 있다며 이렇게 결정했다.
이후 국민들의 불안이 심해지고 실제 관련 제품 매출 급감 현상까지 나타나자 지난 3일 식품의약품안전처가 “한국인의 육류 섭취량이 많지 않기 때문에 우려할 필요가 없다”며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얼마나 먹으면 안전하다는 것인지 불안은 여전하다.
국내 6대 암병원(서울아산병원·삼성서울병원·서울대병원·신촌세브란스병원·서울성모병원·국립암센터)의 대장암센터장에게 WHO발 가공육·붉은 고기 파동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6인의 대장암 명의는 “햄·소시지 섭취, 붉은 살코기 과다 섭취가 대장암 발병의 한 요인” 이라는 데는 모두 동의했다. 하지만 “그 유해성을 술·담배 등과 비교하면 조족지혈(鳥足之血)”이라는 공통된 의견을 내놓았다.
2012년 국립암센터 국가암등록 통계에 따르면 대장암은 한국인이 둘째로 많이 앓는 암이다. 가장 빠르게 늘고 있는 암이기도 하다. 1999년 인구 10만 명당 21.2명이었던 대장암 발생률은 2012년 38.6명으로 13년 만에 82% 증가했다. 한국 남성의 경우 10만 명당 대장암 발생률이 50명으로 미국(28.5명), 영국(36.8)보다 높다. 이를 두고 서구화된 식단으로 육류 섭취가 늘어난 때문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하지만 대장암 명의들은 “그것만으로 설명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고 입을 모았다.
정승용(51) 서울대병원 대장암센터장은 “대장암 환자가 많이 나오는 나라 순위를 꼽으면 우리나라와 헝가리·슬로바키아 등이 최상위권에 속하는데 알코올 섭취량이 많은 나라라는 공통점이 있다”며 “반면 육류 섭취량이 세계에서 가장 많은 편인 미국·영국은 대장암 발생률 상위 10개국 안에도 들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정 센터장은 “한국인의 식습관과 생활 패턴을 봤을 때 육류보다는 알코올 섭취를 줄이는 게 급선무”라고 덧붙였다.
손대경(44) 국립암센터 대장암센터장도 같은 의견이다. “환자들이 간혹 ‘저는 평생 고기를 거의 안 먹다시피 했는데 왜 대장암에 걸렸을까요’ 묻는다”며 “흡연·음주가 햄·소시지 등 육류 섭취보다 백배, 천배는 위험한데 이를 간과하는 이가 많다”고 말했다.
WHO도 이러한 점을 인정하고 있다. 전 세계 연간 가공육으로 인해 사망하는 사람 수를 3만4000명으로 추산했다. 그러면서 담배로 인한 사망자는 연간 100만 명이며 술은 연간 60만 명, 사망에 기여한다고 봤다. WHO는 “가공육을 술·담배와 같은 1군 발암물질로 분류한 건 가공육이 암을 일으킨다는 근거가 있다는 것”이라며 “술·담배만큼 위험하다는 의미는 아니다”고 밝혔다.
장홍석(56) 서울성모병원 대장암센터장은 “대장에 생긴 용종을 암 전 단계로 보는데 나이가 들면 자연히 용종이 생긴다”며 “고령화로 장수하는 노인이 많아지면서 대장암 환자가 느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해석했다. 장 센터장은 “담배야말로 암 환자 증가를 부추기는 가장 강력한 발암물질”이라며 “전반적으로 많이 먹는 식습관과 이로 인한 비만이 문제지 가공육이나 붉은 고기 섭취가 결정적인 원인은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대장암에 걸리지 않으려면 당장 햄이나 고기 섭취를 끊어야 할까. 안중배(50) 신촌세브란스병원 대장암센터장은 “대장암 진단을 받은 환자들에게도 체력 유지나 회복을 위해 붉은 고기를 적절히 먹어야 한다고 권한다”며 “탄수화물 식품을 많이 먹는 한국인의 식단에선 육류보다는 오히려 탄수화물 섭취를 줄이는 게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유창식(54) 서울아산병원 암병원장(대장암센터장)은 “전통적으로 채식 위주의 식생활을 해오던 우리 민족이 갑자기 고기 소비량이 늘었다. 그러다 보니 우리가 유전적으로 고기를 소화하는 능력이 떨어지거나 고기를 소화하면서 나오는 소화효소나 유해물질에 서양인보다 취약한 게 아니냐는 추론도 있다”며 “한국인에게 초점을 맞춘 연구가 선행돼야 얼마나 먹으면 안전한지 정확한 가이드라인을 내놓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 원장은 “만약에 술·담배를 많이 하면서, 운동도 잘 안 하고 비만인 사람이 일주일에 3~4번씩 부대찌개까지 먹는다면 위험요소들이 가중되면서 문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보통 사람이 한 달에 1~2회 부대찌개를 먹는다거나 일주일에 1~2회 햄이 들어간 샌드위치나 소시지가 들어간 핫도그를 먹는 정도로 대장암이 생기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김희철(52) 삼성서울병원 대장암센터장은 “대장암은 조기 검진과 예방을 함께할 수 있는 유일한 암”이라며 “만 40세가 되면 대장내시경을 통해 한 번쯤 검진을 받아보고 용종이 발견되지 않았다면 5년 간격으로 검진을 계속 받는 게 가장 효과적인 대장암 예방법”이라고 조언했다.
이에스더 기자·이지현 인턴기자 etoil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