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노아·렌즈콩·아마란스·귀리·치아시드…. 이름도 생소한 세계 각국의 곡물들이 국내 식탁을 휩쓸고 있다.
식이섬유·단백질·필수아미노산·비타민 같은 각종 영양소가 풍부하다는 일명 ‘수퍼 곡물’이다. 건강식으로 알려지면서 올해 8월까지 퀴노아 수입량은 53t으로 지난해(12t)보다 4배 이상, 렌즈콩은 8배 이상(366t→2829t) 치솟았다(관세청 수출입 무역통계).
영양성분이 풍부한 만큼 제대로 먹으면 ‘보약’이지만 일각에서는 수퍼 곡물을 ‘맹신’하는 과열 움직임도 보인다. 수퍼 곡물의 허와 실을 짚고, 더 건강하게 먹는 법을 알아본다.
단백질·식이섬유 풍부한 알짜배기 곡물
마트나 백화점·홈쇼핑에서 불티나게 팔리는 퀴노아·아마란스·귀리·렌즈콩은 고단백 식품이면서 식이섬유가 풍부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부천대 식품영양학과 이소연 교수는 “패스트푸드 대신 양질의 영양소가 풍부하고 포만감을 주는 건강식을 찾는 이가 늘고 있다”며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은 영양가 높은 곡물이 주목받는 이유”라고 말했다.
수퍼 푸드의 대표격인 퀴노아는 곡물계의 월드스타다. 볼리비아·칠레·페루 등지에서 주로 먹던 것인데 이제는 미국·유럽·아시아로 뻗어나가며 완전식품으로 각광받는다. 유엔국제농업기구(FAO)는 지난해를 ‘세계 퀴노아의 해’로 정했고, 미 항공우주국(NASA)은 퀴노아를 우주인 식량으로 개발하는 것을 검토하겠다고 밝힐 정도다.
퀴노아의 매력은 첫째, 풍부한 단백질(100g당 14g)·칼슘(56㎎)이다. 각각 쌀의 2배, 7배에 달한다. 둘째, 밀가루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성분이 없는 ‘글루텐 프리’ 곡물이다. 이소연 교수는 “밀가루에 예민한 사람이 홈베이킹 원료로 많이 찾는다”며 “우유를 못 먹는 사람은 퀴노아로 주먹밥을 만들어 먹으면 훌륭한 단백질 공급원이 된다”고 말했다. 셋째로 미세영양소다. 비타민 B1은 0.44㎎으로 백미(0.08㎎)의 5배, 비타민E는 6.0㎎으로 백미(0.2㎎)보다 30배 많다. 남미 안데스 고산지대에서 5000년 전부터 재배돼 온 ‘아마란스’는 퀴노아의 사촌격이다. 글루텐 프리 곡물이면서 칼슘 함유량이 타 곡물의 3배다. 필수아미노산으로 칼슘의 흡수를 돕는 ‘라이신’이 풍부해 어린이 뼈 성장에 좋다.
렌즈콩은 미국의 건강 전문잡지인 『HEALTH(헬스)』가 세계 5대 건강식품 중 하나로 꼽을 만큼 영양을 인정받았다. 방송인 이효리의 건강밥상으로 블로그에 소개되면서 국내에서 ‘붐’을 일으킨 고단백 식품이다. 이소연 교수는 “단백질 함유량이 소고기와 비슷하다”며 “인도에서는 수프·카레로 먹고 갈아서 우유처럼 먹기도 한다”고 말했다. 바나나의 12배에 달하는 수용성 식이섬유도 강점이다. 수분을 흡수해 변을 부드럽게 한다.
어린이·중장년층 영양 공급에 딱
수퍼 곡물에 귀리가 빠질 수 없다. 유럽에서 아침식으로 즐기는 ‘오트밀’의 주원료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귀리 같은 음식의 식이섬유(베타글루칸)는 심장질환의 위험성을 감소시킬 수 있다”고 인증했다. 이소연 교수는 “체내에서 콜레스테롤 배출을 돕고 포만감을 줘 과식을 막는다”고 말했다. 귀리는 저혈당 식품(GI지수 55)이기도 하다. 영국에서는 귀리를 주원료로 해 콜레스테롤을 개선하는 빵으로, 스웨덴에서는 혈당 개선을 돕는 요구르트로, 이탈리아에서는 당뇨환자용 파스타와 비스킷으로 판매한다.
