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마비 올 때… 고층 아파트일수록 고위험

김철중 의학전문기자 [응급대처에 취약… “심폐 소생후 생존자, 10층 이상은 거의 드물어”]

– 문제는 엘리베이터
구급대 현장 도착 시간 걸리고 승강기 작아 환자 업고 내려와
응급처치 중단할 수밖에 없어

– 응급상황 발생땐…
승강기 1층 대기시켜놓고 자동제세동기 비치 의무화
관리원에 심폐소생술 가르쳐야

지난달 20일 서울 동화동주민센터에서 대학생들이 심폐소생술을 배우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지난해 말 경기도 구리시 한 아파트의 15층에 사는 박모(39)씨가 집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가족의 말에 따르면 박씨는 아침에 일어나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앓는 소리를 지르며 쓰러졌다. 심장이 파르르 떠는 부정맥 발작으로 심장마비가 온 것으로 추정되는 상황이다. 가족은 급히 119에 신고했다. 6분 만에 아파트 입구에 도착한 구급대는 분초(分秒)를 다투는 긴박한 상황에서 엘리베이터가 1층으로 내려오길 기다리고 15층까지 올라가느라 시간을 지체했다. 다행히 구급대 심폐 소생술로 심장박동이 간신히 돌아왔다. 박씨를 병원으로 이송하기 위해 엘리베이터에 옮겼지만 카트(환자 이송용 간이침대)가 누운 채로 엘리베이터에 들어가지 않아 박씨는 바닥에 앉아서 내려와야 했다. 그 시간만큼 제대로 된 응급처치가 잠시 중단됐다. 이후 구급차 안에서 심장마비가 다시 발생했고, 결국 박씨는 중환자실에서 숨을 거뒀다.

이 사례는 우리의 아파트가 심장마비 환자 발생 시 응급 대처에 얼마나 취약한가를 그대로 보여준다. 순천향대 의대 응급의학과 문형준 교수 등이 지난해 8월부터 시행한 경기도 심장마비 응급 의료 시범 사업에 따르면 구급대가 현장에 도착해 심폐 소생술을 한 후 심장박동이 되살아난 비율은 30% 안팎으로 층수와 상관없이 비슷했다. 하지만 심장마비 재발과 그에 따른 사망률은 고층일수록 높았다. 6~9층 거주자의 사망률은 56%, 15층 이상은 82%로 나타났다.

아주대병원 응급의학과 김기운 교수는 “그만큼 심장마비 후 방치된 시간이 길었고, 심폐 소생술로 박동을 되살리는 시간도 길어져 회복력이 손상된 결과”라며 “같은 거리의 아파트라도 고층일수록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느라 대기해야 하는 등 구급대가 환자에게 접근하는 시간이 늦어진 탓”이라고 말했다.

이런 현상은 선진국에서도 문제가 되고 있다. 최근 캐나다의사협회지에 실린 논문을 보면 1~2층 거주자의 심장마비 생존율은 4.2%이지만, 3층 이상은 2.6%로 낮았다. 16층 이상은 0.9%였고, 25층 이상에서는 한 명도 살지 못했다. 서울대병원 응급의학과 신상도 교수는 “우리 병원에 실려온 심장마비 환자 중 10층 이상 아파트 거주자가 살아난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고 말했다.

최근 고층 아파트 선호 현상으로 해가 갈수록 아파트 층수는 높아지고 있다. 2005년 21~30층 건물은 8241개였으나 2014년에는 1만5127개로 늘었다. 10년 새 1.8배 증가했다. 병원 밖에서 일어나는 심장마비의 약 70%는 거주지인 집에서 일어났고, 한 해 평균 병원 밖 심장마비는 3만건이 넘는다.

이에 따라 고층 아파트 응급 의료 대책을 세우는 것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선 응급 상황 발생 시 엘리베이터를 1층에 대기시키고, 구급대가 단독으로 사용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춰야 한다. 아파트 단지 내에 심장마비 발생 시 전기 충격을 쏘는 자동제세동기를 비치하고, 관리원들에게 사용법 교육과 심폐 소생술 훈련을 시켜야 한다. 고층 사무실 건물 역시 이런 대비가 필요하다.

서울대 신상도 교수는 “엘리베이터가 작아서 구급대 카트가 들어가지 못해 이송 과정에서 심폐 소생술이 중단되는 것도 고층 심장마비 사망률이 높은 이유”라며 “대규모 가구가 거주하는 고층 아파트의 경우 구급용 엘리베이터를 지정하고 카트가 들어가는 크기로 설치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