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성산소의 생리적 기능

활성산소는 일반적으로 우리 몸의 염증, 노화, 암, 퇴행성질환 등의 원인으로 주로 알려져 왔다. 이러한 믿음은 나이들면서 증가하는 여러 질환들을 예방하고 치료하고자 활성산소를 줄일 수 있는 ‘항산화제 치료’를 일반화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믿음은 긍정적인 실험실 연구결과들로 훨씬 공고히 되었다. 그런데, 이런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임상연구들이 1990년대에 발표되었다. 1996년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의학 저널 중 하나인 ‘NEJM(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에 항산화제로 가장 잘 알려진 베타 카로틴과 비타민 E를 복용하면 폐암과 심장병이 오히려 더 많이 발생할 수 있다는 충격적인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다. CARET (Carotene and Retinol Efficacy Trial)이라는 이름을 가진 연구결과였는데, 이 연구가 발표되기 2년전에 이미 비슷한 연구디자인인 ATBC(The Alpha-Tocopherol, Beta-Carotene Cancer Prevention)라는 연구에서도 베타카로틴과 비타민 E의 효과가 없다는 결과가 이미 한번 나온 터에 이러한 사망의 증가로 예정한 연구기한을 다 채우지 못하고 중간에 연구가 중단되어 더욱 충격적이었다.

 

당시까지 여러 연구결과들에서 산화스트레스는 암, 노화, 심장병 등의 주범으로 밝혀지고 있어, 폐암이나 심장병 발생의 위험이 높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안전하고 좋은 항산화제로 알려진 베타카로틴과 비타민 E를 꾸준히 복용시키면 당연히 폐암은 물론 심장병까지 좋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국가에서 연구비를 지원한 두 개의 큰 임상연구에서 ‘항산화제를 복용하는 것이 오히려 더 나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결과를 보여주었던 것이다. (그림 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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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1994년에 발표된 ATBC 연구결과. 베타카로틴을 복용한 사람들(실선)이 시간이 갈수록 이를 복용하지 않은 사람들(점선)에 비해 폐암이 더 많이 발생했다. (위로 갈수록 폐암이 많이 발생한다는 의미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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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1996년에 발표된 CARET 연구 결과. 베타카로틴과 비타민 E를 복용한 사람들(Active treatment)이 이를 복용하지 않은 사람들(Placebo)에 비해 폐암이 더 많이 발생했다, 다른 분석에서 사망과 심장병의 발생률도 더 많이 발생했다.

 

 

 

이 당시만 하여도 왜 이런 연구 결과가 나온 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설명되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 대규모 임상시험 결과들은 그 전부터 발표되기 시작했던 산화스트레스 또는 활성산소의 생리적 기능에 대한 연구를 증폭시켰다. 활성산소는 우리 몸에서 나쁜 짓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생리적 기능이 있어 이를 무조건 줄이게 되면 건강에 이롭게만 작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밝혀지기 시작한 것이다.

 

활성산소의 생리적 기능

활성산소는 우리 몸의 에너지 대사에서 부가적으로 발생하는 일시적인 산물들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불꽃처럼 반응성이 강하기 때문에 많을 경우는 여러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생존에 성공한 생물들은 이런 활성산소를 조절하고 방어하는 기전을 갖고 있는데, 어떤 경우는 오히려 우리 몸에 좋은 방향으로 사용하기까지 하는 방법들을 터득하고 사용하기 시작하였는데, 이런 것들이 바로 생리적 기능에 해당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기능들은 근육과 운동, 세포사멸, 면역, 줄기세포 분화, 노화속도 조절, 지방 대사 등이다.

 

  • 근육에서의 작용

우리 몸에 활성산소가 존재한다는 것이 가장 먼저 밝혀진 조직이 근육이다. 초기에는 이러한 활성산소가 근육을 손상시키는 것으로 여겨졌으나, 이후 여러 연구들에서 항산화제로 근육내의 활성산소를 없애버리는 근육이 수축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운동을 하면서 증가하는 산화스트레스는 근육에 일시적으로 좋지 않은 작용도 하지만, 근육이 이러한 활성산소에 대응하고 오히려 긍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혈액순환의 많아지면서 심장이 더 많은 피를 받아들이고, 더 빨리 뛰도록 도와주는 기전에도 활성산소들이 필수적이다.

