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스더 기자적어도 선진국에선 완전히 사라진 것으로 여겨졌던 홍역이 최근 유럽을 포함해 세계 곳곳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백신 접종률이 떨어진 탓입니다. 과거엔 목숨을 위협하는 무시무시한 병이었지만 백신 덕분에 큰 걱정을 안 하게 된 질환이 27가지가 넘습니다. 하지만 최근엔 오히려 백신의 부작용을 우려해 접종을 거부하는 이들이 생겨났습니다. 백신을 둘러싼 오해와 진실을 살펴봤습니다.
영국 의사 주장, 10년 만에 엉터리로 판명
지난달 25일 독일 베를린에서 18개월 된 남자 아이가 홍역을 앓다 사망했다. 돌 무렵에 접종하게 돼 있는 MMR(홍역·유행성이하선염·풍진) 백신을 맞지 않은 상태였다. 독일에선 지난해 10월부터 이달까지 500명 이상이 홍역에 걸렸다. 예방접종 체계가 잘 갖춰지지 않은 저개발국에서 건너온 이들이 홍역을 옮기는 사례가 많았다. 독일 같은 의료 선진국에서 홍역이 빠르게 확산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원인은 MMR 백신을 믿을 수 없다며 접종을 거부한 이들이 늘어난 데 있었다. MMR 백신에 대한 불신은 1998년에 발간된 한 논문이 단초가 됐다.
영국의 대장외과 전문의인 앤드루 웨이크필드는 자폐증에 걸린 어린이 12명에 대한 연구를 통해 ‘MMR 백신 접종이 자폐증을 일으킨다’는 논문을 의학 저널 ‘랜싯(Lancet)’에 게재했다. 웨이크필드는 논문에서 ‘자폐증에 걸린 12명의 어린이는 백신 접종 이전에는 정상적으로 행동했고, 백신 접종 직후부터 자폐 증상을 보이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그 여파는 컸다. 아이 엄마들의 접종 거부가 잇따랐다. 영국에선 100%에 가깝던 MMR 백신 접종률이 80%대로 떨어졌다.
미국선‘백신 속 수은이 자폐증 유발’논란도
한 어린이가 얼굴을 찌푸리며 예방주사를 맞고 있다. 백신에 대한 불신 때문에 아이에 대한 예방주사를 꺼리는 부모들이 늘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백신에 부작용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백신 접종을 안 하는 것의 위험성이 훨씬 크다”고 경고한다. [사진 서울백병원]
이후 10여 년간의 논쟁 끝에 당시 연구 결과가 조작됐음이 밝혀졌고 2008년 영국 의학위원회(GMC)는 웨이크필드의 의사 면허를 박탈했다. 랜싯도 2010년 그 논문이 엉터리였음을 밝혔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은 “환자 12명의 발병 시기와 MMR 백신 접종 시기를 조작해 끼워맞춘 완전한 사기 행각”이라고 보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웨이크필드의 주장을 믿는 이들이 많다. 지지자들은 그를 정부와 다국적 제약업계의 탄압을 받는 양심적인 의사로 떠받들고 있다. 그 과정에서 MMR 백신뿐 아니라 백신 전반에 대한 불신이 번졌다. 아이에게 홍역에 대한 자연 면역을 만들어주겠다며 홍역에 걸린 아이와 자기 아이를 함께 놀게하는 ‘홍역 파티’도 생겨났다. 영국 의학학술지 ‘브리티시메디컬저널(BMJ)’은 ‘홍역은 백신이 나오기 전 영국에서만 한 해에 100명이 넘는 아이들을 숨지게 한 치명적인 병’이라며 ‘웨이크필드의 행각은 지난 100년 간 의학계에 가장 큰 해악을 끼친 사기’라고 규정했다.
비슷한 시기에 미국에서도 백신에 대한 논란이 제기됐다. 일부 학자들이 소아용 백신 안에 포함된 수은이 자폐증을 유발한다고 주장했다. 백신의 부패 방지를 위해 첨가된 보존제 티메로살(thimerosal) 안에 수은이 들어 있는데, 이것이 아이들 뇌에 쌓이면서 자폐증을 일으킨다는 주장이었다. 1999년 미국 소아과학회는 티메로살이 무해하고 자폐증을 유발하지 않는다고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백신에 대한 불신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이외에도 백신 반대 단체에선 알루미늄이나 젤라틴 등 백신 첨가물에 대한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
박옥 질병관리본부 예방접종관리과장은 “주사기가 귀하던 시절에는 주사제 한 병에 주사 바늘을 열 번 꽂아 약을 뽑아내 맞히는 식으로 접종하다보니 보존제가 꼭 필요했지만 요즘엔 주사제 한 병에 주사기 한 대 분량의 약만 담도록 돼 있어 티메로살이나 알루미늄 성분이 들어가지 않는 백신이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박 과장은 “필수 백신은 걸리면 죽거나 장애를 남기는 심각한 병을 막아주는 최소한의 방어막이다. 백신의 부작용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백신 접종을 안 하는 것의 위험성이 훨씬 크다”고 말했다.