이외에도 씨앗 종류인 치아시드·아마씨는 오메가-3와 식이섬유, 아미노산·비타민·미네랄이 풍부한 항산화 식품이다. 치아시드는 무향·무취·무맛이어서 다양한 음식에 활용해 먹을 수 있다. 차움 이윤경(가정의학과) 교수는 “스트레스를 받을 때 만들어지는 체내 독소는 세포와 DNA를 공격해 노화를 촉진하고, 질병을 일으키는 주범”이라며 “필수아미노산·무기질·비타민 같은 항산화 성분이 풍부한 음식을 섭취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이어 “수퍼 곡물은 특히 성장기 어린이나 다이어트를 하는 여성처럼 영양이 많이 필요한 사람에게 좋다”며 “음주·흡연에 노출돼 스트레스가 많고 바쁜 중장년층 남성에게도 권한다”고 덧붙였다.
소화 기능 떨어지는 노인, 신장 질환자는 주의
수퍼 곡물도 제대로 알고 먹어야 더 건강하다. 우선 우리나라는 외국과 달리 쌀밥을 주식으로 한다. 여기에 고기·생선 같은 단백질 음식과 비타민·미네랄이 풍부한 채소를 반찬으로 곁들인다. 이윤경 교수는 “기본적으로 탄수화물이 과한 식습관”이라며 “쌀밥·국수·빵·떡을 덜 먹으면서 수퍼 곡물을 추가하는 건 괜찮지만 반찬을 덜 먹고, 수퍼 곡물로 조리한 음식을 더 먹는 것은 외려 영양 균형을 깨뜨린다”고 말했다.
수퍼 곡물이 모두에게 건강식은 아니라는 점도 기억한다. 이윤경 교수는 “단백질 함량이 높을수록 소화 기능이 떨어지는 노인이라든지 위산 분비 기능이 저하된 위축성 위염환자는 유의해야 한다”며 “과하게 먹으면 소화가 잘 되지 않고 가스가 많이 차거나 설사가 올 수 있다”고 말했다. 이소연 교수는 “장기간 섭취할 때는 여러 곡물을 섞어먹고, 소화기가 안 좋다면 생으로 먹기보다 익혀서 먹는 것이 위에 부담을 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퀴노아·렌즈콩·아마씨에는 나트륨을 배출하는 칼륨 성분이 많다. 이윤경 교수는 “김치·된장 같은 염장 식품을 많이 먹는 우리 식단에서는 나트륨을 배출해 부종을 막고 고혈압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며 “다만 신장 질환자는 지나치게 먹으면 칼륨을 제대로 내보내지 못해 고칼륨혈증으로 심장질환이 생길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말했다. 누구든지 많이 먹으면 무조건 건강이 좋아질 것이라고 맹신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이소연 교수는 “기능성 곡물을 찾는 사람 중에는 건강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 많다”며 “본인의 건강상태에 따라 식품 섭취 시 주의해야 할 점을 챙겨야 한다”고 말했다.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는 퀴노아·렌즈콩 등 작물뿐 아니라 국내에서 주로 생산되는 작물도 영양 면에서 부족하지 않은 ‘수퍼 곡물’이 많다. 이소연 교수는 “조·피·기장·수수 같은 잡곡도 단백질·식이섬유량·아미노산이 풍부해 영양소 면에서 결코 뒤처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쌀에는 인·라이신 같은 미세영양소가 풍부하고, 현미에도 발암물질이나 콜레스테롤 같은 독소를 배출시키는 섬유질·비타민 B1이 함유돼 있다. 이윤경 교수는 “곡류 저마다 다양한 영양소·항산화 성분이 있으므로 특정 식품만 편식하지 말고 골고루 먹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