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견은 무섭다. 한번 머릿속에 각인되면 지워지지 않는다. 음식이 그렇다. 대표적인 것이 고기(육류)다. 한때 고기는 ‘보양(保養)’을 의미했다. 언제부턴가 의미가 바뀌기 시작했다. 건강에서 채식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부터다. ‘육류=해로운 것, 다이어트의 적’이라는 등식이 생겼다. 광우병·구제역·O-157균·조류독감 등 해마다 유행하는 축산 전염병도 부정적 인식에 한몫했다. 어느새 육류는 건강과 거리가 먼 식품이 됐다. 모두 편견이다. 육류는 가장 효과적인 필수영양소 공급원이자 강력한 면역력 증강제다. 오히려 다이어트에도 유용한 식재료다.
고기가 건강에 좋지 않다는 오해를 사는 키워드가 몇 가지 있다. ‘지방·콜레스테롤·비만·성인병’이다. 고기에 함유된 포화지방산을 많이 섭취하면 혈액 속 나쁜 콜레스테롤(LDL콜레스테롤)을 높이고 혈관에 지방이 쌓여 비만이나 심혈관질환, 각종 성인병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여기에는 약간의 함정이 있다. 우선 포화지방은 육류 중에서 갈비나 삼겹살 같은 특정 부위에 많다. 다른 부위는 일반식품에 비해 포화지방이 오히려 적다. 게다가 육류에 함유된 포화지방의 약 90%를 차지하는 스테아르산·팔미트산·라우르산은 실제 혈중 콜레스테롤과 무관한 것으로 보고됐다. 특히 라우르산은 모유에 함유돼 아기의 저항력을 키워주는 성분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국민의 육류 섭취량은 충분하지 않다. 농림축산식품부의 ‘2014년도 농림축산식품 주요 통계’에 따르면 현재 1인당 연평균 42.7㎏으로 30년 전보다 4배 가까이 늘었다. 일본(29.6㎏)·중국(23.3㎏)보다는 많지만 대만(77.2㎏)은 우리의 2배에 가깝고, 스위스(74.8㎏)·스웨덴(81.8㎏)·캐나다(92.3㎏)·미국(117.5㎏)·뉴질랜드(127㎏)에 현저히 떨어진다.
필수아미노산 들어 있는 단백질 공급원
육류 섭취가 중요한 이유는 단백질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단백질은 잘 알려진 것처럼 몸의 주된 구성 성분이다. 세포와 근육 하나하나에 수분 다음으로 많이 존재한다. 효소와 호르몬의 구성 성분이기도 하다. 원활한 성장 발육과 건강한 육체를 위해 반드시 갖춰야 할 요소다. 그런데 단백질의 기본 구성 단위인 필수아미노산은 체내에서 합성되지 않는다. 섭취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다. 그래서 건강한 몸을 유지하는 데 충분한 단백질 섭취가 필수로 꼽힌다.
단백질에도 종류가 있다. 육류·우유·달걀·생선 등 동물성 단백질은 인체에 필요한 단백질을 모두 갖춘 완전단백질로 불리는 반면, 곡류·채소 등 식물성 단백질은 필수아미노산이 한 가지 이상 결여돼 있거나 양이 불충분한 불완전단백질이다. 그래서 동물성 단백질을 질 좋은 단백질이라고 한다. 식물성 단백질이 동물성 단백질보다 몸에 좋은 것으로 인식되지만 사실과 다르다. 식물성 단백질은 필수아미노산이 부족하다. 반면에 동물성 단백질에는 아홉 가지의 필수아미노산이 고루 함유돼 있다. 이뿐 아니라 동물성 단백질은 식물성 단백질에 비해 조리 과정에서 잘 파괴되지 않는다. 그만큼 체내 흡수율이 높다. 육류를 통해 섭취하는 단백질은 질적으로 차이가 나는 셈이다.
몸짱이 되기 위해 보충제로 단백질을 섭취하는 경우가 있지만 주의가 필요하다. 일부 보충제에 들어 있는 스테로이드 성분으로 인한 각종 부작용 위험 때문이다. 무정자증·탈모·간손상·발기부전·전립선비대·배뇨장애 등 부작용도 상당하다. 결국 육류는 채소·과일·보충제로도 대신할 수 없는 고귀한 존재인 셈이다.
빈혈·갱년기우울증 개선에 효과
고기를 먹고 나면 대부분 ‘다이어트는 실패다’라고 생각한다. 고기를 먹으면 살이 찐다고 여겨서다. 사실은 탄수화물이 문제다. 쌀과 밀가루가 주식인 식습관에서 살을 찌우는 주범은 바로 탄수화물이다. 탄수화물은 뇌에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 분비를 촉진해 탄수화물 중독을 초래하기도 한다. 의외로 육류는 적절히 섭취하면 다이어트에 도움이 된다. 근육을 만들어 상대적으로 지방이 늘어나는 것을 막고 지방을 분해하는 효과가 있어서다. 또 충분한 포만감으로 식사량을 적당량 유지할 수 있도록 해준다.
특히 여성 건강에도 중요하다. 육류 섭취가 부족하면 빈혈을 초래할 수 있고, 생리불순·난임·불임으로 이어진다. 충분한 단백질 섭취는 양질의 난자를 생산할 수 있도록 돕는다. 육류는 갱년기 우울증을 극복하는 데도 효과적이다. 육류가 행복호르몬이라 불리는 세로토닌의 원료인 트립토판을 공급해 주기 때문이다. 실제 육류 섭취는 빈혈·갱년기우울증 처방으로 쓰이기도 한다.
육류 섭취가 면역력을 키우는 데도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단백질은 면역체계에서 중요한 요소다. 면역세포와 항체 역시 단백질이 주 구성 성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질 좋은 단백질 섭취는 면역력 증강으로 이어진다. 단백질이 부족하면 피부가 약해지고 위·폐의 점막에 면역세포가 제대로 공급되지 못한다. 세균·바이러스의 침입에 취약해진다.
육류에 들어 있는 아연도 면역을 담당한다. 백혈구 생성에 관여하면서 면역세포가 잘 만들어지는 것을 돕는다. 암환자에게 하루 혹은 이틀에 한 번은 육류·달걀 등 양질의 단백질 섭취를 권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오히려 ‘암환자는 고기를 먹으면 안 된다’는 인식은 좋지 않은 결과를 낳는다. 대만의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암환자 중 20%만이 암으로 사망하고, 나머지는 영양실조로 사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적당한 육류 섭취는 암환자에게도 면역력을 높여주는 약이다.
그렇다면 단백질은 하루에 얼마나 섭취해야 할까. 한국인의 하루 단백질 섭취 권장량은 남성 50~80g, 여성 45~70g 수준이다. 쇠고기 기준으로 남성은 성인 주먹 크기의 180~240g, 여성은 102~150g 정도다. 성장기 어린이나 임신·수유기 여성은 일반 성인보다 체중(kg)당 섭취량을 늘리는 것이 좋다.
류장훈 기자 jh@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