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의학서 질병 아냐 … 빈혈·디스크·갱년기 등 다른 질환 의해 2차증상으로 나타나기도
직장인 한 모씨(24·여)의 겨울 필수 아이템은 다름 아닌 실내용 패딩부츠다. 날씨가 쌀쌀해지면서 손발이 꽁꽁 얼어붙어서다. 아무리 전기장판으로 최고치로 올리고 들어가 있어도 손발은 쉽게 녹질 않는다. 집에 오자마자 수면양말에 패딩부츠까지 신어야 그나마 온기가 돈다. 회사에서는 손이 시려워 쉬는 시간마다 화장실에서 따뜻한 물에 손을 녹여야 할 정도다.
수족냉증(手足冷症)은 말 그대로 손발이 비정상적으로 차게 느껴지는 흔한 현상이나 정작 현대의학에서 ‘수족냉증’이라는 병명은 없다. 특별히 주사나 약물요법 같은 치료를 요구하지도 않는다.
수족냉증은 자신이 느끼는 차가움의 정도가 제각각인 만큼 진단 기준을 명확히 제시하기 어렵다. 최근에는 체열진단기로 신체 각 부위의 온도를 비교·측정해 객관적인 수치로 알아보는 방식을 활용하기도 한다.
조수경 한양대병원 류마티스내과 교수는 “다른 부위는 괜찮은데 유난히 손발만 얼음장처럼 차갑거나 저린 사람이라면 더욱 주의할 필요가 있다”며 “수족냉증은 불안하거나 긴장될 때뿐만 아니라 다른 질병에 의해 2차적으로 발생하는 경우가 적잖다”고 설명했다.
빈혈 기가 느껴질 때, 뇌나 말초신경에 이상이 생겼을 때, 추간판탈출증이나 척수관협착증처럼 신경근이 압박받을 때 발생할 수 있어 단순히 참고 넘어가서는 안 된다. 간혹 갑상선 기능이 저하되거나 약물 부작용이 일어나도 유발될 수 있어서다. 이런 경우 원인이 되는 질병을 치료하면 증상이 호전된다. 이렇다 할 원인이 없다면 체질 경향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 여성은 갱년기에 안면홍조와 함께 수족냉증을 호소하는 경우가 적잖다. 실제로 수족냉증은 남성보다 여성에서 흔하다.
수족냉증을 유발하는 가장 흔한 원인은 레이노증후군(Raynaud’s phenomenon)이다. 레이노증후군은 손가락, 발가락, 코, 귀 등 혈관이 좁아져 혈액순환 장애를 일으키는 추위질환이다. 전체 인구의 5~10%에서 발생한다. 혈관의 수축·이완을 돕는 교감신경계가 추위나 스트레스에 과도하게 반응해 말초혈관을 비정상적으로 수축시키고 말초조직에 산소가 부족해져 유발된다.
조 교수는 “레이노증후군의 원인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며 “교감신경이 예민해져 신경 말단에서 혈관을 수축시키는 물질이 과하게 나오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자율신경계 이상으로 혈관 조절 기능에 문제가 생겨 유발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일반적인 수족냉증과 레이노병은 차가운 물에 손을 넣었다 빼는 것으로 짐작해볼 수 있다. 조수경 교수는 “물에 넣었다 뺀 하얗게 변한 손가락이 원래대로 돌아오는 데 5분을 넘으면 레이노증후군으로 볼 수 있다”며 “하지만 자가진단에 의존하기보다 증상이 의심되면 병원을 찾아 정확한 검사를 받고 원인을 찾아보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질병이 없는데도 수족냉증이 떨어질 생각을 않는다면 생활환경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운동부족, 영양불균형, 스트레스, 불규칙한 수면 등으로 신진대사가 떨어지고 이로 인해 혈액순환이 원활치 않아 증상이 악화될 수 있다. 활동량이 저하되면 혈액의 흐름도 느려져 근육이 소실되고 기초대사량이 저하되면서 손발이 차가워질 수 있다. 이런 경우 가장 좋은 도움이 되는 게 ‘운동’이다. 가벼운 운동과 함께 일상 활동량을 늘리면 차가운 손발을 녹이는 데 도움이 된다.
숙면을 취하는 것도 중요하다. 잠을 이루지 못하면 교감신경이 흥분하면서 신경이 예민해지고 순환이 더뎌지며 수족냉증이 심해질 수 있다. 이는 결국 말초로 가는 기혈순환의 장애로 볼 수 있어 평소 가벼운 마사지를 해주는 게 도움이 된다. 가슴 부위에서 양쪽 팔 방향으로 부드럽게 쓸어주듯 마사지하고, 양 손가락을 깍지끼운 뒤 반대쪽 손등 뼈의 사이사이를 지압하는 습관을 들이는 게 좋다. 추위에 오랫동안 노출된 경우 실내로 들어가 손가락을 흔들거나 팔을 돌려주는 등 간단한 스트레칭을 한다.
따뜻한 물로 설거지를 하고 실내에서도 가급적 양말과 장갑을 착용한다. 특히 냉동실에 있는 꽁꽁 언 음식물을 빼는 것처럼 차가운 것을 만질 때는 반드시 장갑을 낀다. 혈관을 수축시키는 피임약, 두통약, 심장약, 혈압약 등을 남용하는 것도 피해야 한다. 안타깝게도 레이노증후군을 개선하는 직접적인 약은 없다. 혈액순환개선제도 출혈성 경향이 있는 등 신체 상태에 맞지 않는 사람이 먹으면 역효과가 나므로 주의해야 한다.
‘단순한 수족냉증이겠지’ 하고 ‘무조건 참아보자’는 식으로 방치했다간 동창이나 동상 등의 질병에 노출될 수도 있다. 일단 수족냉증이 의심된다면 전문의의 진단을 받아볼 것을 권한다.
취재 = 정희원 엠디팩트 기자 md@mdfact.com
* 본 기사의 내용은 동아닷컴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