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 후 귀 후비면 외이염 위험… 휴지로 물 빼내자

60대 홍모씨는 잠자리에서 일어나다 빙빙 도는 듯한 심한 어지럼증을 느꼈다. 증상은 오래가지 않았지만 혹시 심각한 병에 걸린 것은 아닐까 두려움과 초조함이 컸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찾은 응급실에서 홍씨는 귀의 전정 기능 장애로 인한 어지럼증이라는 뜻밖의 진단을 받았다.

어지럼증을 유발하는 원인은 다양하지만 대개는 귀에 이상이 생겨 발생한다. 캐나다 토론토대 연구에 따르면 귀를 포함한 말초성 감각기관의 이상으로 발생하는 어지러움이 65% 이상이고 심인성 장애로 인한 어지러움이 13%, 뇌병변이 원인인 경우가 9%를 차지한다고 한다.

귀는 단순히 소리만 듣는 기관이 아니다. 고막 바깥쪽의 외이와 고막 안쪽의 중이가 소리를 전달하면 더 깊숙한 곳에 있는 달팽이관(와우)이 소리를 감지해 뇌로 전달한다. 달팽이관이 있는 내이에는 평형감각을 담당하는 전정기관이 있어 몸의 균형도 잡아 준다.

전정기관은 다시 세반고리관과 난형낭, 구형낭으로 나뉜다. 세반고리관은 세 개의 둥근 고리 모양을 한 뼈 구조물로 각각 90도 방향으로 놓여 있어 360도 회전 감각을 담당한다. 고리관 안에는 림프액이라는 액체 성분이 가득 차 있는데 몸이 회전하면 이 액체도 움직인다. 우리 몸은 이 액체의 흐름을 감지해 인체가 회전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한다. 난형낭과 구형낭은 세반고리관 옆에 있는 구조물로 상하, 전후 움직임을 감지한다. 이곳에는 이석(돌가루)이라는 석회 성분이 있다. 우리 몸이 직선 운동을 하거나 몸을 기울이면 이 돌가루가 중력의 영향을 받아 쏠리면서 상하, 전후 움직임을 감지하게 된다. 돌가루는 낭형낭과 구형낭 안에서만 움직이지만 귀에 이상이 생겨 세반고리관 안에 들어가면 머리가 회전할 때 세반고리관이 자극을 받아 어지럼증을 느끼게 된다. 홍씨의 어지럼증은 이 돌가루 때문에 발생하는 질환으로, 전정계 이상으로 나타나는 어지러움 중에서 가장 흔하다. 주로 잠자리에 눕거나 일어날 때, 몸을 돌려 누울 때, 머리를 감으려고 고개를 숙일 때나 들 때, 고개를 좌우로 돌릴 때 수초 내지 수분간 구토와 어지러움이 지속된다.

13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최근 5년간(2010~2014년) 귀 관련 질환으로 병원을 찾은 환자를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70세 이상 노인에게서 전정 기능 장애가 가장 많이 발생했다. 5년 전보다 진료 인원이 30%나 증가했다.

증상의 심각성에 비해 치료는 쉽다. 세반고리관에 들어간 이석을 밖으로 빼내면 되고 이석이 빠져나와 자연적으로 치유되는 경우도 많다. 치료 후 재발 우려가 있으나 재활 치료로 증상이 쉽게 호전돼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반면 평형 기능을 담당하는 신경에 염증이 생겨 전정 기능이 소실되는 ‘전정신경염’은 문제가 좀 심각하다. 천장이 빙빙 도는 어지러움과 구토가 며칠간 계속되고 때에 따라서는 귀에서 ‘삐’ 하는 소리가 나거나 청력이 손실되기도 한다. 어지러움 때문에 보행이 힘들고 물체가 흔들려 보인다. 가능한 한 빨리 재활 치료를 해야 완전히 회복될 수 있는데 이후에도 몸 상태가 좋지 않으면 어지러움이 다시 발생할 수 있다.

청력 손실과 귀 울림, 귀가 먹먹한 증상이 발생하면서 수십 분에서 수 시간 동안 돌발성 어지러움이 생기는 ‘메니에르’라는 질환도 있다. 어지러움과 구토가 반복해 나타나 일상생활에 많은 지장을 주고 청력이 떨어진다.

정원호 삼성서울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는 “귀를 포함한 말초성 감각기관 이상 외에도 뇌혈관 질환이나 뇌종양이 어지러움을 일으킬 수 있고, 만성 두통이나 편두통을 오래 앓는 사람도 어지러울 수 있다”며 “전문의와 상담해 어지러움의 원인을 정확하게 찾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귀는 눈이나 코 못지않게 예민한 기관이어서 세균 감염 등에 의해 쉽게 염증이 생긴다. 70세 이상의 대표적인 귀 질환이 전정 기능 장애라면 10세 미만은 중이염, 10~70세는 외이염에 잘 걸린다.

보통 유아의 30%가 세 살이 될 때까지 3회 이상 급성중이염에 걸린다고 한다. 급성중이염은 항생제만 써도 치료가 잘된다. 치료가 잘 안 되면 중이에 물이 고이는 삼출성 중이염으로 악화할 수 있는데 잘 관리하지 못하면 고막이 상하고 귀 주위 뼈에도 염증이 생기는 만성중이염이 생길 수 있다. 고막에 염증이 퍼져 구멍이 뚫리고 이 고막을 통해 고름이 나오는 ‘이루’가 가장 흔한 증상이다. 초기에는 고름이 약간 묻어 나오는 정도지만 악화되면 이루의 양이 많아지고 악취가 난다. 염증으로 소리를 전달하는 뼈가 녹아 청력이 떨어지기도 한다. 중이염 가운데 ‘진주종성 중이염’이라는 질환에 걸리면 안면 신경을 싼 뼈가 녹아 안면 마비가 발생할 수 있다. 뇌를 싼 뼈를 녹이면 뇌막염 등 심각한 합병증이 생긴다.

외이염은 귓바퀴에서 고막까지 가는 길인 외이도에 염증이 생기는 것으로 여름에 잘 생기며 목욕을 하고 귀를 후비는 습관을 가진 사람에게서 잘 발생한다. 주로 세균에 의해 발생하지만 곰팡이가 원인인 경우도 있고 처음에는 가렵다가 악화되면 잠을 못 이룰 정도의 극심한 통증이 생긴다. 중이염 환자는 2014년 기준으로 165만명, 외이염 환자는 158만명이다.

귀 관련 질환을 예방하려면 귀에 이물질이 들어가지 못하게 하고 이명, 난청 등의 증상에 신경 써야 한다. 물이 들어갔을 때는 귀를 기울여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도록 하거나 부드러운 휴지를 돌돌 말아 넣어 물을 흡수시킨다. 면봉을 잘못 사용하면 상처가 날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여승근 경희대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는 “고막에 천공이 있는 경우 샤워할 때나 머리를 감을 때 귀 안을 막아 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하고, 이루가 흘러나오는 귓구멍을 솜으로 막으면 염증이 악화할 수 있으니 깨끗한 솜으로 닦아 줘야 한다”고 말했다.

귀이개 등으로 습관적으로 귀지를 후비면 외이에 상처가 나 세균에 감염될 수 있다. 귀지는 파내지 말고 자연스럽게 배출되도록 한다.

세종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