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손, 자주 올바로 깨끗이 씻기
서울의 한 초등학교 어린이들이 올바른 손씻기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한 ‘1830(하루 8번 30초 동안) 손씻기 체험행사’에서 배운 방법대로 손을 씻어 보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한국에서 유행한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은 감염력은 매우 큰데 전염력은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감염력은 병원체가 병을 일으키는 능력을, 전염력은 감염된 환자한테서 다른 사람한테로 질환이 옮겨지는 정도를 가리킨다. 한국에서 메르스는 애초 알려진 것과 달리 아주 짧은 시간에, 상당히 먼 거리에서도 환자를 발생시켜 방역당국을 당혹하게 했다. 공기감염 가능성에 대한 문제제기도 있었지만 병원 밖 지역사회 감염이 일어나지 않은 점으로 미뤄 메르스 바이러스가 공기 중에 둥둥 떠다니며 사람들을 감염시키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 14번째 메르스 환자가 5월25~27일 입원한 평택굿모닝병원과 5월27~29일 입원한 삼성서울병원에서 100명에 가까운 환자들이 발생했음에도 이 환자가 5월27일 평택에서 서울까지 이동할 때 탄 시외버스의 승객이나 운전기사는 메르스에 걸리지 않았다. 병원 안에서 광범위하게 전파가 일어난 것은 환자한테서 나온 비말핵이 병원 곳곳에 묻어 있다 이를 접촉한 다른 사람들이 무의식중에 손으로 입이나 코를 만질 때 바이러스가 침투했을 가능성이 크다. 버스는 병실보다 밀폐된 공간이지만 사람들이 이동하지 않고 앉아 있었다면 이런 접촉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요컨대 ‘옷깃만 스쳐도 감염되는’ 메르스를 피하려면 마스크 착용보다 손씻기가 강조돼야 했다.
메르스 사태로 손씻기 횟수 급증
병원 안 감염 주요 원인은 손 접촉
비누가 최고, 물티슈는 절반의 효과
간호사 손소독제 과용 피부염 불러
‘맥베스’ 효과로 마음도 정화
고려대 환경의학연구소와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가 공동으로 진행한 ‘우리나라 건강 위험 인식에 관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다행스럽게도 시민들은 메르스 사태 이전에 비해 손씻기 습관이 크게 나아진 것으로 조사됐다. 두 연구소는 4월16일부터 5월6일까지 전국 성인 3317명을 대상으로 1차 조사를 했으며, 메르스 사태가 진행 중인 6월18~25일 1026명을 대상으로 2차 조사를 했다. 응답자들은 “메르스 발생 전과 후를 비교했을 때 얼마나 손을 자주 씻으십니까?”(샤워 등을 제외한 비누로 손을 씻는 횟수를 의미)라는 질문에 메르스 전에는 0~4회(46.2%)가 가장 높고 다음이 5~9번(37.8%)이었으나, 메르스 뒤에는 5~9번(38.2%)이 가장 많고 다음이 10~14회(33.9%)로 많아졌다. 20번 이상 씻는다는 사람도 메르스 전 2.0%에서 메르스 뒤 7.2%로 크게 늘었다.
이런 현상은 여론조사기관 한국갤럽의 조사에서도 드러났다. 메르스 사태가 한국 사회를 공포에 몰아넣기 시작하던 6월2~4일 전국 성인 1005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서 “메르스 때문에 평소보다 손을 더 자주 씻는 편”이라는 응답(60%)이 ‘그렇지 않다’(40%)는 응답보다 월등히 많았다. 특히 ‘그렇다’는 답변은 여성(67%), 20대 이하와 40대(각 65%), 가정주부(68%)에서 많았다.
병원 안에서의 감염은 손씻기 수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아 발생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국과 프랑스 공동연구팀이 2011년 <병원감염학>에 제출한 논문을 보면, 의사나 간호사가 병실에 들어가기 전이나 뒤에 손씻기를 하는 경우는 25%에 불과했다. 손씻기 실천율은 여름에는 절반 가까이(47%)로 올라갔지만 겨울에는 7%까지 떨어졌다. 그럼에도 58%의 의료진이 환자를 만졌으며, 52%가 환자 기록지나 침대 등을 만졌다. 병실 안의 링거 조절기, 심장박동 측정기뿐만 아니라 병실 밖의 컴퓨터, 카트, 전화 등도 이들이 자주 접촉하는 물건들이었다. 한 연구에서는 병원 안에서 의료진이 손씻기를 35% 개선할 때마다 황색포도상구균(MRSA) 감염률이 반으로 낮아졌다.
손씻기가 병원체 감염 방지에 효과를 보려면 ‘자주 올바로 깨끗이’ 씻어야 한다. 지난해 발족한 범국민손씻기운동본부는 하루 여덟번 30초 손씻기 운동인 ‘1830 손씻기’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가 실험한 결과를 보면, 무엇으로 씻는지가 중요하다. 손에 대장균을 묻힌 뒤 비누나 손소독제로 씻었을 때는 대장균이 98% 이상 씻긴 데 비해 위생 물티슈는 50%밖에 안 됐다. 위생 물수건도 81%로 꽤 높은 효과가 있지만 물로만 씻었을 때(93%)보다는 못했다. 손 소독제는 에탄올, 이소프로필알코올 등이 들어 있는 의약외품으로 물 없이 사용할 수 있는 반면 손 세정제는 화장품으로 물을 사용해 씻어내는 제품이다. ‘물 없이 사용하는 손 세정제’는 무허가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손 소독제의 지나친 사용은 피부에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울산대 연구팀이 13개 종합병원 성인 중환자실에서 일하는 간호사 375명을 대상으로 조사해보니 20.3%(76명)가 피부염을 앓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간호사 가운데 손 소독제 사용 횟수가 하루 31회 이상인 경우가 10회 이하인 경우보다 손 피부염 발생이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많았다. 비음주자보다 음주자가, 거친 종이타월을 사용하는 경우가 피부염이 더 많았다.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손씻기를 해야 한다는 의식과 실제 실천 사이의 괴리는 주로 남학생한테서 나타났다. 계명대 연구팀이 조사해보니, 남학생들은 설문조사에서 화장실 사용 뒤 손을 씻는다고 응답한 비율이 93.6%였는데 실제로는 16.9%밖에 씻지 않았다. 반면 여학생들은 97.4%가 씻는다고 답했는데 실제로는 98.2%가 손을 씻어 실천율이 더 높았다.
한편 손을 씻는 행위는 감정의 정화, 곧 ‘맥베스 효과’를 가져다주기도 한다. 맥베스 효과는 셰익스피어 희곡 ‘맥베스’에서 맥베스가 국왕을 살해한 뒤 맥베스 부인이 피가 묻지도 않은 자신의 손을 씻으며 ‘사라져라, 저주받은 핏자국이여’라고 외친 데서 따온 말이다. 손을 씻음으로써 자신의 죄를 깨끗하게 하려 하는 행위를 말한다. 경기대 연구팀이 2013년에 연구한 결과를 보면, 실험 대상자들한테 손을 씻는 상상을 하도록 했더니 ‘부끄러운, 죄책감이 드는, 겁이 나는, 조바심 나는’ 등의 감정 점수가 손 씻는 상상을 하지 않은 집단보다 낮게 나왔다.
이근영 선임기자 kylee@hani.co.kr