지난해 국내 홍역 확진 환자 442명
백신 접종 거부는 결코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인터넷 육아카페에는 “백신 접종 뒤에 아이에게 아토피가 생긴 것 같아 그 뒤로는 백신을 안 맞히고 있다”는 경험담부터 “초등학교 입학할 때 예방접종 확인서 안 내고 넘어갈 수 있다”는 ‘비법’까지 공유되고 있다. 지난해 국내 홍역 확진 환자는 442명에 달했다.
강재헌 인제대 서울백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아이에게 필수 백신을 맞히지 않으면 내 아이뿐 아니라 다른 아이들의 건강도 해칠 수 있다. ‘집단 면역’ 체계 속에서 보호받아야 할 갓난아기나 암환자 등 면역이 떨어져 있는 이들의 건강을 위협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집단 면역은 구성원 대부분이 면역을 가지는 걸 말한다. 이런 상태에서는 병이 유입되더라도 좀처럼 유행으로까지 진행되지 않는다.
주요 백신의 접종 시기와 예방 가능한 질환
MMR 백신
● 1차 생후 12~15개월, 2차 만 4~6세
● 홍역·유행성이하선염·풍진을 예방한다. 홍역은 급성 발진성 질환으로 백신 개발 이전엔 어린이의 생명을 위협하는 주요 질병이었다. 유행성이하선염은 볼거리라고도 하며 귀 아래의 침샘이 부어오르고 열과 두통이 동반되는 전염성 바이러스 질환이다. 뇌수막염이나 고환염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풍진은 발진·림프절염을 동반하는 급성 바이러스성 질환으로 임신 초기의 임신부가 풍진에 감염됐을 경우 태아에게 선천성 기형을 유발한다.
폴리오 백신
● 생후 2·4·6개월에 3회 기초접종(3차 접종 가능시기 6~18개월), 만 4~6세 때 1회 추가접종, DTap-IPV 혼합백신으로도 접종 가능
● 폴리오(소아마비)를 예방한다. 폴리오는 어린이에게 하지마비를 일으키는 병이다. 백신 도입으로 국내에서는 1983년 후 환자가 발생하지 않고 있다. 사람간 직접 감염이 대부분인데 분변이 입으로 들어가는 경로로 감염된다. 감염자의 95%가 별다른 증상 없이 감염되었다가 회복되지만 1%는 후유증을 겪는다.
DTaP 백신
● 생후 2·4·6개월에 3회 기초접종, 생후 15~18개월과 만 4~6세 때 각각 1회 추가 접종
● 디프테리아·파상풍·백일해를 예방한다. 디프테리아는 디프테리아균에 의해서 발생하는 급성 호흡기 전염병으로 백신 도입 이후 국내에선 1987년 이후에 환자가 발생하지 않았다. 동유럽에선 계속 발병하고 있다. 초기에는 피로·인후통·식욕감퇴·미열의 증상을 보이다가 심근염과 신경염 등의 합병증으로 이어진다. 파상풍은 파상풍균이 상처를 통해 유입돼 전신의 근육이 경직되어 움직이지 못하고 심하면 사망에 이르는 병이다. 감염자 80%가 전신마비를 겪는다. 백일해는 백일해균에 의한 호흡기 감염 질환으로 전염성이 매우 높아 가족 내 2차 감염률이 80% 수준이다. 감기와 비슷한 증상으로 시작돼 심한 기침 증세를 보인다. 신생아의 경우 심한 발작적인 기침을 일으키며 사망률이 높다.
B형 간염 백신
● 생후 0·1·6개월에 3회 기초접종
● B형 간염을 예방한다. B형 간염은 바이러스 감염으로 간에 염증이 생기는 질환이다. B형 간염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만성 보유자가 되기 쉽고, 나중에 간경화·간암 같은 간질환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 백신 접종으로 국내의 B형 간염 보유자가 많이 감소했지만 선진국에 비해 자주 발생하는 편이다.
BCG 백신
● 생후 4주 이내 1회
● 결핵을 예방한다. 결핵은 결핵균에 의한 감염질환으로 폐에 침범하고 뼈·관절·뇌 등의 신체 다른 부위에도 영향을 준다. 주로 결핵 환자의 기침이나 재채기를 통해 호흡기 분비물에 있는 결핵균이 사람을 통해 전파된다. 제대로 치료받지 않으면 내성균이 생겨 치료가 어려워진다. 심하면 사망에 이른다.
일본뇌염 백신
● 사백신 : 생후 12~23개월에 7~30일 간격으로 2회 접종, 2차 접종 12개월 뒤 3차 접종. 만 6세·만12세에 각각 1회 추가 접종
● 생백신 : 생후 12~23개월에 1회 접종, 1차 접종 12개월 후 2차 접종
● 일본뇌염을 예방한다. 일본뇌염은 사람과 동물 공통 감염병으로 작은빨간집모기에 의해 감염되어 뇌염을 일으키는 질환이다. 일단 걸리면 특별한 치료방법이 없으므로 예방이 최선이다. 열을 동반하는 가벼운 증상이나 바이러스성 수막염이나 뇌염으로까지 진행될 수 있다. 뇌염으로 진행된 경우는 약 30%의 치사율을 보인다. 자료: 보건복지부·질병관리본부
이에스더 기자 etoil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