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바라기 생활’만 잘해도 웬만한 병 다 막는다

우리 몸의 ‘감초’ 비타민D 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 tkpark@joongang.co.kr
중앙포토
비타민D는 비타민인가? 아니면 호르몬인가? 여느 비타민과는 확실히 다른 점이 있다. 햇볕을 쬐면 몸 안에서 합성된다는 사실이다. 비타민D는 햇볕을 받으면 피부에서 생성돼 ‘선 샤인 비타민(sunshine vitamin)’으로도 불린다. 비타민D가 부족한 사람에게 이 성분이 많이 들어 있는 식품을 섭취하라고 권장하기보다 가끔 야외에서 자외선을 쬐라고 추천하는 것은 그래서다. ‘몸에 꼭 필요한 물질이지만 체내에서 만들어지지 않아 식품을 통해 섭취해야 하는 필수(vital) 물질’이란 비타민의 어원(정의)과도 비타민D는 일치하지 않는다.

단백질(호르몬의 주재료)과는 무관한 비타민D를 호르몬 대열에 포함시킨 이유는 이렇다. 피부·간을 거쳐 신장에서 ‘활성형 비타민D’가 만들어진 뒤 혈관을 통해 신체 각 조직으로 옮겨가 세포에 신호를 주는 등 그 역할이 호르몬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요즘 의학과 영양학계에서 비타민D는 ‘약방의 감초’ 같은 존재다. 용처(효능)가 이미 많이 밝혀진 다른 비타민과는 달리 쓰임새가 계속 추가되고 있다. 최근 5년간 펍메드(PubMed, 미국 국립의학도서관이 제공하는 검색 엔진)에서 검색되는 비타민D 관련 문헌이 10배 가량 늘어났다.

비타민D가 첫 선을 보인 것은 1920년이다. 당시 학자들은 아이들에게 비타민D가 부족하면 뼈가 충분히 굳어지지 않는 병, 즉 골연화증이 생긴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발견 초기엔 뼈를 튼튼하게 하는 영양소로 소개됐다. 요즘도 유제품에 비타민D를 추가해 뼈 건강을 돕고 있다.

비타민D가 뼈 건강에 이로운 것은 뼈의 주성분인 칼슘의 체내 흡수를 도와서다. ‘칼슘+비타민D’는 뼈 건강을 위한 최고의 레시피다. 한림대 성심병원 가정의학과 백유진 교수는 “칼슘은 한국인에게 가장 부족한 영양소인데 비타민D가 부족하면 섭취한 칼슘마저 거의 흡수되지 않는다”며 “결국 뼈에서 칼슘이 빠져 나가 골다공증을 유발하는 등 뼈가 부실해진다”고 설명했다. 국내 골다공증 여성 1285명을 대상으로 혈중 비타민D 농도를 측정한 결과 51%가 섭취 불충분, 9.8%가 결핍으로 나타났다.

비타민 D, 우울증·비만과도 연관
비타민D는 다양한 질병과의 연관성이 증명되거나 거론되고 있다. 암·대사증후군·당뇨병·심혈관 질환 등 만성질환의 발병에 영향을 미치고, 우울증을 부른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유럽 노인 954명을 대상으로 6년간 혈중 비타민D 농도를 추적 조사한 결과, 혈중 비타민D 농도가 높을수록 우울증 척도 점수가 낮았다. 비타민D 결핍 아동의 아토피 발생률이 일반 아동의 5배나 된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원광대 의대 산본병원 소아청소년과 박양 교수는 “지난 30년간 비타민D 결핍 인구가 늘어나면서 아토피 피부염과 천식 등 알레르기 질환의 유병률이 높아졌다는 ‘비타민D 가설’이 제기됐다”고 소개했다. 서구화한 생활방식 탓에 햇볕 쬐는 시간이 줄어들어 비타민D가 부족해지고 이로 인해 면역조절 기능이 고장 나 알레르기 질환 발생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비타민D는 ‘만병의 근원’이란 비만과도 연루돼 있다. 노르웨이에서 1만8000명을 추적 조사한 결과 비타민D 섭취가 많을수록 체지방이 적고 날씬한 것으로 분석됐다.

실제 우리 국민은 어떨까. 비타민D가 풍부한 식품을 잘 챙겨 먹지 않으면서도 체내 비타민D의 약 90%를 제공하는 햇볕 쬐기마저 기피하는 현상이 뚜렷했다. 한국건강관리협회 나은희 박사팀(진단검사의학과)은 2013년 1∼12월 전국 13개 도시 16개 검진센터를 찾은 남녀 1만7252명(남성 9180명, 여성 8072명)의 혈중 비타민D 검사 결과를 최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서울시민은 10.4%가 결핍 상태로 판정됐다. 혈중 비타민D 농도가 혈액 1㎖당 10ng(나노 그램=10억분의 1g) 미만이면 결핍, 10∼30 ng 미만이면 부족, 30 ng 이상이면 충분으로 판정된다.

직장인 많은 수도권에서 결핍률 높아
이 조사에서 비타민D 결핍률이 가장 높은 곳은 서울·인천 등 수도권이었다. 부산·창원·울산·제주 주민은 그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았다. 결핍률이 전국 최고인 서울과 최저인 부산(1.9%)은 그 격차가 5배 이상으로 벌어졌다. 나 박사는 “서울·경기 지역의 비타민D 결핍률이 높은 것은 20∼30대 젊은 층이 많고 실내 근무자가 상대적으로 많기 때문으로 분석됐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 3곳의 결핍률을 조사해보니 송파구가 11.9%로 동대문구(9.3%)와 강서구(9.7%)보다 상대적으로 더 높았다”며 “일반적으로는 저위도 지역 주민보다 고위도 지역 주민이, 남성보다는 여성이, 여름보다는 겨울철에 결핍률이 높다”고 설명했다.

비타민D 결핍을 막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인간 해바라기’가 되는 것이다. 어린이 골절이 흔한 것은 햇볕에서 뛰어 놀지 않는 탓이라고 진단하는 전문가도 있다. 햇볕을 충분히 쬐면 굳이 식품을 통해 비타민D를 섭취할 필요가 없다. 자외선 차단 크림을 바르지 않고 하루 20분 정도 햇빛에 노출시키는 것이 좋다. 외출이 드문 노인, 스모그가 심한 지역에 사는 도시민, 차단제를 바르는 여성, 야간·지하 근무자는 비타민D 함유 식품을 적절히 섭취하는 게 좋다. 권장 식품은 등 푸른 생선, 비타민 D 강화우유, 동물의 간, 표고버섯 등이다.

미국의 건강정보 사이트 마이헬스뉴스데일리닷컴은 대구 간유·연어·참치·비타민D 첨가 시리얼·달걀·버섯·새우 등을 권장했다. 비타민D는 모든 연령대에서 필수 영양소지만 노인과 임산부, 모유를 먹이는 여성은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 5세 이하 아동도 구루병(곱사병) 예방을 위해 충분히 섭취하는 것이 좋다.

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 tkpar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