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영양 부족, 태아 유전자 변형 불러 성장 후 비만·당뇨 확률 높인다

ㆍ‘바커 이론’ DNA 단위서 입증… 사이언스지에 연구 결과 실려
ㆍ임신 중 흡연도 호르몬에 영향… 스트레스 대응 능력 떨어트려

임신을 하면 먹는 것 하나 하나가 고민이다. 음식이 혹여 아기에게 해를 끼치지는 않을까 걱정을 많이 한다. 최근 과학자들은 엄마의 영양 상태나 음주·흡연 여부가 아기의 건강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과학적 근거를 잇따라 제시하고 있다.

임산부 뱃속 태아 건강 상태는 자궁 내부 환경에 좌우된다. 태아가 임산부 자궁 내에서 뇌나 신경 등 핵심 기관을 만드는 시기에 임산부 영양 상태가 나쁘면 태아가 성인으로 자라 심장병이나 당뇨병, 비만을 겪을 확률이 높다. 이를 ‘바커 이론(Barker Theory)’이라고 부른다. 영국 의사인 데이비드 바커 박사가 1989년 이 현상을 처음 발견했다.

바커 박사는 1980년대 말 영국 빈곤 지역에서 태어난 사람들의 심장질환 발병률이 높다는 점에 궁금증을 가졌다. 기름진 음식을 자주 먹는 사람에게서 발견되는 심장병이 빈민가에서 생기는 현상에 의아해하던 그는 빈민지역 다락방, 창고, 차고 등을 뒤진 끝에 20세기 초 그 지역에서 일하던 간호사가 신생아 건강상태를 기록한 수첩을 찾아냈다. 수첩 내용을 분석해 태아가 태어날 당시 체중이 적을수록 성인병에 걸릴 확률이 높다는 연관 관계를 찾아냈다. 태아는 영양이 부족한 환경에서 몸을 만들었기 때문에 영양이 부족할 때도 살 수 있도록 적응하게 된다. 이 때문에 성인이 돼 식사의 질이 높아지면 ‘과식’으로 느껴 성인병에 걸리기 쉬워지는 것이다.

최근 생물학계는 분자생물학 기술 발전으로 바커 이론을 유전자(DNA) 단위에서 연구하고 있다. 8월15일 국제 과학 학술지 ‘사이언스’에는 부모 식습관이 태아 DNA에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가 실렸다.

엘리자베스 라르퍼드 영국 케임브리지대 신경학과 교수 연구팀은 필요한 영양의 절반만 섭취한 쥐에서 태어난 새끼 쥐 정자의 유전자 활성도를 검사했다. 그 결과 정자의 활성도가 줄어들었다.

특히 비만과 당뇨에 영향을 끼치는 부분의 유전자 활성도가 떨어졌다. 환경의 영향을 받은 정자와 난자가 자녀에게 전달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부모의 생활 습관이 자녀에게 유전될 수 있다는 말이다. 부모가 과도한 다이어트를 하거나 거식증이 있는 때 자식의 건강까지 변화시킬 수 있다.

부모의 흡연 여부가 태아의 유전자를 변형시킨다는 실증도 나왔다. 로라 스트라우드 미국 브라운대 정신의학행동과 교수 연구팀은 임신 중 흡연한 여성에게서 태어난 신생아는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졸 수치가 낮아 결과적으로 스트레스 대응 능력이 떨어진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연구결과는 17일 ‘호르몬 기능과 인간행동연구 학술지(Psychoneuroendocrinology)’에 게재됐다.

연구팀은 임신 중 흡연한 임산부 100명을 대상으로 출산 뒤 태반에서 DNA를 추출해 분석했다. 이후 신생아들에게 다양한 자극을 주며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졸 수치를 측정해 이 같은 결과를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