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1~2년 새 체중 급격히 불어 얼굴 달덩이처럼 붓고 몸통 비만·팔다리 가늘어져
30대 직장여성 박은비씨(가명)는 1~2년 사이에 체중이 10㎏이나 늘었다. 갖은 방법을 동원해 다이어트를 했는데도 체중은 줄지 않았고 당뇨병·고혈압·고지혈증 등과 같은 합병증까지 생겼다. 박씨를 비만에서 구해낸 것은 다이어트가 아니라 교통사고였다. 병원에 실려가 정밀 검진을 받다 뇌하수체종양이 발견됐고, 그로 인해 ‘쿠싱병’이라는 희귀질환에 걸려 있었던 것을 알게 됐다. 박씨의 비만과 각종 합병증의 원인은 바로 쿠싱병이었던 것이다.
쿠싱병은 뇌하수체종양으로 인해 발생한다. 팔다리는 가늘어지고, 얼굴이나 몸통은 살이 찌는 중심성 비만이 주요 증상이다. 스테로이드 과다복용 등으로 발병하는 쿠싱증후군과는 원인이 다르다.
뇌하수체는 우리 몸의 호르몬 관제탑으로, 신진대사에 관여하는 각종 호르몬의 생성과 분비를 조절한다. 이곳에 종양이 생겨 스트레스 호르몬인 부신피질자극호르몬이 과다 분비되고, 부신의 스테로이드 호르몬(코르티솔)이 과다 분비되는 경우를 쿠싱병이라고 한다. 이 병의 최초 발견자인 미국의 외과의사 하비 쿠싱 박사(1869~1939)의 이름이 붙여졌다.
일반적인 상황에서 코르티솔은 스트레스에 대응해 신체를 안정시키고 방어능력을 강화시켜 주는 호르몬이다. 인체의 에너지 활용 능력을 끌어올리고, 고통을 덜 느끼게 해 준다. 하지만 과도하게 분비되고, 장기간 지속된 경우엔 심각한 합병증을 일으킨다. 고혈압·고지혈증·고혈당뿐만 아니라 골다공증까지 유발한다. 심뇌혈관계 합병증으로 인한 사망 위험까지 높아진다. 심근경색 등 관상동맥심장질환, 심부전, 뇌혈관 장애 등이 주로 나타난다.
치료가 늦어지면 쿠싱병 자체는 완전히 낫더라도 혈관 합병증은 이후에도 몇 년간 지속돼 뇌경색과 심근경색의 위험성이 계속된다. 따라서 조기 발견과 적극적인 치료가 매우 중요하다.
경희대병원 내분비내과 김성운 교수(대한신경내분비연구회 회장)는 “신체가 많은 양의 코르티솔에 장기간 노출되면 치명적인 합병증이 발생해 환자들이 걸어다니는 시한폭탄과 같은 상태에 놓이게 된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아랫배가 크게 찌는 중심성 비만이 있으면서, 고혈압·고지혈증·당뇨병과 같은 복합적 내분비질환이 동반될 경우 병원을 찾아 정확한 진단을 받아보라”고 조언했다.
쿠싱병 환자는 외관상 평범한 비만환자와 비슷하다. 두드러진 특징은 중심성 비만증이다. 복부를 중심으로 지방이 과도하게 축적되며, 얼굴이 달덩이처럼 부풀어 올라 보름달을 연상시키는 월상안(moon face), 목 뒤에 들소의 목덜미같이 지방 덩어리가 부풀어 오르는 버팔로 험프(Buffalo’s hump)증세가 나타나기도 한다.
연구에 따르면 쿠싱병 환자들이 제대로 된 진단 및 치료를 받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증상이 나타난 뒤 평균 4~5년에 이른다. 증상과 병의 특징을 잘 모르다보니 초기에 병원에 갈 생각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비만에 복합적인 내분비질환까지 겹치기 때문에 쿠싱병 환자들의 55~80%가 중증 우울증이나 불안장애를 가지고 있다.
김 교수는 “쿠싱병은 불치병이 아니라 수술 및 약물 치료를 통해 관리가 가능한 질환”이라며 “최근에는 원인이 되는 뇌하수체종양에 직접 작용하는 치료제도 개발돼 치료환경이 좋아졌다”고 말했다. 그는 “쿠싱병 인지도가 조금이라도 개선돼 자신이 질환을 앓고 있는 것조차 몰라 치료시기를 놓치는 환자가 발생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신경내분비연구회는 일반인뿐만 아니라 의료진들에게도 생소한 희귀질환인 쿠싱병에 대한 진단 및 치료 정보를 담은 전문 가이드라인을 제정해 대한내분비학회지 최근호에 발표했다. 또 지난해부터 매년 4월8일을 ‘쿠싱병의 날’로 정해 질환의 심각성을 알리는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다. 하비 쿠싱 박사가 태어난 이 날에는 세계적으로 쿠싱병 인식을 높이기 위한 각종 행사가 벌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