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70주년을 맞아 지난 14일이 임시공휴일로 지정됐다. 갑자기 생긴 연휴에 많은 사람이 올여름 마지막 휴가를 즐겼다. 짧은 휴가로 몸과 마음의 피로를 풀고 온 사이 피부는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고 있다. 강한 자외선과 오염된 물, 각종 곤충과 곰팡이까지 휴가지 전체가 피부의 적으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피부에도 휴가가 필요하다. 여름 휴가철 손상된 피부를 치료하는 법을 살펴봤다.
자칭 ‘피부건강남’ 박모(28)씨, 구릿빛 탄력 있는 피부는 그의 자랑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해변을 찾아 태닝을 즐겼다. 휴가를 마치고 일주일쯤 되던 날, 샤워를 하던 박씨는 문득 눈 밑에 있던 점이 조금 커진 느낌을 받았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점이 커지는 걸 느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병원을 찾았다. 진단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피부암이었다. 그것도 예후가 가장 좋지 않은 ‘악성 흑색종’이었다.
흑색종, 초기에 자각 증상 없어 방치
벌겋게 익은 피부는 휴가의 자랑거리가 아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선정한 1급 발암물질인 자외선이 낸 상처다. 기후변화감시센터에 따르면 여름철 자외선 양은 겨울에 비해 두 배 이상 많다. 여름엔 야외활동이 많아 자외선에 노출되는 시간도 길다. 강한 자외선은 편평세포암·기저세포암·흑색종과 같은 피부암을 유발한다. 이 중에서도 악성 흑색종은 뇌와 척수로 전이되는 사례가 많아 위험하다. 지금까지 서구에서 주로 발생하는 암으로 알려졌지만 국내에서도 환자가 크게 늘고 있다. 대한피부과학회에 따르면 국내 피부암 환자는 2009년 1만980명에서 2013년 1만5826명으로 44.1%나 증가했다. 피부암 가운데 악성도가 가장 높은 악성 흑색종은 같은 기간 동안 2819명에서 3761명으로 33.4% 늘었다. 피부암은 초기에는 육안으로 구별하기 어렵다. 특히 흑색종은 초기에 자각증상이 없고 평범한 반점으로 보여 방치하기 쉽다. 검은 점이 새로 생겼다든지, 이미 있던 점의 모양이나 색이 변했다면 악성 흑색종을 의심해 봐야 한다.
피부암은 병변의 위치와 크기, 종양 특징에 따라 다양한 방법으로 치료할 수 있다. 암과 주변 조직을 포함해 종양을 제거하는 외과적 절제술이 가장 흔한 방법이다. 수술 후 피부 결손이 심하면 이식으로 피부를 채워준다. 피부암이 광범위하게 나타나거나 수술을 원치 않는다면 방사선 치료가 가능하다. ‘모즈수술’이라 불리는 모즈미세도식 수술은 피부 조직 보존이 가능하고 암을 완전히 제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만족도가 높다. 다만 수술이 복잡하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단점이 있다. 1㎝ 미만인 작은 암은 전기소작술이나 동결요법으로 치료한다.
감자·오이·알로에팩은 진정효과가 있다. 다만 화상이 심하거나 알레르기가 있다면 사용을 자제해야 한다.감자팩·오이팩·화이트태닝 ‘치료 효과’ 떨어져
자외선 양이 절정에 달하는 7~8월에는 ‘일광화상’ 환자가 몰린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일광화상으로 병원을 찾은 환자는 8720명. 이 가운데 절반이 넘는 4512명이 7~8월에 발생했다. 일광화상을 입었다면 우선 이를 진정시켜야 한다. 흔히 사용하는 감자팩이나 오이팩은 열기를 가라앉히는 데 도움이 되지만 치료 효과는 없다. 오히려 피부가 벗겨지거나 민감해졌다면 이물질로 인한 감염 위험을 높일 수 있다. 감자나 오이에 알레르기 반응이 있다면 사용을 피해야 한다. 따라서 보다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치료하기 위해선 화상 전용 치료 연고를 바르는 게 도움이 된다. 대한피부과의사회 임이석 회장은 “우선 물수건이나 얼음주머니로 피부를 진정시킨 후 증상에 따라 병원을 찾아야 한다. 껍질이 일어났다면 억지로 벗겨선 안 된다”고 조언했다.
