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중독사회다. 사람들을 쉽게 중독시키는 술, 게임, 사행산업만 38조원(2013년) 규모다. 알코올, 마약, 도박, 인터넷 등 4대 중독을 제외하고 스마트폰 중독, 쇼핑중독,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중독 등 시대와 생활환경이 변화하면서 중독의 종류도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2013년 기준 국민의 약 6.8%인 338만명이 중독 증상을 앓고 있는 것을 나타났다. 중독 증상은 개인의 문제를 넘어 범죄를 야기할 수 있고 근로자의 생산성 저하 및 아동·청소년 발달 저해 등을 초래하는 만큼 행동 중독에 대한 인식 개선과 예방·치료의 중요성도 높아지고 있다.
◆의지 문제 아닌 질환…뇌 건강 위협
약물에 의한 신체적 중독 외에 어떤 행위에 중독된 사람을 두고 우리는 흔히 ‘습관이 좋지 않다’, ‘의지가 약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같은 중독은 뇌에서 보상회로라고 부르는 쾌락중추 신경계가 특정 물질이나 행위에 지나치게 자극을 받으면서 기쁨추구와 조절이라는 기능의 균형을 상실하는 병이다.
물질이나 행위에 의해 쾌락중추가 활성화되면 도파민이 분비되고 그 결과로 내인성 진통제인 오피오이드가 분비되면서 행복감과 즐거움, 만족감을 느끼게 된다. 정상적인 보상회로는 칭찬을 받거나 목표를 이뤘을 때, 새로운 지식을 알게 됐을 때, 엄마와 아기 사이에 애착이 형성되었을 때와 같은 상황에서 작동해 스스로에게 쾌감 또는 만족감을 제공하고, 다음 목표를 이루기 위한 동기를 부여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술, 마약, 게임, 도박, 쇼핑, 인터넷 등으로 도파민이 과잉 분비되면 최고 의사 결정기구 역할을 하는 뇌의 전두엽이 보상회로를 조절하기 위해 평소보다 많은 활동을 하게 된다. 이러한 과활동이 지속되면 충동을 억제하고 조절하는 능력이 상실되면서 중독에 빠지게 된다. 또 점점 강도 높은 자극을 갈망해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중독이 특히 위험한 이유는 뇌 건강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중독이 심해질수록 뇌가 변하고 손상되면서 심각한 뇌 합병증을 유발한다. 실제로 알코올 중독자가 지속적인 음주를 하면 뇌 위축이 진행돼 치매가 발생하는데, 이는 알츠하이머 병에 의한 노인성 치매 환자의 뇌의 변화와 동일한 형태다. 또 정상인에 비해 뇌 세포가 현저히 작아지거나, 뇌 전두엽의 회백질의 부피가 줄어든다. 이 같은 뇌의 변화는 도박, 마약, 인터넷 등 다른 물질이나 행위에 의한 중독자에게도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사회·국가적 노력이 절실
중독에 따른 뇌 구조 이상은 판단력, 지각, 기억력과 같은 인지기능을 저하시키며 수면·섭식·배변 주기 및 성격 변화 등을 유발한다. 중독이 심할수록 여러가지 공존질환이 발생해 정신 건강에 더욱 나쁜 영향을 미친다. 인터넷 중독 청소년의 공존질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조사 대상의 약 85.8%에게서 정신과 공존질환이 나타났다. 이 중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31.3%)가 가장 많았고 이어 우울장애(28.7%), 기분장애(13.9%), 불안장애(5%), 정신장애(2.6%), 물질관련장애(2.6%), 충동조절장애(3.%)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특히 유·아동, 청소년 등 낮은 연령대의 중독자는 더욱 주의가 필요하다. 이 시기 뇌는 가변성이 높은 상태라 작은 자극에도 반응해 예측이 불가능하고, 반복적인 위험행동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성숙한 감정 뇌와 성인기가 돼서야 완전히 성장하는 조절 뇌의 기능 불균형으로 성인에 비해 중독에 더욱 쉽게 빠질 수 있다.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강도의 자극을 받는 것이 중요하며, 이와 함께 중독 예방과 치료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따라서 유·아동 청소년기에는 아이들과의 충분한 대화를 통해 중독을 매개하는 물질이나 콘텐츠에 대한 과도한 접촉을 제한할 수 있도록 부모와 학교, 지역사회, 나아가 국가까지 전방위적인 도움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
서정석 건국대 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중독은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 안전을 위협하는 존재가 된 만큼 중독에 대한 인식 개선과 적극적인 예방, 치료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며 “특히 계속해서 새로운 중독 대상이 생겨나고, 중독에 노출되는 연령대가 점차 낮아지고 있는 만큼 중독 폐해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예방·치료에 적극적인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희원 기자 azahoi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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