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 3가지 유형 분석해보니… 우울증 방치·경제난·술 ‘비극의 3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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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자살에는 세 가지 유형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건복지부 중앙심리부검센터는 26일 2012∼2015년 자살 사망자 121명을 분석해 국내 자살을 우울증 미치료군, 경제문제 동반군, 문제음주군 등 세 유형으로 분류했다.

우울증 치료 못 받아 극단적 선택

심리부검 결과 우울증을 치료받지 못한 사람의 자살이 가장 많았다. 심각성을 본인이나 가족이 인지하지 못해 자살에 이른 경우다. 121명 가운데 32.2%인 39명이 이에 해당됐다.

정신과를 찾지 않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50대 주부 B씨 사례가 대표적이다. 그는 남편의 갑작스러운 조기 퇴직으로 혼란한 감정을 맞게 됐다. 노후자금을 모으려는 계획이 틀어지면서 걱정이 쌓여 잠을 못 자는 날이 늘었다. 작은 일에 예민하게 반응하거나 짜증을 내는 일도 많아졌다. 하지만 정신과를 찾는 대신 소화제를 처방받아 이따금 복용했다. 두통과 허리 통증이 있을 때는 진통제로 버텼다. 우울한 감정이 심해져 친언니에게 정신과 치료를 권유받았지만 “동네 사람이라도 만나면 어떻게 하느냐”며 거부했다.

심리부검 결과에 따르면 자살자 121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 한 달간 가장 많이 찾은 기관은 ‘정신건강의학과가 아닌 병원’(31명·복수응답)이었다. 정신과를 찾은 건 이보다 적은 24명이었다. 3명은 한의원을 다녔다는 증언도 나왔다. 정신질환이 있는 자살자 중 44.9%(48명)는 관련 치료를 받은 경험이 없었다. 사망 직전까지 꾸준히 약물치료를 받은 비율은 15.0%에 불과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우울한 감정이 신체적 불편으로 나타나면서 내과나 가정의학과에 가는 경우가 많지만 이러면 정신건강은 치료받기 어렵게 된다”고 말했다.

자살자 절반은 월 소득 50만원 이하

기존에 정신건강 문제가 있던 사람이 경제적 곤란과 그에 따른 가족 갈등을 겪으면서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것도 자살의 한 유형(경제문제 동반군)이다. 24.0%인 29명이 이에 속했다. 우울함을 느껴도 적절한 치료 기회가 없는 중장년 남성의 사례가 여럿이다.

회사의 부도로 2006년 실직한 C씨도 경제적 어려움에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실직 이후 작은 가게를 열었지만 운영이 원활하지 않았다. 빚을 지게 됐고 아내와의 사이가 나빠졌다. 생활고를 비관해 한 차례 자살을 시도했으나 미수에 그쳤다. 투신 당시 입은 상처를 치료하느라 더 큰 빚을 졌다. 사망 한 달 전부터 말이 없어졌고 멍하니 거실에서 TV를 보는 경우가 많아졌다.

심리부검센터가 사망 당시 자살자의 월평균 소득을 조사했더니 ‘50만원 이하’가 55명(45.5%)으로 가장 많았다. 200만원 이하가 3분의 2가량인 67.8%(82명)였다. 200만∼250만원은 16명(13.2%), 300만원 이상은 10명(8.3%)이었다.

가족도 절반 이상 알코올 문제

음주로 인한 자살도 세 유형 가운데 하나다. 121명 중 16.5%(20명)가 술 때문에 자살에 이르렀다. 심리부검센터에 따르면 이른바 ‘문제음주군’은 성장기 동안 부모의 음주로 인한 폭력에 노출됐던 경험이 있다. 또 충동적 기질이 있어 삶 전반에서 문제성 음주를 지속하는 패턴을 보인다.

30대 여성 D씨도 외로움을 이기려 술을 마시다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 결혼 이후 전업주부로 혼자 아이를 돌보는 일은 D씨에게 쉽지 않았다. D씨는 하루 소주 반병으로 시작했으나 5∼6년 뒤에는 술을 마시지 않고는 잠을 잘 수 없었다. 남편이 뒤늦게 정신과 치료를 권유했지만 이미 삶의 의욕을 잃은 뒤였다.

술 문제는 자살자의 가족에게서도 발견됐다. 가족이 과다 음주, 주폭 등 알코올 문제를 갖고 있는 경우가 53.7%로 나타났다. 심리부검센터는 “우리나라의 자살 예방을 위해서는 알코올의 유해한 사용에 대한 적극적 개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유가족도 위험…심리적으로 도와야

자살자 가운데 상당수는 가족을 잃은 자살 유가족이었다. 사망자가 살아있을 때 가족 중 자살을 시도하거나 자살로 사망한 사람이 있는 비율이 28.1%나 됐다. 심리부검센터가 유가족 151명에게 우울 정도를 물었을 때 26.5%(40명)가 매우 심각한 우울을 느낀다고 답했다. 심각한 우울(16.6%), 중간 정도의 우울(18.5%), 경미한 우울(15.9%) 등 77.5%가 우울감을 나타냈다. 수면에 문제가 있다는 응답도 37.1%였다. 심리부검센터는 “자살자 역시 가족을 자살로 잃은 유가족임을 감안할 때 자살 유가족에 대한 적극적인 심리 지원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심리부검센터와 면담한 유가족의 88.0%가 삶에 긍정적인 변화가 있었다고 답했다. 센터는 “심리부검은 고인의 죽음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막연한 죄책감과 자기 비난에서 벗어나 건강한 애도를 시작할 수 있게 한다”고 설명했다.

권기석 기자 key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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