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의 ‘냉장고를 부탁해’가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유명인의 냉장고를 그대로 옮겨와 자투리 식재료로 요리하는 프로그램이다. 놀라운 것은 냉장고 안에서 묵은 재료가 발견될 때다. 야구선수 박찬호씨 냉장고에서는 유통기한이 14년 지난 스파게티 소스가 발견됐고, 연기자 김영호씨는 12년이 지난 초장, 가수 강균성씨는 11년이 지난 녹차가 발견됐다. 하지만 남의 일이 아니다. 냉장고 정리를 한번 해 본 사람이라면 언제 샀는지 모를 식재료가 부지기수 나온다. 세일을 한다고 왕창 사뒀거나 식구가 적어 남는 재료를 쌓아두기도 한다.
문제는 안전이다. 냉장고 안에서도 박테리아가 서식한다. 전주대 한식조리학과 신정규 교수는 “실험실에서 박테리아를 보관하는 온도(생장 정지)가 영하 70~80도다. 일반 냉장고는 기껏해야 냉장실 0~5도, 냉동실은 영하 15~20도 정도인데 세균의 활동이 느려질 뿐 여전히 유해하다”고 말했다. 이런 균은 장에 들어가 식중독을 일으킬 수 있다. 복통·설사는 아니라도 장내 유익균보다 유해균을 늘려 각종 만성질환을 유발할 수 있다. 꼭 알고 있어야 할 냉장고 보관법과 관리법을 정리했다.
월 초에 장 보고, 마지막 주는 ‘자투리 요리’로
냉장고를 깨끗하게 관리하려면 우선 가득 채우지 않는 게 중요하다. 가정용 냉장고는 2~3도 전후로 맞춰져 있다. 냉장고 안을 가득 채우면 냉기가 나오는 곳(냉장고 안쪽 뒤판)이 막히고 냉기가 전체적으로 돌지 못해 온도가 2~3도가량 높아진다. 온도가 1~2도 올라가면 보관 기간이 약 1일 준다(냉장실 기준). 신 교수는 “냉장고의 약 70%만 채우고 냉기가 나오는 뒤판을 막지 않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채소는 씻어서 밀폐 용기에 보관하면 가장 신선하다. [사진 식약처]
식재료를 살 때도 주의가 필요하다. 세일을 많이 하거나 ‘1+1’ 등의 행사를 하면 당장 필요가 없는데도 많이 사놓는다. 라면·캔 등 유통기한이 긴 제품을 제외한 채소류나 냉동식품 등은 꼭 먹을 만큼만 산다. 결과적으로 필요한 만큼만 사는 게 경제적이다.
장을 보는 횟수와 조리도 전략적이어야 한다. 주 1회 장을 보되, 하루 정도만 냉장 보관할 수 있는 고기·생선은 메뉴가 정해진 당일 구입한다. 잎채소도 미리 구입하지 않는 게 더 낫다. 보통 채소는 1주일가량 냉장 보관할 수 있지만 양상추·부추·시금치·쑥갓 등 잎이 있는 채소는 조금 더 빨리 시든다.
또 냉장고에 A4용지를 코팅한 종이를 붙여놓고 구매 물품, 반찬, 남은 음식물을 적어 놓는다. 다시 지우고 쓸 수 있다. 조리할 때 잊지 않고 재료를 쓸 수 있고, 구입한 재료를 다시 사는 실수를 막는다. 가족 중 누구나 봐도 알 수 있고, 먹다 남은 음식 처리에도 편하다. 사 온 재료를 넣을 때는 유통기한을 크게 써넣는다. 불투명 스카치테이프를 덧붙이면 깔끔하다.
