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이 발병한 중국에서 쇠고기가 밀반입돼 한국에도 구제역 전염이 우려된다는 내용의 경향신문 1993년 1월27일자 22면 기사.
설 연휴, 귀성·귀경객들의 ‘민족 대이동’이 벌어지는 때다. 서로 떨어져 있던 가족들을 만나리란 기대를 갖게되는 때다. 하지만 설 연휴에 걱정이 쌓이는 사람들도 있다. 닭·오리·소·돼지 농가 주민들이다. 지난해 12월부터 조류인플루엔자(AI)와 구제역이 다시 전국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는데, AI·구제역 등 가축질병 바이러스가 사람과 차량을 통해 전파되기 때문이다. 가축질병 확산을 우려해 가족들의 설 귀향을 말리는 농민들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현재 나타나고 있는 AI·구제역 전파 양상이 심각한 것은 아니다. 두 질병이 처음 발견됐을 때에 비해 사람에게 전염될 수 있다는 우려도 줄었다. 그러나 두 질병에 대한 지식은 막연하고, 그만큼 막연한 공포와 염려를 느낄 때도 있다. AI와 구제역의 어원부터 감염경로, 현재 진행중인 예방·방역 대책 등을 알아본다.
■AI와 구제역은 어떤 질병인가.
AI는 ‘Avian Influenza’의 약자다. 한글로는 ‘조류인플루엔자’라고 표기한다. 2000년대 중·후반 중국, 홍콩 동남아시아 등지에서 인체 감염 사례가 보고된 이후 그 심각성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구제역은 영어로 ‘Foot-and-mouth Disease’라고 표현한다. 한자로는 ‘口蹄疫’이라고 쓰는데, ‘입 구’자에 ‘굽 제’, ‘역병 역’자를 쓴다. 발굽이 갈린 동물에게만 전염되는 병이라는 뜻이다. 발굽이 두개로 갈리지 않은 말은 걸리지 않지만, 발굽이 갈린 소와 돼지는 구제역에 걸린다. 한국에서는 1934년 처음 발병했고, 2000년에 다시 발병한 이후 이따금씩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구제역이 왜 발굽 갈린 동물에만 전염되는지는 밝혀진 바 없다. ‘발굽이 갈린 동물들에게서 같은 증상이 나타났고, 바이러스를 확인해보니 유사한 것이었다’는 점만 밝혀졌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구제역이 발굽 갈린 동물에만 걸리는 이유를 규명해 낸다면 노벨생리의학상을 탈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만큼 규명이 어렵다는 것이다.
판매중인 토종닭에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가 발견된 경기 성남시 모란시장에서 지난해 12월28일 성남 중원구보건소 직원들이 방역차량을 이용해 소독을 하고 있다. 성남 | 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얼마나, 왜 위험한 질병인가.
구제역은 국제수역사무국(OIE)과 세계동물보건기구가 ‘가축 전염병 가운데 가장 위험한 A급 바이러스’로 지정한 가축 질병이다. 특별한 치료법도 현재로선 없다. 구제역에 걸린 소나 돼지는 살처분해야 한다. 사전에 감염을 막기 위해 백신을 접종하는 수 밖에 없다. 그러나 항체가 형성된 소나 돼지 중에서 건강 상태가 좋지 않은 것들을 구제역에 감염되기도 한다.
AI 역시 특별한 치료법이 없으며, 구제역처럼 전염성도 높다. AI는 구제역과 달리 사람이 감염돼 숨진 사례가 있는 ‘인수공통질병’이다. 단, 현재 한국에서 유행중인 ‘H5N8’형 AI 바이러스는 아직 인체에 감염됐다는 보고가 없다. AI도 여러 종류로 나뉘는데, 중국이나 동남아에서 사람을 숨지게 한 AI 바이러스와 현재 국내에 유행중인 바이러스는 종류가 다르다.
