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혼 여교사인 최모(28·서울 강남구)씨는 3년 전 임신을 하지도 않았는데 유즙(젖)이 흘러나왔다. 이어 생리가 불규칙해지다가 없어졌다. 산부인과에서 호르몬 이상 여부를 검사했더니 젖 분비 호르몬인 프로락틴이 과다하게 나온다는 진단을 받았다. 회사원 박모(46·경기도 고양시)씨는 4년 전부터 거울을 볼 때마다 얼굴 모양이 조금씩 변한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보다’라고 여겼다. 지난해 겨울 동창회에서 “얼굴 모양이 이상해. 병원에 가봐”라는 말을 듣고 뇌 자기공명영상촬영(MRI)을 찍었다.
두 사람의 나이와 성, 증상은 다르지만 병의 원인은 같다. 뇌하수체 종양이다. 뇌하수체는 뇌 깊숙한 곳에 위치한 완두콩만 한 조직으로, 호르몬을 분비해 신체의 다른 내분비샘의 기능을 조절하는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한다. 여기에 종양이 발견되는 비율이 의외로 높다. 미국 내분비학회가 2011년 발간한 자료에 따르면 다른 질환으로 우연히 뇌 MRI를 찍은 환자의 10.1%에서 뇌하수체 종양이 나왔다. 부검을 통한 연구에서는 14.4%, 영상검사 연구에서는 22.5%로 나타났다. 미국 연구를 토대로 하면 평균적으로는 10명 중 1명이 뇌하수체 종양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그리 걱정할 필요는 없다. 대부분 악성이 아닌 양성이기 때문이다.
뇌하수체 종양은 건강검진을 하거나 산부인과 진료 같은 다른 질병을 검사하다가 우연히 발견되는 사례가 많아 우연종(偶然腫)이라 부른다. 대기업 임원 정모(58·서울 양천구)씨는 지난해 여름부터 만성피로, 성기능 저하에 두통이 겹쳤다. 올해 초 건강검진에서 뇌 MRI 검사를 받았다. 정씨는 젖 분비 호르몬(프로락틴)에 문제가 생긴 ‘프로락틴 선종(양성 종양)’ 진단을 받았다. 이런 우연종은 길이 1㎝ 이하 미세한 선종이고 특별한 증상이 없다. 대부분 종양으로서 기능(건강 악화)을 하지 못한다. 말썽을 일으키는 것은 1㎝ 이상의 선종이다. 두통을 유발하고 종양이 커져서 시신경을 눌러 시야 장애를 유발한다.
그렇다면 어떤 증상이 나타나면 뇌하수체 종양을 의심해 볼 수 있을까. 뇌하수체는 호르몬 분비 기관이어서 호르몬에 따라 그 증상이 다양하다. 생리 불순 및 성기능 장애가 나타난다면 프로락틴 선종일 수 있다. 손과 발이 커져 신발·장갑 등이 안 맞으면 말단비대증일 수 있다. 팔다리가 가늘어지고 얼굴·몸통에 급격히 살이 찌고 피부가 터지면 쿠싱병을 의심해야 한다. 검사를 해봐도 이렇다 할 원인이 밝혀지지 않으면 내분비 호르몬 전문가를 찾아가야 한다. MRI 검사는 해상도가 높은 기기(3.0 테슬라 이상)여야 종양을 놓치지 않는다.
치료법은 크게 약물과 수술이 있으며 성공률이 높다. 뇌하수체 종양 중 가장 많은 유형(25%)인 프로락틴 선종은 환자의 95%가량이 약물 치료로 좋아진다. 말단비대증은 수술 성공률이 60~80%다. 신경외과 의사의 숙련도에 좌우된다. 1993~2010년 세브란스병원 뇌하수체 종양 클리닉에서 282명이 말단비대증 수술을 받았는데, 이 중 종양이 뇌하수체 공간(터키안)을 벗어나지 않은 환자는 90%, 벗어난 환자는 75%가 완치됐다.
이은직 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