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선의 건강병법]
43세 회사원 A씨는 요즘 일에 대한 의욕이 떨어진 데다 화를 잘 참을 수가 없다고 했다. 팀장이니 늘 바쁘고 일이 많았다. 그래도 수영과 취미 생활로 건강을 유지하고 스트레스 관리를 그 나름대로 잘해왔다고 자부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사소한 일에도 괜히 짜증이 나고 화를 참을 수가 없었다. 이유 없이 불안해져 팀원들이 하던 일을 직접 챙기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주말이 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체력이 바닥나 잠만 잤다.
많은 사람이 비슷한 증상을 털어놓는다. 평상시 잘하던 일이 갑자기 부담스러워지고 이유 없이 짜증이 나고 집에 오면 아무 의욕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그건 그냥 피곤한 게 아니라 몸이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체력이 바닥나 방전됐다는 신호. 즉 성취 목표와 체력, 일과 건강 사이에 균형이 깨졌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우리 몸은 좋고 싫고만 표현할 줄 아는 신체와, 옳고 그름, 사람의 도리, 해야 할 일 등만을 계산하는 뇌로 구성돼 있다. 우리는 ‘아무리 힘들어도 정신력만 있으면 못 할 게 없다’고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은 몸은 너무 힘들어 더 이상 일하기 싫다는데도, 할 일은 끝까지 해야 한다는 뇌의 계산에 맞춰 사는 것이다. 이런 생활이 계속되면 주의 집중력과 일 수행 능력이 떨어진다. 그러다 보면 일을 욕심만큼 못 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결국 불안과 우울에 이르게 된다.
김성규
옛말에 ‘곳간에서 인심 난다’고 했다. 몸도 마찬가지다. 몸속 장기가 잘 기능할 수 있을 정도로 힘이 비축돼 있으면 마음도 너그러워진다. 하지만 몸이 힘들면 비슷한 일에 대해서도 부정적으로 반응하고 짜증을 내며 감정 조절이 어려워진다.
성취감을 주는 일은 행복의 원천이다. 체력이 뒷받침될 때는 일이 즐겁다. 하지만 스트레스가 가중돼 체력이 바닥나는 상황이 반복되면 결국 몸은 질병을 일으키게 된다. 최근 한 연구에 따르면 하루 13시간 이상 일하는 사람은 4시간 이하로 일하는 사람보다 뇌출혈 위험이 약 2배 높아지고, 9~12시간 근무하는 경우에도 뇌출혈 위험이 38%가량 증가했다. 그렇다고 하루 4시간만 일하고 살 수는 없다는 게 문제다.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체력을 소진해 바닥까지 가는 상황은 막아야 한다. 그러려면 자신의 체력 창고에 에너지가 얼마나 쌓여 있는지 늘 의식하고 살아야 한다. 고등학생처럼 사는 게 체력 소진을 막는 한 방법이다. 50분 일하고 10분 쉬는 것이다. 쉬는 시간에 잠깐 걷거나 바깥 공기를 쐬고 오면 집중력이 높아져 오히려 같은 시간에 더 많은 일을 할 수도 있다.
직업상 장시간 앉아서 일해야 한다면, 일과 후 매일 30분~1시간 정도 천천히 걷기를 권한다. 온종일 일한 후에 근력 운동이나 달리기와 같은 고강도 운동을 하는 건 부담스럽다. 하지만 천천히 걷기는 지나치게 머리를 써서 피곤하고 지친 상태에서도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다. 놀랍게도 하루 몇십분만 걸어도 다음 날 주의 집중력이 호전된다. 머리를 쓰는 직업을 가졌다면 일 때문에 피곤할수록 걸어야 한다. 걷기는 가장 쉽게 효과적으로 체력을 저축하는 방법이다.
누구나 지치고 짜증 날 때가 있다. 그 상태로 억지로 일해야 하는 날도 많다. 직장 다니다 보면 힘들어 죽을 지경인데도 일해야 하는 경우도 잦다. 그럴 땐 어쩔 수 없이 체력이 바닥나도록 일을 할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지친 몸과 마음에 반드시 휴식이란 보상을 주어야 한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내 체력 창고는 내가 알아서 지켜야 한다.
[박민선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