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을 결심하고 유서를 작성하는 한 청년 모습./ⓒ News1 이은주 디자이너
사망자 93.4% 전조증상…유가족 81% 알아차리지 못해
(서울=뉴스1) 음상준 기자 = #사례 사람들과 어울리기 좋아하고 다정다감했던 40대 A모씨는 사망 6개월 전부터 빠짐없이 참석했던 동창회에 나가지 않았다. 사망 3개월 전부터는 식사량이 급격히 줄면서 이전에 입던 옷들이 헐렁해질 정도로 체중이 감소했다.
이를 걱정한 아내의 권유로 근처 내과에서 건강검진을 받았으나 신체적으로 특별한 이상이 없고 만성피로증후군이 의심된다는 의사 소견을 받았다. 이후 피로감과 무력감이 더 심해져 아이들이 말을 거는 것조차 귀찮아하며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숨지기 한 달 전부터는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밤늦게까지 TV(텔레비전) 앞에 멍하니 앉아 있다가 간혹 회사를 결근했다. A씨는 아내에게 “회사에 가기 싫다”, “죽고 싶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그 후 아내에게 “내가 없으면 당신은 뭐 먹고 살래”라고 뜬금없이 질문하거나 아이들을 앉혀 놓고 “힘든 세상에 형제들끼리 우애 있게 돕고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A씨는 사망 이틀 전 아내와 아이들 앞에서 갑자기 눈물을 보여 이를 의아하게 생각한 아내가 왜 우냐고 묻자 “고맙다”라고만 대답했다. A씨는 사망 당일 출근길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이는 보건복지부와 중앙심리부검센터가 자살 유가족을 상대로 진행한 심리부검을 재구성한 내용이다. 자살 사망자는 이 같은 자살 징후를 끊임없이 가족이나 친구, 직장 동료들에게 보낸다.
고인의 이 같은 행동은 평소보다 기운이 없거나 피곤해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치부되기 일쑤다.
복지부의 ‘2015년 심리부검 결과’를 보면 자살 사망자의 93.4%가 언어, 행동, 정서적 변화 등 다양한 방법으로 경고신호를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경고신호는 고인이 자살을 생각하거나 그럴 의도가 있음을 드러내는 징후를 의미하며 언어적, 행동적, 정서적 방식으로 표현될 수 있다.
그러나 유가족의 81%는 자살자의 사망 전 경고신호를 알아 차라지 못해 적절한 도움을 주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족 중 우울증을 앓고 있거나 평소 죽고 싶다고 말한 사례가 있다면 경고신호의 주된 증상을 숙지하고 전문기관에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자살 경고신호는 크게 언어와 행동, 정소 분야로 나뉜다.
언어는 “내가 먼저 갈 테니, 건강히 잘 지내고 있어”라며 죽음에 관해 직접적으로 언급하거나 “총이 있으면 편하게 주겠다”며 자살 방법을 언급하는 행위가 포함된다.
자살 징후들./ⓒ News1
주변에 숨진 사람을 언급하거나 그리워하고 편지나 노트에 죽음에 대한 내용을 적는 것도 눈여겨볼 신호다.
행동 분야는 증상이 다양하다. 식욕과 체중이 줄고 현금을 다량 인출해 남은 가족에게 전달하는 등 주변을 정리한다.
농약과 번개탄을 구입해 자실 계획을 세우거나 사망 전날 가족과 특별한 시간을 보내려는 행동, 외모 관리에도 무관심해진다.
죽음과 관련된 예술 작품이나 언론 보도에 과도하게 몰입하고, 가족과 지인에게 평소 하지 않던 고마움과 미안함을 표현한다.
정서 측면에서는 갑작스럽게 눈물을 흘리거나 웃지 않고 말이 없어진다. 무기력, 대인기피증, 흥미 상실도 대표적인 증상이다.
복지부는 가족이나 친구 등 주변 사람들 중 이 같은 정서·행동적 변화를 보인 사람을 발견하면 지역 정신건강증진센터(1577-0199)나 정신의료기관으로 도움을 요청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s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