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업에 치여 운동할 틈이 없고 칼슘·비타민D 섭취량이 부족한 어린이·청소년의 뼈가 부실해지고 있다. 저체중이 될 때까지 다이어트하거나 성호르몬 억제제를 맞아 사춘기를 지연시켜 키를 크게 하려는 잘못된 행동도 뼈 건강을 악화시킨다. [서보형 객원기자]
이정희(52·서울 마포구)씨는 2주 전 고등학교 2학년인 딸의 건강검진 결과를 보고 당황했다. 아이가 중학생 때부터 살이 찌면 안 된다며 다이어트를 했는데 생리가 불규칙해져 병원을 찾은 터였다. 그런데 뜻밖에 딸의 골밀도가 평균의 절반도 채 되지 않았다. 골밀도는 단위면적당 뼈의 양으로 뼈 강도를 나타내는 지표다. 인제대 상계백병원 소아청소년과 박미정 교수는 “엄마도 골다공증을 앓고 있어 가뜩이나 딸의 뼈가 약한데 극심한 다이어트 때문에 뼈가 더 부실해졌다”고 말했다. 이씨는 “아이가 갱년기도 아닌데 뼈가 약할 줄 생각도 못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청소년의 뼈 건강에 적신호가 켜졌다. 이대로 방치하면 이들이 중년에 접어들 때 골다공증 환자가 급증할 것이란 전망이다. 골다공증 검사는 대부분 노년이 돼서야 시작한다. 뼈가 약해지는 것이 나이 탓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인의 뼈 건강은 청소년 시기에 결정된다. 현재 골다공증 환자는 약 81만 명(건강보험심사평가원, 2013년). 해마다 5.6%씩 증가세다. 노인의 골다공증 골절로 인한 합병증·간병비의 사회적 비용은 5년간 1조원에 이른다(서울대 김진현 교수, 2013). 지금과 같은 사후약방문식 뼈 관리 체계를 빨리 바꾸지 않으면 골다공증 치료에 막대한 재정을 쏟아부어야 하는 것이다. 서울대병원 내분비내과 신찬수 교수는 “어릴 때 부실한 뼈가 골다공증의 주요 원인”이라며 “뼈의 크기뿐 아니라 품질이 결정되는 어린이·청소년 뼈 건강에 눈을 돌려야 할 때”라고 말했다.
저체중·성호르몬 억제제, 뼈 건강 위협
미국소아과학회는 이미 ‘노년기의 뼈 건강은 성장기에 뼈가 얼마나 밀도 있게 형성되는지에 달렸다’고 발표한 바 있다. 국제성모병원 내분비내과 원영준 교수는 “국내 청소년의 부족한 칼슘 섭취와 비타민D, 운동 실태를 봤을 때 뼈 건강이 심각한 위험에 노출된 상황”이라고 말했다.
뼈 건강을 위협하는 가장 큰 요인은 다이어트다. 교육부가 올 2월 발표한 ‘학교건강검사 표본조사’에 따르면 중·고등학교 여학생 100명 중 5명이 저체중이다. 저체중은 체질량 지수(BMI·체중을 신장의 제곱으로 나눈 것)가 18.5 이하인 사람을 말한다. 키가 1m60㎝일 때 47㎏ 이하면 저체중이다. 세계골다공증재단에 따르면 저체중은 골다공증의 주요 위험인자 중 하나다. 박미정 교수는 “뼈는 자극을 받아야 튼튼해진다”며 “체중 부하가 뼈에 잘 실리지 않는 저체중은 정상 체중보다 골다공증 발병 위험이 5~6배 높다”고 말했다. 질병관리본부가 지난달 발표한 ‘청소년 건강 행태 온라인 조사’를 보면 여학생 5명 중 1명은 단식을 했거나 의사 처방 없이 살 빼는 약을 복용하고, 식후 구토까지 하면서 체중을 감량하려 했다.
성호르몬 억제제를 사용해 사춘기를 늦추는 행태도 문제다. 박미정 교수는 “성조숙증이 아닌데도 키 성장을 위해 성호르몬 분비를 강제로 지연시키는 사례가 많다”며 “성호르몬은 청소년기 골밀도를 튼튼하게 유지시키는 주요 재료”라고 말했다. 성호르몬이 제때 충분히 분비되지 않으면 뼈를 만드는 조골(造骨)세포와 뼈를 파괴하는 파골(破骨)세포의 균형이 깨져 골밀도가 약해진다. 실제 사춘기가 늦은 아이는 뼈가 얇고 무르다는 연구(美 사반연구소 아동병원, 2011)도 있다. 원영준 교수는 “이런 아이는 키가 크더라도 뼈가 부실해 골다공증이 더 잘 발생한다”고 말했다.
부모 골다공증 있으면 자녀 뼈 건강 신경써야
뼈의 재료가 되는 칼슘 섭취도 태부족이다. 일반적으로 성인은 하루에 칼슘 700㎎, 청소년은 1300㎎이 필요하다. 하지만 국내 조사에 따르면 청소년의 칼슘 섭취는 일일권장량의 59% 수준이다. 특히 청소년이 잠을 깨기 위해 마시는 커피와 에너지 드링크에는 카페인이 다량 들어 있다. 카페인은 칼슘이 체내에 섭취되는 것을 막는 훼방꾼이다.
뼈 건강이 약할 것이라고 예상되는 청소년 고위험군도 있다. 이들은 뼈 건강에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유전적 요인이 대표적이다. 신찬수 교수는 “특히 엄마의 뼈 건강이 딸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가 많다”며 “뼈 건강을 보강해 주는 노력이 각별히 필요하다”고 말했다. 어머니의 골밀도가 낮은 자녀는 평균 이하의 골밀도를 갖게 될 가능성이 2.1~3.4배, 아버지의 골밀도가 낮은 경우엔 1.7~3.2배 높다는 조사가 있다(호서대 식품영양학과, 2013). 국민건강영양조사를 분석한 결과다. 부모 모두 골밀도가 낮은 경우는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최대 골밀도가 약할 확률이 10배까지 높아졌다. 원영준 교수는 “유전적으로 뼈가 좋더라도 영양이 불량하면 뼈 건강이 약해진다”며 “생활습관을 교정해 골량을 늘리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청소년기에 형성한 골량 넘어설 수 없어
청소년기는 뼈가 약하더라도 나타나는 증상이 없다. 신찬수 교수는 “최대 골량(뼈의 양)을 100으로 봤을 때 청소년 시기에 50까지만 채워놓은 사람은 중년이 된 이후 노력을 해도 50을 넘지 못한다”고 말했다. 뼈는 50대부터 급격히 약해진다. 조골세포의 활동이 파골세포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탓이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서 뼈가 약해진다. 매년 1~2%가량 골밀도가 감소한다.
조골세포가 풍부하게 활동하는 청소년기 뼈 건강이 중요한 이유다. 청소년기에는 골밀도가 가파르게 채워진다. 남학생은 21세, 여학생은 19세 때 최대 골량의 85%까지 도달한다. 이때 필요한 연료가 비타민D와 칼슘, 성장호르몬, 뼈를 자극하는 운동이다. 박미정 교수는 “이때를 놓치면 40~50대에 뼈 건강을 관리하더라도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국제골다공증재단에 따르면 골밀도를 10% 높이면 골다공증 발병을 13년 늦출 수 있다. 신찬수 교수는 “비축해 둔 골량이 많으면 이용할 수 있는 골량도 많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민영 기자 lee.minyou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