최근 젊은 여성 사이에서 유행하는 ‘화이트 태닝’도 마찬가지다. 일반 태닝과 달리 적외선을 이용해 말 그대로 피부를 하얗게 하기 위해 시도된다. 자외선으로 피부가 그을렸다면 화이트 태닝으로 2~3일 안에 원래 피부색을 찾을 수 있는 것으로 세간에 알려져 있다. 임 회장은 “적외선은 콜라겐과 피부 재생을 돕는다. 그러나 새로 나온 치료법은 아니고, 단독으로 사용할 때보다 다른 치료와 병행했을 때 비로소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알레르기성 접촉 피부염·곰팡이균 휴가철 급증
알레르기성 접촉 피부염도 휴가 후유증으로 늘어나는 질환이다. 최근 5년간 이 질환으로 병원을 찾은 환자는 7~8월에 각각 68만4825명, 71만233명으로 가장 많다. 통계를 발표한 건보공단은 여름 휴가기간에 알레르기 자극 물질에 접촉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접촉 피부염은 가렵고 피부가 붉어지며 각질·물집이 잡히기도 한다. 흔히 ‘쇳독’이라 불리는 증상도 알레르기성 접촉 피부염 중 하나다. 니켈·크롬과 같은 금속 종류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증상이다. 화장품에 들어간 방부제나 향료, 염료도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원인 물질이다.
휴가기간에 장시간 야외활동으로 땀을 많이 흘렸다면 각종 곰팡이균에 감염될 수 있다. 여름이라고 곰팡이균의 감염력이 더 높은 건 아니다. 다만 평소보다 더 많이 흘리는 땀이 원인이다. 대표적인 균은 무좀이다. 수영장이나 공중목욕탕과 같이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을 맨발로 다니는 과정에서 감염된다.
또 다른 곰팡이균 감염 증상은 어루러기다. 말라세지아라는 곰팡이균에 의해 생긴다. 갈색과 흰색 반점이 생겨 얼룩덜룩해지는 증상이 나타난다. 무좀균과 마찬가지로 지방 성분을 좋아하기 때문에 여름에 주로 발생한다. 어루러기 환자는 2013년 기준 7만6115명으로, 이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47%가 여름철(6~8월)에 발생했다. 겉보기엔 건선과 비슷하지만 발생 원인과 치료법이 모두 다르다. 건선은 피부에 작은 좁쌀 크기로 발진이 생긴다.
염소 ‘범벅’ 수영장, 피부질환 악화시킬 수도
오랫동안 고여 있는 물은 오염되기 쉽다. 소독을 위해 사용하는 고농도 약품은 피부질환을 유발할 수 있다.
오염된 물로 인해 피부질환이 생기기도 한다. 지난해 부산의 유명 물놀이 시설 2곳은 수질검사에서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 한 곳에선 대장균이 검출됐다. 장시간 교체되지 않고 고여 있는 수영장 물은 그 자체로 세균과 미생물의 온상이다. 이런 물속에는 녹농균이나 꼬리유충과 같은 병원성 세균이 우글댄다. 여름철 수영장을 다녀온 사람을 중심으로 유행성 눈병 환자가 급증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그 때문에 대다수 수영장은 소독을 위해 과망산칼륨이나 염소와 같은 고농도 약품을 사용한다.
그러나 민감한 피부이거나 피부질환이 원래 있었다면 조심해야 한다. 염소는 피부의 보호장벽인 지질을 제거하기 때문이다. 지질이 없어지면 피부가 수분을 유실한다. 건조해진 피부는 가려움증이나 습진, 두드러기, 아토피와 같은 피부질환을 일으킬 우려가 있다. 원래 피부질환이 있었다면 이를 더 악화시킬 수 있다.
바닷물은 수영장 물에 비해 안전하지만 많은 사람이 함께 이용한다는 점에서 완전히 안심할 수 없다. 바닷물 자체가 일으키는 피부질환은 없다. 다만 아토피피부염이 있다면 이미 피부장벽이 손상돼 있는 상태이므로 염분이 많은 바닷물에 들어갔을 때 자극을 받을 수 있다. 수영장이든 바닷물이든 물에 들어갔다 온 후라면 깨끗이 씻는 게 유일한 방법이다. 물에 의한 피부질환이 의심된다면 가까운 병원을 찾아 정밀진단을 받아야 한다.
김진구 기자 kim.jingu@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