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 둔화돼 통증 늦게 알아채
당장 수술할 만큼 진행되기도
오진 쉬워… 초음파·CT 고려
배가 아프면 흔히 소화불량, 장염 같은 가벼운 질환을 떠올린다. 하지만 65세 이상 노인의 경우 대장암, 급성 심근경색 등 심각한 질환의 신호일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 대한노인병학회에서 발간한 교과서 ‘노인병학’에 의하면, 노인 급성 복통의 원인 중 4~13%가 암이다. 고대안산병원 소화기내과 김승영 교수 연구에 따르면 복통으로 응급실을 찾은 65세 이상 노인 환자의 절반 정도는 당장 입원이 필요하며 이 중 3분의 1 정도는 수술이 필요했다.
노인 복통은 암이나 급성 심근경색 등 심각한 질환의 신호일 수 있다. 노인에게서 급성 복통이 나타나면 내시경, 초음파 검사, CT(컴퓨터단층촬영), 혈관조영술 같은 정밀 검사를 적극 고려해야 한다. / 신지호 헬스조선 기자
◇암·장 폐색·담낭염 흔해
일반적으로 복통의 원인에는 위식도역류질환, 급성 충수염(맹장염), 과민성 대장증후군 등이 많다. 하지만 노인에게는 상대적으로 암·장폐색·혈관 질환 같은 심각한 질환이나, 담낭염·게실염처럼 합병증 위험이 높은 병이 흔하다. 혈관성 질환은 당뇨병·고혈압 같은 만성질환 탓에 혈관이 막히면서 잘 생긴다. 분당서울대병원 소화기내과 이동호 교수는 “노인은 급성 심근경색이나 뱃속 가장 큰 혈관인 대동맥이 늘어지다 파열되는 복부대동맥류, 대장에 혈액순환이 안 되는 허혈성 대장염이 있을 때도 복통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노인병학 교과서에 의하면, 일반적으로 게실 질환(게실염 등)과 혈관 질환은 복통 원인에서 0.1% 이하다. 하지만 노인의 경우 게실 질환이 3~7%, 혈관 질환이 2~3%를 차지하며 70세 이상에서는 혈관 질환이 10% 이상으로 높아진다.
급성 복통이 생긴 노인은 사망률도 높다. 영국 리즈대 연구에 따르면 급성 복통이 생긴 후 사망하는 환자의 비율은 50대까지 최대 0.9%인데, 60대는 2.2%, 70대는 4.9%, 80대는 7%로 증가했다.
◇복통 약해도 심각한 상태일 수 있어
노인이 복통을 느끼면 병이 이미 심각한 상태일 수 있다.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이은주 교수는 “노인은 병이 생겨도 통증을 잘 못 느낀다”며 “보통 병을 키우다 합병증이 나타나거나 병이 심해졌을 때 통증을 크게 느끼고 병원을 찾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김승영 교수는 “담낭 등에 염증이 생기면 복통·구토·발열이 생기는 게 일반적이지만, 노인 환자의 4분의 1은 통증이 거의 없고, 3분의 1은 발열 등 염증 반응도 없다”고 말했다. 노인이 통증을 잘 못 느끼는 이유는 노화로 인한 감각 둔화, 관절염처럼 평소 앓던 병으로 먹던 진통제의 영향 등 다양하다. 이은주 교수는 “노화·만성질환 탓에 유해균에 감염이 돼도 백혈구 등의 면역 반응이 늦게 나타나서, 염증이 한참 진행된 후에야 발열·부종·발진 등이 나타난다”고 말했다.
◇내시경·초음파, CT 등 적극 고려해야
노인 복통은 빠르고 정확한 치료가 필요하지만, 진단이 매우 어렵다. 통증도 희미한 데다 질병마다 나타날 수 있는 복통의 위치가 따로 있는데, 노인은 이와 상관없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은주 교수는 “응급실을 찾은 노인 급성 복통 환자의 오진율이 절반 이상이라는 노인병학회지의 보고가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노인에게서 급성 복통이 나타나면 내시경, 초음파 검사, CT(컴퓨터단층촬영), 혈관조영술 같은 정밀검사를 적극 고려해야 한다. 이동호 교수는 “복통 외에 체중 감소, 인지기능 저하, 출혈 같은 다른 증상이 있을 때는 정밀검사가 필수”라고 말했다.
[김하윤 헬스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