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 박모(15)군은 최근 찜질방에 다녀온 후 가벼운 열 기운과 근육통이 느껴져 동네병원을 찾았다. 감기라는 진단을 받았다.
하지만 밤에 온몸에 발진이 생겨 황급히 대학병원 응급실로 옮겨져 정밀검사를 받은 결과 ‘수막구균 뇌수막염’이었다. 안타깝게도 치료 시기를 놓치는 바람에 왼쪽 팔과 다리에 피부 괴사가 발생해 피부 이식을 위한 대수술을 받아야 했다. 생소한 수막구균 뇌수막염 횐자의 대표적 사례다.
이 질환은 겉으로 드러나는 초기 증상이 감기·식중독·장염 등과 비슷하다. 머리가 아프고 팔다리부터 발진이 돋는 정도다. 문제는 질병의 진행 속도다. 수막구균 뇌수막염은 첫 증상이 나타난 후 불과 하루나 이틀 만에 사망할 수 있는 무서운 질환이다. 학교나 군대 등에서 집단생활을 할 경우 집단감염 우려도 있는 만큼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
수막구균 뇌수막염을 예방하려면 일상생활에서 손 씻기, 마스크 쓰기 등 위생을 잘 챙겨야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예방백신 접종이다.
◆‘초응급질환’임에도 국내선 인식 낮아
수막구균 뇌수막염은 뇌와 척수를 둘러싼 막이 세균에 감염돼 발생하는 세균성 뇌수막염의 일종이다. 첫 증상이 발현된 후 24∼48시간 내에 사망할 수 있는 급성감염 질환이지만 고열과 두통 등 초기 증상이 감기와 유사해 조기 진단 및 치료가 어렵다. 수막구균 뇌수막염은 일단 걸리면 생존하더라도 5명 중 1명 꼴로 사지절단, 청각·뇌 손상 등의 중증 영구 장애를 입을 정도로 치명적이다.
미국에서는 매년 2400∼3000명이 수막구균 뇌수막염에 감염된다. 전 세계적으로는 해마다 50만명 이상이 수막구균에 감염되며 이 중 7만5000명 이상이 사망한다. 6개월 이하 영유아기에 가장 많이 발병하고 19세 전후 다시 한 번 발병률이 크게 오른다.
집단생활을 하는 학교에서 많이 발생해 ‘학교감염병’ 혹은 ‘캠퍼스 질환’으로 불리기도 한다. 미국 질병관리본부(CDC) 산하 예방접종위원회(ACIP)는 2007년부터 11세 이상 청소년에게 수막구균 백신 접종을 권고하고 있다.
미국 텍사스주에서는 2011년 수막구균으로 한 명이 숨지고 다른 한 명이 사지를 절단하는 후유증을 입은 이후 30세 이하의 대학 신입생, 편입생 그리고 한 학기 이상을 휴학한 대학생들에게 수막구균성 뇌수막염 예방접종을 의무화하고 있다.
텍사스주뿐만 아니라 미국 16개 주와 영국,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등도 학교의 규정에 따라 수막구균 백신 접종 권고지침을 마련하는 등 이 질환을 특별히 관리하고 있다.
◆철저한 위생관리와 백신접종으로 예방해야
미국 등 선진국의 경우 수막구균 뇌수막염을 심각한 질환으로 인식해 대책을 세우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발생 빈도가 낮다는 이유로 예방 가이드라인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실정이다.
현재 수막구균 뇌수막염은 3군 법정감염병으로 분류돼 있다. 이는 간헐적으로 유행할 가능성이 있어 계속 발생 여부를 감시하고 방역대책 수립이 필요한 감염병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많은 이들에게는 생소한 질환이다.
기숙사 생활을 많이 하는 대학가 역시 수막구균 뇌수막염의 고위험군이 될 수 있지만 아직까지 입소 전 백신접종을 의무화한 곳은 없다.
국내에서 수막구균 뇌수막염 예방 노력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11년 논산훈련소의 한 훈련병이 수막구균 뇌수막염으로 숨지면서 2012년부터 군인을 대상으로 이 질환 백신접종이 의무화됐다.
최근에는 대한감염학회에서 질환의 위험성을 인지하고 10∼16세 청소년에게 수막구균 백신접종이 필요하다는 내용을 발표하기도 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전체 인구 10명 중 1∼2명을 수막구균 보균자로 보고 있다. 수막구균은 주로 기침이나 재채기로 나오는 침을 통해 호흡기로 감염된다. 컵이나 식기를 나눠 쓰는 등의 일상적인 접촉을 통해서도 감염되므로 건강한 사람에게서 예고 없이 발병할 수 있어 예방접종을 통한 사전 예방이 중요하다.
특히 활동력이 왕성한 19세 전후 연령대의 보균율이 24%로 눈에 띄게 높아지는 만큼 이 연령대의 청소년, 대학 기숙사생, 군대 훈련병 등과 같이 단체생활을 하는 이들에게 수막구균 예방접종이 권고된다.
인하대병원 감염내과 이진수 교수는 “수막구균 뇌수막염은 보균자가 기침이나 재채기를 할 때 나온 침이나 콧물 같은 타액을 통해 전파되므로 개인 위생을 철저히 하는 한편 백신접종을 통해 사전예방하는 게 최상”이라고 말했다. 수막구균 뇌수막염 백신은 2012년 국내에 처음 도입됐고 생후 2개월부터 만 55세까지 접종할 수 있다.
박태해 선임기자 pth1228@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