 

  • 세포 사멸

일반적으로 세포내에서 활성산소가 많아지면 세포가 죽게 된다. 이런 역할은 정상세포를 작동하지 못하게 하고 암세포로 변형시키는 작용을 하기도 하지만, 사망해야 하는 세포를 빨리 죽이는데도 역할을 한다. 즉, 이미 발생한 암세포를 다시 죽이고, 퍼지지 못하도록 하는 역할도 활성산소들이 담당하는 것이다.

 

  • 산소 농도 감지 와 이에 대한 대응

우리 몸의 혈관이 좁아지거나 막혀서 산소농도가 줄어들게되면 이를 감지하여 혈액을 묽게 하고, 혈관을 늘이고, 새로운 대체혈관을 만들어 내는 작용을 하게 되는데, 이때에도 활성산소들이 역할을 한다. 동물실험에서 항산화 기능을 증가시켜 활성산소가 줄어들도록 미리 조치하여 두면, 혈관이 좁아져 빨리 새로운 혈관이 만들어져야 할 상황이 발생해도 혈관을 잘 만들지 못한다.

 

  • 면역 기능

활성산소가 많아지면 면역세포들을 자극하여 염증반응이 일어나는데, 너무 강하거나 오래 지속되는 염증은 우리 몸을 손상시키지만, 적절한 염증반응은 세균이나 돌연변이 세포로부터 우리 몸을 방어하는데 필수적이다. 활성산소는 대식세포라고 하는 주요 면역세포에서 살균 및 염증 물질들의 분비 정도에 영향을 미치고, 백혈구가 필요한 세포나 장기에 잘 부착하도록 하고, 염증이 있는 곳으로 면역세포들을 이동시키는데 주요한 역할을 한다.

최근에는 활성산소의 농도와 기간에 따라 우리 몸의 면역과 염증반응을 조절하는 면역세포와 이의 기능들이 추가로 밝혀지고 있어 활성산소의 농도에 따라 상당히 정밀하게 면역기능이 조절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줄기세포 분화

줄기세포들은 상황에 따라 줄기세포로 분열되기도 하고 특정 세포로 분화되기도 한다. 이러한 줄기세포의 분화 방향과 정도에 활성산소의 농도가 일정부분 영향을 미친다. 즉 활성산소가 없거나 너무 많으면 줄기세포의 분화는 줄어들고, 적절한 농도에서 활발한 분화가 이루어진다.

 

  • 노화

노화가 진행되면서 전반적으로 활성산소가 많아지므로 활성산소는 노화의 주범으로 여겨져왔다. 하지만, 활성산소를 줄이는 여러 항산화제를 이용하여 노화를 줄이려는 임상시험은 거의 대부분 실패하였다. 이후 밝혀지고 있는 사실은 적절한 농도의 활성산소가 건강한 노화 또는 노화의 지연을 위해서는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칼로리 제한을 통한 수명연장도 이런 활성산소의 적절한 증가로 인한 결과로 해석되어지고 있다.

 

  • 지방 대사

활성산소로 인한 가장 많은 손상을 받는 목표가 바로 불포화지방산이다. 불포화 지방산에는 활성산소가 영향을 주기 쉬운 이중결합이 더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의 많은 연구결과들은 이러한 활성산소로 인한 불포화지방산의 손상 또는 변화로 인한 중간 대사물질들이 우리 몸의 방어와 회복을 돕는데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결국 최근의 여러 연구 결과들은 활성산소가 나쁜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라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중요한 기능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활성산소를 일상생활에 비유한다면 ‘불’에 비유할 수 있다. 즉, 불이 제대로 조절되지 못하고 과했을 때는 너무도 큰 재앙이 일어나지만, 불을 잘 사용하는 사람들에게는 삶의 질을 윤택하게 하여, 불이 없을 경우의 삶 또한 생각하기 어렵다. 과거의 활성산소에 대한 많은 연구들이 단순히 활성산소를 어떻게 줄일까에 집중했다고 한다면, 최근 진행되는 여러 연구들은 활성산소의 적절한 생리적 기능을 어떻게 잘 살릴지에 대해 더욱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이다.

또한 우리 몸에는 활성산소를 조절하고 관리하는 시스템이 매우 발달되어 있어 이를 어떻게 잘 관리하느냐도 건강관리에 매우 중요하다. 예를 들어 유산소운동은 우리 몸의 활성산소를 매우 증가시키지만, 꾸준한 유산소 운동은 우리 몸의 활성산소 관리 시스템의 기능을 더욱더 강하게 만들어 오히려 더 건강하고 오래 살게 만드는 것이다.

 

 

서울의대 국민건강지식센터

가정의학과 교수 조비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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