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65·서울 마포구)씨는 해마다 대학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았다. 매번 이상이 없다고 했지만 두통이 사라지지 않았다. 다른 병원에서 검사를 받아도 정상으로 나왔다. 미심쩍게 생각한 그는 필자에게 진료를 받으러 왔다. 뇌 자기공명영상촬영(MRI)을 찍어본 결과 뇌수막종(뇌를 둘러싼 얇은 수막에 생기는 종양)으로 진단돼 지난해 1월 감마나이프 방사선 수술을 받고 완쾌됐다.
두통은 전체 인구의 90%가 평생 한 번 이상 겪을 정도로 흔한 질환이다. 두통으로 병원 진료까지 받는 사람도 많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 자료를 보면 2010년 66만여 명에서 2014년 78만여 명으로 약 17.3% 늘어났다. 2014년 총 진료비는 약 395억원으로 2010년 약 277억원에 비해 43%가량 증가했다. 지난해에 두통으로 병원 진료를 받은 사람은 임신 관련(77만 명), 골절이 없는 골다공증(76만 명), 녹내장(69만 명) 환자보다 많다.
실제로 두통 환자의 약 90%는 뇌에 특별한 문제가 없다. 이를 일차성 두통이라고 한다. 머리가 깨질 것 같이 아픈 편두통, 성격이 예민하거나 업무상 스트레스로 인해 생기는 긴장성 두통, 주로 새벽에 극심한 두통이 나타나는 군집성 두통이 여기에 속한다.
일차성 두통은 약물 치료로 대부분 해결된다. 안정을 취하거나 과도한 스트레스나 긴장감을 해소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문제는 나머지 10%인 이차성 두통이다. 뇌종양, 뇌혈관 출혈, 중추 신경계 감염 등인 경우 두통 증세가 나타난다. 위에서 언급한 이모씨도 이차성 두통이다. 그런데 일반인이 일차성 두통인지 이차성 두통인지 구별하기는 쉽지 않다. 이차성 두통이라면 원인을 빨리 발견해 치료를 받아야 한다. 때를 놓치면 장애 등의 심각한 후유증을 겪거나 생명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떤 두통이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는지 사전에 알 방법은 없을까. 뇌 전문의들은 아래와 같은 증상을 동반했을 때는 단순한 두통이 아니라 이차적 문제를 야기할 수 있어 병원을 찾아 검사를 해봐야 한다고 얘기한다.
먼저 갑작스레 나타나는 극심한 두통이다. 김모(60·경기도 성남시)씨는 올해 3월 골프장에서 티샷을 한 뒤 갑자기 머리가 터질 것 같은 두통을 느꼈다. 골프를 중단하고 병원 응급실에서 컴퓨터단층촬영(CT) 등의 검사를 해보니 뇌출혈이었다. 평소에 뇌동맥류가 있던 김씨가 긴장한 상태에서 힘을 주어 골프채를 휘두르는 순간 뇌동맥류가 파열되면서 출혈이 발생한 것이다.
둘째, 두통의 양상이 과거와 다르게 변했고 정도가 더 심해진 경우다. 셋째, 두통만 있는 것이 아니라 구토와 목 뒤가 뻣뻣해지는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다. 넷째, 하나의 물체가 두 개로 보이거나 팔과 다리의 감각이 저하되고 힘이 빠지는 경우다. 마지막으로 고열이 발생하는 등 평소와 다른 신체적 이상 증상을 동반한 경우다.
물론 이런 증상이 있다고 무조건 뇌종양이나 뇌혈관 질환 등이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심각한 증상이 나타나면 되도록 빨리 진료를 받아야 한다.
한 가지 주의해야 할 점은 뇌에 기질적 이상이 있어도 아무런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두통이 있든 없든 50대 이후에는 적어도 한 번쯤은 MRI 등의 뇌 정밀검사를 받아보길 권한다. 본인의 뇌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서다.
정밀검진 시스템은 매우 발달했다. 수술기법도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뇌 질환이 있는 줄 모르고 두통을 그냥 넘겼다가 심각한 상태에서 발견되는 사례들을 보면 매우 안타깝다.
장진우 세브란스병원 신경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