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염 원인, 잘못 먹은 음식 없는데 장염? 항생제·스트레스 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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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한모(45)씨는 최근 3~4일 간 배가 아프고 설사를 심하게 해 화장실을 수시로 들락거렸다. 밥도 제대로 못먹어 몸무게가 4㎏이나 줄었다. 병원에 갔더니 의사는 ‘장염’이라고 진단을 내리고 진통제와 수액을 처방했다. 그러나 한 씨는 왜 장염이 걸렸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갔다. 상온에 오래 둔 음식을 먹은 기억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씨처럼 복통·설사 등 장염 증상이 나타나면 대부분 ‘음식을 잘못 먹어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장염의 원인이 음식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서울대병원 소화기내과 천재영 교수는 “병원을 찾는 장염 환자 10명 중 1~2명은 음식이 아닌 다른 원인 때문에 장염이 생긴다”고 말했다. 장염 증상을 유발하는 다른 원인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알아본다.

◇약물: 항생제 장염 해마다 늘어

대부분의 항생제는 장염을 유발할 수 있다. 특히 세팔로스포린 계열과 퀴놀론 계열의 항생제가 장염을 잘 유발한다. 항생제 복용으로 인한 장염은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서울백병원 소화기내과 김유선 교수가 2013년 영국 ‘역학과 감염’ 학회지에 보고한 결과에 따르면, 2004년 항생제 장염(클로스트리디움 디피실 장염)으로 입원한 환자는 1만 명당 17.2명이었지만 2008년에는 27.4명으로 4년 사이 1.6배로 증가했다. 김 교수는 “항생제 처방률이 증가하면서 이로 인한 장염도 늘어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항생제가 장염을 일으키는 이유는 항생제가 장(腸) 내의 유산균과 같은 좋은 세균까지 모두 죽이기 때문이다. 김유선 교수는 “클로스트리디움 디피실이란 유해균이 과도하게 번식해 독소를 뿜어내고, 장염을 일으킨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항생제 투여 뒤 발열·복통이 생기면서 하루 세 번 이상 설사가 나타나면 의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인은 장염으로 인한 탈수 증상 등이 치명적일 수 있어 조심해야 한다. 가벼운 항생제 장염이라면 항생제를 끊는 것만으로 저절로 낫는다. 항생제를 끊을 수 없는 상황이라면 ‘메트로니다졸’ ‘반코마이신’처럼 장염을 잘 유발하지 않는 다른 항생제를 사용해야 한다. 대부분 잘 치료되지만, 재발하는 경우 항상제에 내성이 생길 수 있어 항생제 장염을 경험한 적이 있다면 불필요한 사용은 줄여야 한다.

진통제에 흔히 쓰이는 비(非)스테로이드성 진통소염제(NSAID) 역시 장염을 유발한다. 비스테로이드성 진통소염제를 먹는 류마티스 관절염 환자는 장염 등의 위장관질환이 생길 확률이 6배 이상으로 높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스트레스: 장(腸) 긴장 해 복통·설사

스트레스도 복통·설사 등 장염 증상을 유발한다. 이유는 ‘사이토카인’ 등의 염증매개물질 때문이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사이토카인이 늘어나는데, 이 물질은 몸속에 염증을 유발하고, 장에도 영향을 미친다. 또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교감신경이 자극돼 몸이 긴장하는데, 이때 장도 긴장한다. 분당서울대병원 소화기내과 이동호 교수는 “장이 긴장하면 장이 지나치게 빨리 움직이거나 느리게 움직여 설사·변비·복통 등이 나타난다”고 말했다. 스트레스로 나타나는 장염 증상은 대부분 오랜 기간 지속된다. 이동호 교수는 “스트레스를 피하는 게 가장 좋지만, 현실적으로 힘들 경우 항우울제나 신경안정제를 복용하면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기생충: 애완동물 통해 감염

기생충에 감염돼도 장염이 생길 수 있다. 연세대 의대 의용절지동물은행장 용태순 교수는 “특히 ‘지아르디아’나 ‘크립토스포리디움’이란 기생충이 문제가 된다”고 말했다. 이들 기생충에 감염된 애완동물을 만지거나, 노후된 수도관을 거친 수돗물을 먹으면 사람도 기생충에 감염된다. 한양대병원 소화기내과 이항락 교수는 “노후된 수도관의 수돗물을 먹어 같은 아파트에 사는 주민 백여 명이 기생충 감염으로 장염 증상을 보인 적도 있었다”며 “3주 이상 지속적으로 설사가 나타나는 게 특징”이라고 말했다. 구충제로 기생충을 제거하면 간단히 치료된다.

☞장염(腸炎)

장에 염증이 생긴 상태. 식중독균이 많이 든 음식을 먹어서 생기는 경우가 가장 많다. 항생제·스트레스 등으로도 장염 증상이 생긴다.

[조선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