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근시 예방하려면 실외활동 시간 늘려야
어린이 시력검사(연합뉴스 자료사진)
아시아지역서 급증 이상현상…유전보다는 환경이 원인
(서울=연합뉴스) 정일용 기자 = 중국 남부의 한 소도시. 어린이들이 투명 천장과 벽으로 된 교실에 앉아 단어를 암송하고 있다. 이 교실은 모든 방향에서 빛이 들어오도록 설계됐다.
이 특수교실은 최근들어 아시아 지역에서 늘어나고 있는 어린이 근시 예방에 밝은 자연채광이 효과가 있는지를 실험해 보기 위한 것이다.
근시는 안구가 둥근 모양으로 커지는 게 아니라 옆으로 길어지면서 발생한다. 이렇게 되면 망막에 상(像)이 제대로 맺혀지지 않고 멀리 있는 물체는 흐릿하게 보인다.
다른 지역과 비교해 특히 아시아 지역에서 어린이 근시가 늘어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미국 국립 눈(眼)연구소가 12~54세 미국인을 대상으로 지난 30년동안 별개로 진행해 2004년에 완료한 연구 결과 41.6%가 근시인 것으로 나타났다.
아시아 여러 나라 청소년의 근시 비율은 이보다 훨씬 높다. 지난달 ‘플로스원'(PLOS ONE)지에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조사대상이었던 중국 베이징 10대 4천798명의 80%가 근시였다. 싱가포르, 대만에서도 비슷한 비율을 보였다.
서울에서 지난 2012년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조사대상인 10대 남자애 2만4천명 거의 전부가 근시였다.
호주 퍼스 인근의 에디스 코완대 왕웨이 교수는 평소 행태와 환경이 유전자와 결합해 근시를 유발하지만 지금과 같은 급속한 증가는 환경의 영향에서 비롯된 것이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최근의 베이징 조사 연구에 참여했던 왕 교수는 유전자가 빠른 시간에 변화하지는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올해 초 세계보건기구(WHO)는 고도 근시 예방·치료 자료를 전문가들로 하여금 검토해보도록 했다. 그 결과는 이르면 올 여름에 발표된다.
가장 크게 우려되는 점은 고도 근시의 증가라고 WSJ는 전했다.고도 근시의 증가는 망막박리, 녹내장, 시력감퇴 위험성을 증가시킨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근시 치료 또한 큰 문제이다. 대부분의 어린이 근시에는 안경이 효과적이지만 많은 어린이들이 착용하지 않고 있다. 종종 부모들이 안경 착용의 필요성이나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한 탓이다.
한편으로는 ‘문화적 신념’ 때문에 부모들이 안경 착용을 못하게 한다고 벨파스트의 퀸즈대 나단 콩돈 교수는 주장했다. 사실은 그렇지 않은데 안경이 눈을 약하게 만든다고 믿는 부모들이 많다는 것이다.
아시아 지역 의사, 부모, 보건 관계자 등은 근시 예방과 악화 방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어떤 방법은 널리 사용되기는 하지만 거의 효과가 없는데 중국의 지압방식이 그 중 하나이다. 상당수의 중국 학교에서는 전통 지압법에 따라 날마다 어린이들이 눈 주위를 마사지하도록 한다.
이보다는 더 낫게 보이는 다른 방법이 있다. 실외에서 시간을 더 많이 보내도록 하는 방법이 근시 예방의 ‘주요 전략’으로 시험 중이라고 WSJ는 전했다. 또 한 가지는 ‘아트로핀’ 약물을 사용하는 것이다.
아시아 지역에서 근시가 왜 갑자기 많아졌는지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실외활동에 보내는 시간이 한 가지 요인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WSJ는 여러 나라에서 실시한 10여 차례의 연구 결과를 인용, 실외활동 시간이 길어질수록 근시가 될 가능성이 작아진다고 말했다.
중국에서 어린이 2천명을 대상으로 예비조사를 실시한 이안 모건 전(前) 호주국립대 교수는 하루 실외활동 시간을 40분 더 늘렸더니 근시가 23% 줄어들었다고 밝혔다.
모건 박사의 논리는 동물 실험으로도 입증되고 있다. 눈에 비친 빛이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을 자극하고 이 도파민이 안구가 옆으로 커지는 것, 즉 근시 유발을 방지하는 화학물질을 배출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는 최근 ‘네이처’에 발표한 ‘밝은 자연채광 교실’이 어린이들의 집중력과 안정감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알아보고 있다. 지금까지 결과로는 긍정적이라고 모건 박사는 말했다.
학생 50명을 수용하는 이 교실에서 공부하는 한 어린이(12)는 기존 교실보다 약간 덥기는 하지만 더 밝아서 좋다고 말했고 이에 대해 다른 급우들도 공감을 표시했다.
아시아 지역 일부 안과 의사들은 이전부터 어린이들이 실외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도록 권유해 왔지만 가족들로부터 협조를 얻기가 무척 어려웠다고 말했다.
근시 자녀가 있는 부모들에게 실외활동 시간 연장을 권유하면 “‘알았다’면서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부모들에게는 ‘아트로핀’ 약물 사용을 권하지만 실외활동 시간을 늘리는 것이 위험성 낮은 해결책이라고 오하이오 주립대 시력검안학부 칼라 자드니크 교수는 강조했다.
25년간 근시 연구를 해 온 자드니크 교수는 “수돗물 속에 들어있는 불소가 충치를 예방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충분한 빛이 근시 예방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모든 어린이에게 그 방식이 적용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ci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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