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영양학의 시대

모두에게 좋은 음식이란 없는 법. 개인 영양학의 시대가 왔다.

 

최근 내분비내과 의사들에게 큰 충격을 준 논문이 세포대사(Cell Metabolism)에 발표된 바 있었다. 2015년 이스라엘의 와이즈만 연구소의 과학자들이 음식물 섭취에 따른 혈당 반응을 연구해 본 결과 특정 음식에 대한 혈당 반응이 한 개인에서는 비교적 일관성 있게 나타나지만, 서로 다른 개인 간에는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밝혔다. 예를 들어 똑같이 20 그램의 탄수화물이 들어 있는 바나나와 쿠키가 있다고 하자. 김 군은 바나나를 먹으면 혈당이 올라가고 쿠키를 먹으면 혈당이 올라가지 않았다. 반대로 이 군은 바나나를 먹으면 혈당이 올라가지 않고 쿠키를 먹으면 혈당이 올라갔다. 그 이전까지 우리는 음식의 탄수화물 함량에 따라 혈당 올라가는게 결정되는 줄 알았다. 이렇게 사람마다 다를 줄이야.

이런 개인 차이는 대체 어디서 오는걸까? 와이즈만 연구소 과학자들은 각각 다른 체형, 혈액 검사 수치, 신체 활동, 장내 미생물 조성 차이에 따라서 음식 섭취 시 혈당 반응이 개인차를 보인다고 밝혔다. 특히 사람마다 다른 장내 미생물 조성이 혈당 반응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나아가 연구진은 알파고와 같은 기계학습을 통해서 개인별로 음식에 따른 혈당 반응을 정확히 예측해 냈다.

“혈당 조절을 위해 어떤 음식이 좋나요?” 매일 많은 당뇨병 환자들이 똑 같은 질문을 한다. 시중의 서점에 가보면 당뇨병 환자를 위한 레시피가 책으로 많이 나와 있다. 과연 당뇨병에 일률적으로 좋은 음식이 있을까? 어떤 음식이 혈당 조절에 좋다고 말하는 것은 와이즈만 연구소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본다면 일종의 전체주의 시각이다.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유전적 배경이 다르고 장내 미생물이 달라서 특정 음식에 대한 반응이 제각각 다를 수 밖에 없다. “혈당 조절을 위해 어떤 음식이 좋은가?”라는 일반적인 질문은 이제 잊어야 한다. “나의 혈당 조절위해 어떤 음식이 좋은가?”로 물어야 옳다.

 

술을 마시면 얼굴이 빨개지는 사람이 있고 전혀 색이 변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우유를 아무리 마셔도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이 있고 우유를 조금만 마셔도 배탈이 나는 사람이 있다. 커피를 아무리 마셔도 잠자는데 전혀 문제 없는 사람이 있고, 한 모금만 마셔도 가슴이 벌렁거리고 잠도 못 자는 사람이 있다. 이렇듯 같은 음식이라고 하더라도 사람마다 나타내는 반응은 제각각이다. 음식 섭취에 따른 혈당 반응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렇다면 당뇨병 환자의 식후 혈당을 조절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고도의 기술을 동원하지 않더라도 음식을 먹을 때마다 식후 혈당을 기록해 보고 이 자료를 바탕으로 나에게 어떤 음식이 식후 혈당 조절에 가장 좋은지 따져보면 윤곽을 잡을 수 있다. 예를 들면 당뇨병 환자 최 씨가 혈당 조절을 위해 쌀밥 대신 현미밥을 먹으면 좋을지, 홍시, 고구마, 감자는 먹어도 될지 궁금하다면 이런 음식을 섭취 후 2시간을 전후해서 혈당을 재 보면 된다. 어떤 음식은 혈당이 많이 오르고 어떤 음식은 혈당이 덜 오르는 것이 판명나면, 결과에 따라 음식 섭취를 조정해 볼 수 있다. 장차 당뇨병 발생 위험이 높은 당뇨병 전단계(내당능장애)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개인 맞춤식 식이요법을 하는데 도움이 되는 방법이다.

 

1960년대 식량이 부족하던 시절, 몸에 좋다는 이유로 분식장려운동이 있었다. 그러나 밀가루로 만들어진 음식은 일반적으로 혈당을 빨리 올리는 경향이 있어서 최근에는 분식을 애써 장려하는 사람은 없다. 책과 매스컴에 나오는 영양 정보가 나에게도 바로 통하리라는 생각은 접어라. 새롭게 열리는 영양학의 민주주의 즉 ‘개인 영양학’ 시대에는 과거의 유물이 될 것이다. 당신만의 음식을 찾아서 혈당도 관리하고, 음식도 즐기길 바란다.

 

 

서울의대 국민건강지식센터

내분비내과 교수 조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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