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가족] 다이어트·운동해도 살찐다…뇌하수체 종양 의심해 봐요

‘다이어트를 해도 왜 살이 안 빠질까?’ ‘많이 먹지 않는데 왜 계속 살이 찌지?’

누구나 한 번쯤 이런 고민을 한다. 체중 감량을 위해 좀 더 노력하지 않는 스스로를 탓한다. 그런데 ‘아무리 노력해도’ 체중이 줄지 않거나 ‘아무 이유 없이’ 살이 찐다면 다시 생각해 볼 문제다. 희귀질환인 ‘쿠싱병’이 보내는 신호일 수 있어서다. 이 병에 걸리면 뇌에서 호르몬 분비를 담당하는 뇌하수체에 생긴 종양으로 살이 찌고 혈관이 망가져 급기야 사망에까지 이른다. 쿠싱병의 날(4월 8일)을 맞아 경희대병원 내분비내과 김성운(사진) 교수에게 쿠싱병에 대해 들었다.

호르몬 코르티솔 과다 분비
얼굴 부풀고 뱃살 나와
단순 비만과 초기 증상 비슷

김선희(40·여·가명)씨는 올해 초부터 피로감에 시달렸다. 두 다리에 힘이 달려 계단을 오르는 것도 벅찼다. 일시적으로 몸을 무리하게 움직여 그러려니 생각했다. 그러다 양쪽 무릎이 쑤셔오기 시작했다. ‘벌써 이 나이에 관절염이 왔나’ 생각했지만 병원에서는 ‘별 이상이 없다’고 진단했다. 그런데 갈수록 배가 나오기 시작했다. 전에 없던 증상도 생겼다. 피부가 트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는 너무 둥그렇게 커진 김씨의 얼굴을 잘 알아보지 못했다. 몸의 변화가 심상치 않다고 느낀 김씨는 대학병원에서 정밀검사를 받고 난 다음에야 쿠싱병 진단을 받았다. 김씨는 “피곤함이 가시지 않고 살이 찌는 게 심각한 질병 때문일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며 “작고 갸름했던 얼굴이 나중에는 주변 사람들이 못 알아볼 정도로 부풀었다”고 말했다.
허벅지 근육 감소로 체력 허약

쿠싱병은 많은 이에게 생소한 질환이다. 호르몬체계에 이상이 생기는 병이다. 스트레스 호르몬으로 잘 알려진 ‘코르티솔’ 분비가 많아진 결과다.

코르티솔은 몸에서 다양하게 작용하는 호르몬이다. 우선 스트레스 호르몬답게 스트레스를 받으면 몸이 대응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만들고, 최대 에너지를 만들도록 몸 곳곳으로 혈액을 보낸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맥박과 호흡이 빨라지는 이유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코르티솔은 근육·피부·뼈에서 단백질을 분해하고 지방 조직을 이동하는 역할을 한다. 혈당을 상승시키고 인슐린 작용을 억제하거나 혈관을 수축시키기도 한다. 장에서는 칼슘이 흡수되는 것을 방해하고 뼈를 만드는 조골세포의 수명을 단축시킨다. 코르티솔 분비가 비정상적으로 늘어나면 어떻게 될까. 나타날 수 있는 증상은 다양하다.
먼저 복부를 중심으로 비만이 생기고 근육량, 특히 허벅지 근육이 줄어 몸에 힘이 없어진다. 얼굴이 달덩이처럼 부풀고, 쇄골 윤곽이 살로 덮이거나 뒷목에 살이 올라서 접히는 ‘버펄로 험프(Buffalo’s Hump)’가 생긴다. 팔다리는 가늘어지는 ‘중심성 비만’이 생기는 이유다. 당뇨병·고혈압·골다공증이 오기도 한다. 이런 증상을 통틀어 쿠싱증후군이라고 한다. 쿠싱병은 이 중 뇌하수체에 종양이 생겨 발생하는 것을 말한다. 김 교수는 “쿠싱병은 기본적으로 뇌하수체 종양이 원인”이라며 “증상이 생기면 그냥 넘기지 말고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쿠싱병이 심각한 질환인 이유는 또 있다. 크게 세 가지다.

첫째로 조기 발견이 어렵다. 증상이 나타나고 평균 4~5년이 지난 후에야 진단을 받는 게 대부분이다. 미국의 경우 6년이 걸린다는 보고도 있다. 대부분 악화될 대로 악화된 다음 발견된다는 얘기다. 그 이유는 다른 질환과 마찬가지로 쿠싱병을 선뜻 의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당뇨병·고혈압·골다공증 유발

더욱이 단순 비만과 초기 증상이 비슷해 환자는 초기 단계에 다이어트를 하기에 급급하다. 성인병과도 감별이 어렵다. 쿠싱병은 주로 40~60세에 발생하기 때문에 코르티솔 증가로 인한 당뇨병과 고혈압을 일반적인 성인병으로 오인하기 쉽다. 김 교수는 “쿠싱병 환자는 혈압이 높고 당뇨병도 있고 비만인데, 이는 성인병의 일반적인 증상”이라며 “실제로 쿠싱병 환자 중에는 고혈압·당뇨병 치료만 받고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둘째로 혈관을 망가뜨린다. 쿠싱병으로 인한 고혈압·당뇨병이 혈관 상태를 악화시킨다. 김 교수는 “쿠싱병이 생기면 혈관이 푸석해지고 혈관에 기름때가 잘 껴 동맥경화가 생긴다”며 “쿠싱병 사망률이 높은 이유”라고 말했다. 쿠싱병은 제대로 치료하지 않으면 5년 안에 절반 이상이 심혈관계 질환으로 사망한다.

특히 1~2년 안에 진단·치료를 받지 않으면 혈관 상태가 나빠져 수술로 종양을 완전히 제거한 뒤에도 회복되지 않는다. 그런 만큼 조기 진단·치료가 특히 중요한 질환이다.

셋째로 재발률이 높다. 종양을 완벽하게 떼내면 재발률이 10% 미만이지만 완전히 제거되지 않으면 5년 내 재발률이 65%에 달한다. 김 교수는 “발병 후 1~2년 안에 치료하는 것이 최대 관건”이라며 “조금이라도 쿠싱병 증상이 의심된다면 혈액·소변 검사나 뇌하수체 MRI(자기공명영상촬영) 등을 통해 쿠싱병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운동을 많이 하고 식단을 조절해도 살이 안 빠진다면 쿠싱병을 한번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글=류장훈 기자 jh@joongang.co.kr, 사진=프리랜서 조상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