감염된 동물들을 살처분해야 하기 때문에 가축 농가는 AI와 구제역으로 큰 피해를 입는다. 가축을 살처분한다는 곳은 곧 자산을 그대로 잃는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는 감염 동물만 골라 살처분을 하고 있다. 지난해 9월부터 지난 17일까지 AI 때문에 살처분한 닭·오리 등 가금류는 29만마리, 지난해 12월부터 지난 17일까지 구제역 때문에 살처분한 소·돼지는 총 9만4000마리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AI나 구제역이 발생한 농장과 인근 농장의 가축이 산 채로 매장당해야 했다. 이것이 동물복지 차원에서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있었고, 구제역 백신 접종도 전국적으로 시행됨에 따라 ‘구제역 발생 농가’가 아닌 ‘구제역 감염 동물’로 살처분 범위가 줄어들었다. 다만 구제역 전염을 더 빨리 억제하기 위해서는 농가 내 가축 전체를 살처분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백신을 접종해 항체가 형성된 가축들은 바이러스에 ‘감염’돼 이상 증상을 보이지는 않겠지만, 바이러스가 이 가축을 ‘숙주’삼아 주변 동물들로 옮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경로로 전염되나.
현재 우리나라에선 차량을 통한 전염이 제일 많다고 알려져 있다. 같은 도축장을 사용하는 다른 농가 간 전염 사례가 가장 많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AI·구제역에 걸린 동물이 도축장에 바이러스를 옮기면, 그 바이러스는 같은 도축장을 이용한 다른 농가 차량에 옮는 것이다. 차량이 해당 농가 동물들에 바이러스 옮기면서, 직접 접촉하지 않은 두 농가 사이에 바이러스 전염이 이뤄진다.
AI와 구제역이 수도권까지 확산되면서 방역당국에 비상이 걸린 가운데 지난달 22일 서울 중랑천 일대에서 보건환경연구원 직원들이 모니터링을 하기위해 철새 분변을 채취하고 있다. 김정근 기자 jeongk@kyunghyang.com
AI는 야생조류가 매개체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더 큰 문제다. 지난 6일 서울 중랑천 야생조류 배설물에서 AI 바이러스가 발견됐을 때 불안감은 더 커졌다. 검출된 H5N8형 바이러스에 인체가 감염된 사례가 아직은 없다지만, 서울시민들도 AI에 안전하지 않다는 것, 또 서울시민이 귀경길에 AI를 전파하는 매개체가 될 수 있다는 점은 큰 문제다.
설이 되면 귀성·귀경 행렬로 차량 이동이 잦아지게 된다. 이렇게 되면 AI·구제역이 더 넓은 지역에 전염될 가능성도 늘어난다. 현재 구제역은 경기도, 충청남·북도, 경상북도에 걸쳐 발생했다. 경기 이천 구제역 발생 인근 농가에 사는 사람이 설 연휴기간 경남으로 이동하게 된다면, 경상남도에서도 구제역 바이러스가 전염될 수 있다는 것이다. AI도 같은 이유로 전국적으로 전파될 수 있다.
■방역대책은 있나.
농식품부는 지난 16일과 오는 23일 양일간, 구제역·AI 확산방지를 위한 전국적 일제 방역을 실시하기로 했다. 기존 소독 시설 290개소에 차량이 자주 이동하는 거점 85개에 소독 시설을 추가 설치해 명절에 이동하는 차량을 통한 바이러스 전파를 막겠다는 것이다. 또 구제역 확산을 막기 위해 백신을 추가도입하기로 했다고 16일 밝혔다. 최대 소·돼지 160만마리에 접종할 수 있는 분량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AI·구제역 방역 대책의 실효성에 대한 의구심도 나오고 있다. 백신을 접종하고 항체 형성률이 90%가 넘는 가축이 구제역에 감염됐다는 사례도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백신을 접종하지 않았음에도 접종했다고 허위 보고했거나, 해당 동물의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답했다. 그러나 백신 실험 과정이 부실했다거나, 백신의 전염 차단 효과가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다는 보도가 연이어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