매달 마지막 주 일요일은 ‘자투리 요리’ 해먹는 날로 정한다. 재료마다 조금씩 다르 지만 냉장은 보통 1주일, 냉동은 한 달이 최대 보관기간이라고 보면 된다(장류, 조미료·소스는 제외). 단국대 식품영양학과 문현경 교수는 “6개월, 12개월씩 보관하는 것은 전문 냉동시설에서의 이야기다. 가정에서는 위험하다. 오래 보관할수록 영양소도 많이 파괴된다”고 강조했다. 매달 초에 큰 장을 보고, 마지막 주 토·일요일은 냉장고 속 안 쓴 재료를 모두 찾아내 퓨전요리를 시도한다. 각종 채소와 고기 등을 잘게 다지면 볶음밥·동그랑땡·부침개·주먹밥 등을 만들 수 있다. 남은 반찬들과 만두를 넣고 다진 마늘, 고추장 등을 풀어 전골 요리도 할 수 있다.
나물류, 데친 뒤 얼려놓고 먹기 좋아
먹고 남은 식재료를 보관하는 방법도 알고 있어야 한다. 잘못 보관하면 대장균이 번식해 식중독을 일으킬 수 있다. 우선 야채류를 냉동시킬 때는 잘게 썰어 보관하는 방법을 추천한다. 냉동시키면 식품 속의 물 분자가 커지면서 조직을 무너뜨리는데, 잘게 쪼개어져 있으면 조직이 무질서하게 망가지지 않고 손상 정도도 덜하다. 사각얼음 모양처럼 생긴 실리콘 틀에 야채를 다져 넣으면 편리하다. 요리할 때마다 하나씩 꺼내 쓰기 좋다. 고기도 그날 쓰고 남은 것은 다지거나 얇게 썰어 1회 분량씩 비닐랩에 싸서 냉동한다. 생선은 이물질이 많이 묻어 있어 한번 씻은 뒤 랩에 싸 보관한다. 특히 내장이 붙어 있으면 빨리 상하므로 손질한 후 보관한다.
단, 냉동하면 안 되는 채소도 있다. 배추·양상추·청경채 등이 대표적이다. 반면에 나물류(시금치·고사리·취나물 등)는 데친 후 얼려두고 먹어도 식감이 크게 변하지 않는다. 두부·달걀도 냉동할 수 있다. 냉동 두부는 식감이 탱탱해 조림·볶음요리 시 좋다. 유통기한이 다 돼가는 달걀도 풀어서 보관 용기에 담으면 3~4주 더 냉동보관할 수 있다.
상온 해동 시 3시간 뒤 부패 시작
식재료는 용기나 비닐팩에 담아 가능한한 세로로 보관하는 게 좋다. 비닐팩은 바로 서지 않아 눕혀 보관하게 되는데, 밑에 깔린 것은 잘 안 보여 썩힐 수 있다. 작은 금속 책받침대를 사서 활용한다. 비닐팩을 여러 개 배열해도 설 수 있도록 도와주고, 차가운 냉기도 전달시켜 전기를 절약한다.
해동할 때 기술도 중요하다. 급하지 않다면 ‘냉장 해동’하는 게 좋다. 요리하기 하루 전날 고기·생선 등을 냉장실로 옮겨놓으면 균 번식 우려 없이 안전하게 해동된다. 상온 해동은 가장 위험하다. 신 교수는 “냉동식품을 상온에서 2~3시간 방치하면 대장균 수가 확 늘어난다. 보통 부패가 시작되는 세균 수를 100만 개 정도로 보는데, 생선의 경우 2시간 뒤 32만 개, 3시간 뒤 100만 개로 는다”고 말했다. 고기의 경우 불포화지방산이 포화지방산으로 바뀌어 심혈관질환 위험도 높인다.
전자레인지 해동 기능을 써도 좋지만 수분이 증발해 질감 변화가 다소 있다. 수중 해동도 괜찮다. 비닐에 넣어 물이 들어가지 않게 밀봉한 뒤 20분 정도 담가두면 대부분 해동된다. 냉수나 미지근한 물을 쓰는 게 좋다. 뜨거운 물을 사용하면 비닐의 유해 성분이 녹아 나올 수 있다. 얼린 나물이나 파·고추, 다진 고기 등은 국물요리를 할 때 해동 없이 바로 조리에 사용해도 된다.
※참고서적=냉장고 정리술(중앙북스),
욕망하는 냉장고(애플북스)
※ 자료제공=식품의약품안전처, LG전자
배지영 기자 bae.jiyou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